전남 곡성/섬진강 자전거 하이킹
강에도 가을이 든다. 봄이나 여름에 보던 것과는 다른 가을만의 표정을 가지고 있다. 강변을 지키는 훌쩍 큰 미루나무는 노랗게 가을을 재촉하고, 물가에 흐드러진 갈대는 금빛을 품기 시작한다. 가을이 익어 가는 섬진강으로 떠나는 자전거 하이킹, 그 고즈넉한 낭만을 경험하기 위해 찾아간 곳은 전라남도 곡성 고달면 가정리. 특별할 것 없이 그저 수수하고 평범한 시골이다. 단지 이 마을을 적시고 흐르는 섬진강의 부드러운 물결이 보기 좋은 곳. 곡성군에서 몇 해 전부터 가정리에 대여소를 설치하고 섬진강 주변에 자전거 하이킹 코스를 만들어 두고 자전거를 대여해 주고 있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청소년야영장과 자전거 대여소로 꾸며 놓았다.
자전거를 끌고 강 상류 쪽으로 향한다. 가로수처럼 나란히 선 미루나무는 이미 잎을 반쯤이나 떨군 모습이다. 길 왼편으로 줄곧 섬진강이 따라온다. 강폭이 넓어지기도 하고 좁아지기도 하면서 변화무쌍하다. 여울을 지나는가 하면 어느새 강폭을 넓혀 물결이 잔잔하다. 강에 비친 산자락에 가을색이 물들어 강 빛도 어느새 가을이다.
길가에 펼쳐진 자연도 예사롭지 않다. 연한 자주빛의 구절초며 쑥부쟁이, 깨알같이 작은 꽃이 다닥다닥 붙은 마타리, 저녁놀 마냥 빨갛게 익어 가는 감나무 등 평소에는 시답잖게 지나치던 것들이 하나같이 예쁘게 보인다.
어느덧 길은 포장을 벗어 던지고 자연 그대로의 황톳길로 바뀐다. 털털거리는 경운기나 지나갈까, 차는 아예 들어오지도 못할 길이다. 낮은 돌담 너머 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도 지난다. 마을이라고 해도 대여섯 가구가 전부인 작은 마을들이다. 담장 위에 위태위태하게 올라앉은 늙은 호박,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 작은 포대를 메고 마을로 돌아오는 허리 굽은 할머니 등 정겨움이 묻어나는 시골 풍경이다.
강변 아무 곳에나 자전거를 세워두고 땀을 닦는다. 강물에 손도 씻어본다. 어디든 빨리 가는 것만 중요하게 여겼던 일상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자세하게 들여다보이는 것이야말로 자전거 하이킹의 미덕이 아닐까. 강물의 흐름에 속도를 맞춰 걷거나 자전거 페달을 굴리다보면 마음 속으로 강물이 촉촉하게 흘러 들고, 살아있는 온갖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구례 쪽으로 향하는 게 좋겠다. 상류에 비해 길이 평탄하고 넓은 편이라 아이들도 쉽게 달릴 수 있다. 왕복2차선 도로라서 가끔 지나는 차량이 있긴 하지만 강 건너편에 놓인 17번 국도에 비하면 오가는 차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 다니는 차들도 근방 사람들이라 이 길이 자전거 하이킹 코스로 쓰인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차가 자전거를 피해 조심해서 다닌다. 구례 방면은 자전거 하이킹도 좋지만 천천히 운전하며 섬진강 풍경을 즐기는 자동차 드라이브 코스로도 제격이다.
9월부터 서리가 내릴 무렵까지 가장 맛있다는 참게. 섬진강에서도 압록 근처에서 참게가 많이 잡힌다. 지금은 그 수가 예전만 못해 다른 곳에서 들여오기도 하지만 섬진강에서 난 것이든, 다른 강에서 들여온 것이든 모두 자연산이란다. 양식은 해봤자 크게 자라지 않아 쓸 수가 없다고.
영양분이 몸에 꽉 차는 요즘 참게는 탕으로 구수하게 끓여내도 좋고, 게장을 담아 일년 내내 먹기도 좋다. 게장은 원래 가을철에만 담는데 다른 계절에는 살이 물러져 못쓴다고. 지금부터 서리 내릴 때까지 1년치 게장을 한꺼번에 담는다. 게장에 쓰이는 간장은 마늘, 생강, 감초, 고추, 무 등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달여 붓는데 여러 차례할수록 맛이 든다.
참게탕은 구수하고 얼큰한 국물과 고소한 참게맛이 잘 어우러진 메뉴. 게는 원래 살을 발라먹기 귀찮은 녀석인데 참게는 바닷게보다 크기가 작아 더 힘들다. 차라리 껍질까지 와그작 깨물어 꼭꼭 씹으면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흘러 넘친다.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그 맛에 반해 작은 다리까지 알뜰하게 다 먹고 나서야 숟가락을 놓는 것이 참게탕이다.
보성강과 섬진강이 만나는 압록 일대에 참게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들이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다. 압록유원지에 있는 통나무집(061-362-3090)이 잘한다.
<글·사진=여행작가 김숙현 pararang@empal.com)
◇찾아가는 길=가정리는 곡성읍에서 구례로 가는 길에 있다. 압록 유원지에서 가까운데 차로 5분 거리. 곡성읍에서는 10분 정도. 호남고속도로 전주IC에서 빠져나와 17번 국도를 탄다. 전주, 남원을 거쳐 곡성읍을 지나 7㎞ 정도 가면 길 오른쪽에 자전거 모형과 함께 ‘섬진강 자전거 하이킹’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남해고속도로 곡성IC에서 내려 60번 지방도를 따라 곡성읍, 17번 국도를 따라 가정리에 이르는 길도 있다.
◇자전거 대여:1일 사용에 1인용 3000원(단체는 2500원), 2인용 4000원(단체 3000원). 자전거 대여문의 (061)362-4787, 자전거 하이킹 관련 문의는 (061)360-8289.
◇자전거 코스:섬진강 상류 방향, 압록유원지 일대, 구례 방향, 태안사 방향 등 4가지 하이킹 코스가 마련돼 있다. 하지만 코스에 얽매일 필요없이 체력과 시간에 맞춰 하이킹을 즐기면 된다.
◇축제:10월 2일부터 5일까지 심청축제가 열린다. 곡성에서 남원 방면으로 가다가 섬진강변에 조성해 놓은 섬진강 자연생태공원이 축제 무대가 된다. 다채로운 행사와 볼거리가 마련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