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공항에서 자동차를 타고 동쪽으로 30분 정도 달리다 보면 서울의 구(區) 정도에 해당하는 버너비 지역에 닿는다. 버너비 시내에 들어서면 100여개 기업들의 본사나 지사가 촘촘히 모여있는 비즈니스 집적단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는 슈퍼페이지스는 33년의 역사를 지닌 전화번호부 전문회사다. 지난 1970년 도미니온디렉터리스로 출범해 2001년 미국 버라이존에 흡수되면서 사명을 바꾼 슈퍼페이지스는 지금까지 전화번호부 분야 한우물만 파왔다. 덕분에 야후와 MSN같은 유명 웹사이트 주소창에서 슈퍼페이지스가 가진 주소록이 기본 데이터로 활용되고 있을 정도로 명성을 얻었다.
전체 직원 1400명 규모의 슈퍼페이지스는 기업용과 일반용으로 나눠 캐나다 전역에 연간 120종류의 전화번호부를 공급하고 있다. 밴쿠버 지역에서만 한해 공급하는 전화번호부는 1300만권.
전화번호부사업에서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슈퍼페이지스는 ‘토털 아웃소싱’을 핵심적인 경영 전략으로 삼고 있다. IT업무에서부터 심지어 출판업무에 이르기까지 외부 전문기업들에게 과감하게 위탁 관리한다는 것. 특히 IT업무의 경우 1994년부터 ISM-BC(현 텔러스엔터프라이즈솔루션스)에 처음 위탁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1월에는 5년간의 재계약을 맺었다.
슈퍼페이지스 최고정보책임자(CIO)인 필 실베이라 디렉터는 “IT 관련 개발·구축·운영업무를 IT전문회사에 맡긴 이후로, 네트워크나 서버와 같이 골치아픈 문제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2001년 버라이존과 합병을 계기로 메인프레임을 들어내고 유닉스 서버(12대)와 윈도 서버(42대)를 본격 도입했다. 그만큼 시스템 투자비도 줄었다. 또 아웃소싱을 계기로 IT부서 인력은 전체의 2% 정도인 29명을 두고 IT전략과 기획 수립업무를 맡기고 있다.
텔러스측은 43명의 IT전문가를 전국에 산재한 슈퍼페이지스 사이트에 파견해 시스템 개발과 구축·운영을 맡는 동시에 이곳에서 가까운 텔러스 데이터센터에서 시스템을 원격 모니터링하고 있다. 다만 전화번호부에 수록되는 기업·개인 정보와 관련한 데이터의 비밀보호 차원에서 전자우편주소와 ID를 만드는 일은 슈퍼페이지스가 직접 하고 있다.
슈퍼페이지스와 텔러스는 특히 새로운 IT 프로젝트 착수시 전체적인 일정과 내용·방법을 같이 논의하는 ‘코스 카드(Course Card)’라는 프로젝트명의 별도 협력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슈퍼페이지스의 아웃소싱은 IT업무에만 한정돼 있지 않다. 또 다른 핵심분야인 전화번호부 출판까지도 브리티시컬럼비아주와 이웃하고 있는 알버타주 소재 코배코어에 위탁하고 있다.
실베이라 디렉터는 “가능한 한 몸집을 가볍게 해서 전화번호부 관련 본업에만 전력을 투구하는게 우리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밴쿠버(캐나다)=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