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동북아 IT R&D허브로 부상할 수 있을까.
정부가 R&D센터 유치에 발벗고 나서고 인텔이 R&D센터 설립 의사를 밝히면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다국적 기업들은 한국을 단순히 테스트베드로 여기고 있을 뿐 R&D센터로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중국 등지로 생산 및 마케팅 기반을 옮기고 있어 동반진출 등 장기적인 협력관계를 확보하지 않으면 R&D센터 유치가 물 건너 갈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국은 외국기업들의 봉(?)=전력용 반도체업체 페어차일드는 지난 99년 삼성전자의 전력반도체사업부를 인수, 세계적인 반도체업체로 급부상했다. 이 회사는 IMF라는 위기상황을 활용해 연간 5억달러가 넘는 회사를 4억5000만달러에 인수, 큰 이익을 남겼다. 이후 한국에 대한 추가투자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 회사는 지난해 9월 패키지 기술을 연구하는 R&D센터를 설립했다.
그러나 이 R&D센터는 1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직 총원이 10여명에 불과하고 연구원들도 상당수가 본사에서 파견돼 큰 파급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이 회사는 중국 쑤저우에는 2억달러를 들여 조립 및 테스트 공장을 설립, 4분기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가는데 공장 설립에는 상당수의 한국 엔지니어들이 투입됐다.
ST마이크로는 지난 7월 차세대 메모리 등을 연구할 디자인센터를 서울에 설립했다. 이와는 별도로 하이닉스반도체와는 낸드형 플래시메모리를 공동 개발키로 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당초 연구원 규모를 100여명 이상으로 예상했으나 사실상 인력확보가 어려워지면서 현재는 20명 안팎의 인력들로 연구개발을 시작했고 국내 인력들이 오히려 본사 엔지니어들을 교육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반면 이 회사는 한국에서 확보한 기술과 제품을 싱가포르 공장으로 옮겨 현지 생산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한국에 디자인센터를 설립했던 LSI로직 등이 시황이 나빠지자 결국 문을 닫고 감원을 단행하기도 했다.
◇상생할 수 있는 협력관계 견인 시급=가장 시급한 것은 외국업체들이 한국시장을 단순히 중국 등 여타 국가로의 진출을 위한 테스트베드로만 여기지 않도록 장기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협력관계를 구축해야한다는 점이다.
특히 R&D센터는 공장설립과는 달리 대규모 투자나 고용 창출이 적은 만큼 해외시장 동반 개척, 향후 설비투자 유치 등 중장기적인 이익을 반드시 고려해 더욱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싱가포르와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등 다국적 IT기업들의 현지법인과 R&D센터를 확보한 경쟁국들은 이를 바탕으로 반도체 장비, 재료산업 등 유관 산업을 일으켜 세계적인 IT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다국적 반도체업체 한 관계자는 “여러 우려도 있지만 우리나라가 세계 유수업체들이 주요 협력국 중 하나로 고려하는 것은 분명 새로운 가능성을 갖게 된 것”이라면서 “관련 산업을 개발하고 향후 지속적인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장기적인 협력모델을 이끌어내는 것이 우리의 실력이자 관건”이라고 말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인텔 크레이그 배럿 사장이 지난달 29일 방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한국에 무선통신과 디지털홈 분야를 연구하는 R&D센터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장기적 협력모델 발굴 `발등의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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