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할때만 해도 취업은 걱정 없다고 들었는데 졸업을 앞두고 보니 오히려 타과보다 더 힘든 것 같습니다.”
내년 2월 졸업예정자인 K대 김모씨(27)는 “e비즈니스과 졸업생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전혀 없다”며 이미 전공을 살려 취업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는 “졸업한 선배 대부분이 전자상거래 유관 분야에 진출하지 못했다”며 “실제로 구인시장에서 e비즈니스학과 졸업생을 찾는 기업이 없어, 학과 가산점 같은 것은 아예 기대하지도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 2000년을 전후해 전국 대학에 잇따라 개설된 e비즈니스·전자상거래·인터넷상거래·인터넷비즈니스 등 e비즈니스 관련 학과 졸업생들이 이른바 ‘전공’을 살려 쥐업하는 것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전국의 e비즈니스 관련학과는 동국·숭실대 등 4년제 30개 대학과 동양공전·수원여대 등 2년제 19개대학에 개설돼 있다. 짧은 시간에 이처럼 많은 학과가 생겨난 것은 정부가 조만간 e비즈니스 인력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전국 대학들에게 개설을 독려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올 2월 첫 졸업생이 배출되고 있으나, 대부분이 전공을 살려 취업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학과개설 왜 늘었나=e비즈니스 인력 수요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예측과 그에 따른 자금지원이 가장 큰 요인으로 파악된다. 산업자원부는 지난 2000년 ‘e비즈니스 인력 수급 실태조사’ 보고서를 통해 올해에만 관련 인력 수요가 156만여명으로 늘어나고 공급부족은 54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따라 산자부는 지난 2001년부터 한국전자거래진흥원을 통해 매년 15억원 내외의 예산을 투입, 올해까지만 30여개의 e비즈니스 관련 학과 신설을 지원하고 있다.
◇인력수요 왜 없나=경기침체에 따라 신규인력 채용시장 자체가 얼어붙은 것도 요인이겠지만 무엇보다도 e비즈니스 학과 대부분이 특성화과임에도 불구하고 실무교육 위주로 차별화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e비즈니스 관련 학과 수강과목 대부분은 경영학·산업공학·컴퓨터공학과에서 베우는 과목과 상당부문 겹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방 K대의 한 교수는 “외국에 전자상거래 학과가 개설돼 있는 학교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일부 석사과정이 개설돼 있기는 하지만 국내에는 이 과정을 이수한 교수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울소재 K대 e비즈니스학부의 한 조교는 “교과 과목도 경영학, 컴퓨터프로그래밍언어 등으로 돼 있고 실무 비중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 졸업생을 검증할만한 이렇다할 기준이 없는 것도 요인으로 분석된다. 현재 전자상거래관리사 2급 자격증 제도가 있지만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S대 e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전자상거래 자격증은 산업계에서 거의 인정하지 않고 있어서 자격증 이수를 추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대책은 없나=전문가들은 e비즈니스학과 특성상 산업 실무위주로 체계가 빨리 잡혀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를 위해 정부의 지원책도 학과신설보다 e비즈니스 관련 커리큘럼 등 프로그램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취업정보 제공업체인 인크루트의 관계자는 “신설 산업특성화과 대부분이 실무와 연계돼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며 “산학연 연계 등을 통한 새로운 과목 개발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빗나간 예측, 빛바랜 졸업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e비즈니스·전자상거래 학과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