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S.A 플레밍이 기적의 항생제라 불리는 페니실린을 발견했던 런던대 성 메리병원. 페니실린을 발견해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플레밍의 발자취를 따라 색바랜 외벽과 그의 연구실을 지나면 눈부시게 반짝이는 새로운 런던 대학병원을 만날 수 있다.
페니실린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플레밍. 그의 낡고 어둠침침한 연구실에서 시작된 인류 질병 정복의 과제가 첨단 연구동으로 그 자리를 옮겨 우연한 발견이 아닌 머리카락 굵기의 10만 분의 1의 나노 연구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다.
로드 사인스버리 영국 과학부 장관은 “나노와 바이오 융합 기술은 의료와 환경, 경제 분야에 엄청난 혜택을 가져 올 것”이라며 “10년 안에 관련 시장이 1조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영국 정부는 올해부터 향후 6년간 산업체가 융합기술을 개발해 상업화 기회를 활용할 수 있도록 약 1억5000만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투자금은 산·학·연 공동 연구와 새로운 마이크로 및 나노기술 장비 네트워크 구성에 쓰이게 된다.
이런 정책적 기조에 발맞춰 설립된 것이 바로 런던나노센터(London Centre for Nanotechnology·LCN)다. 내년 런던 중심가에 모습을 들어낼 LCN은 연구 센터가 완공되기 전부터 런던을 대표할 ‘작은 과학의 메카’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대학간 교류의 산물=리처드 사익스 임페리얼 대학 학장은 “LCN은 런던의 두 라이벌 대학이 세계 최고의 연구센터를 만들기 위해 손잡은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LCN은 런던대학과 임페리얼대학이 공동으로 설립한 나노연구센터다. 런던을 대표하는 두 대학이 손을 잡고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나노와 바이오를 융합해 양자 컴퓨팅에서 헬스케어산업으로 파급 되는 나노바이오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LCN은 양 대학으로부터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거두고 있는 물리학과 기계 엔지니어, 의학, 화학, 물질학 등 융합기술 개발에 필요한 다학제 연구자를 수급, 서로 미비한 분야를 보완하며 연구에 치중하고 있다.
LCN 디렉터인 쿠엔틴 팽크허스트 박사는 “UCL과 임페리얼 대학의 연구자와 학생들은 자유롭게 LCN의 연구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며 “LCN은 단순한 연구 센터가 아니라 양 대학이 설립한 조인트벤처의 성격을 띤다”고 말했다.
◇연구 상업화에도 주력=종래의 연구센터와 달리 LCN은 프로젝트 매니저(PM)을 두고 개발된 융합기술의 상업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연구자들의 개발 성과는 PM의 관리 아래 지적재산권(IP) 등록이 추진되며 상품화된다. LCN이 다른 연구센터와 달리 런던 중심가에 설립된 것은 이런 상업화를 돕기 위해서다.
연구 성과물의 제품화를 원하는 기업이나 이에 투자하고 싶은 투자가들에게 센터는 언제나 문호를 개방한다. 센터는 이런 상업화 결과를 다시 연구개발 투자금으로 사용하는 순환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정책에 따라 LCN은 WT와 EPSRC, BT 등 기업과 이온빔, 퀀텀 컴퓨팅 분야의 조인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LCN은 또 런던 바이오메디컬 지구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UCL 및 임페리얼 의대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이용해 임상 시험 등 나노바이오의 상품화를 앞당길 수 있는 헬스케어 테스트 베드를 갖췄다.
◇LCN의 융합기술=LCN의 연구는 크게 △독특하고 저렴한 헬스케어(나노바이오) △정보통신기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정보소자) △지구와 환경(환경공학) 등 3부분으로 나눠진다. 센터는 저렴한 진단기기와 약물전달시스템(DDS:Drug Delivery Systems), 개인별 맞춤 신약, 바이오 세라믹스, 생체 자기 물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또 분자 컴퓨터와 분자 모터, 생체전자공학 등 생체 기능 소자 연구에도 한창이다.
“10년 후 사람들은 현재의 컴퓨터 속도에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무어의 법칙으로 대변 되는 실리콘 기술의 발달이 한계에 달했습니다.”
팽크허스트 박사는 더 빠른 속도와 대용량 메모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실리콘이 아닌 새로운 전자 정보 소자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보소자 분야에서 센터는 정보저장 소자(MRAM), 연산소자(SET), 정보입출력 양자점소자 (LD), 정보표시소자(CNT-FET), 전원 (CNT 배터리) 등을 개발해 초고성능 슈퍼컴퓨터를 손목시계 만한 크기로 제작하는 첫발을 내딛었다.
연구센터에서는 또 새로운 에너지 자원의 발굴을 위한 접근으로 새로운 촉매제를 이용한 고효율 태양 전지, 금 분자를 이용한 연료전지 등 연구에 치중하고 있다.
◆ 런던나노센터 연구부분 총 지휘자 쿠엔틴 팽크허스트 박사
“전세계 대학과 연구소들은 최첨단 기기가 가득한 나노센터를 만드는데 열중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 한국에 이르기 까지 융합기술의 인프라를 제공하는 나노센터를 기획하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런던 나노센터의 연구부분 총 지휘자인 쿠엔틴 팽크허스트 박사는 영국 융합기술의 산실이 될 런던나노센터 공사장을 보여주며 세계 연구진들의 전쟁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연구진들은 NT·BT·IT 융합기술이 인류의 삶을 크게 개선 시킬 것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제 과학자들은 독립된 분야의 기술이나 연구보다는 서로 다른 학문과 기술 간 융합을 강조합니다.”
팽크허스트 박사는 이제 막 영국과 미국, 한국 등 전세계 융합기술 연구자들은 모두 똑같은 출발선에서 45.195km의 마라톤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마라톤의 최후의 승자는 긴 레이스를 이겨 낼 수 있는 유능한 인력의 수급이 관건이라고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값비싼 연구 장비와 첨단 클린룸은 융합기술을 더욱 쉽게 발전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긴 레이스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는 나노와 바이오, 정보기술이 복합적으로 융합된 분야에서 기초 체력이 튼튼한 인력만이 끝까지 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팽크허스트 박사는 또 융합기술이 단순히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이 모여 각자가 가져온 조각을 맞추는 퍼즐 게임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융합기술은 하나의 얼음 조각처럼 모든 부분이 한 덩어리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분리된 조각으로 맞춰진 퍼즐은 조그만 진동에도 쉽게 파괴됩니다.”
그는 융합기술 분야의 최후의 승리자는 각 분야 연구자들을 하나의 시스템에 녹여 넣는 프로그램에서 좌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런던=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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