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업그레이드](4)산학연 공동연구도 혁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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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학연 공동연구는 적어도 샘플을 출하할 수 있는 단계까지는 지속돼야 한다.” “산학연 연구는 실패할 수도 성공할 수도 있다.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 더 많은 연구개발(R&D)이 진행될 수 있도록 자금과 지원을 한정해야 한다.”

 이 분야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산학연 공동연구는 지난 7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추진돼 왔다. 주로 대기업의 연구와 더불어 독자기술 개발 및 외국기술 도입 등을 통해 우리나라 기술력을 배가시켰음은 물론이다. 이 와중에서 일정 부문 ‘가치있는 기술 확보’와 ‘전문인력 양성’이라는 소기의 목적도 달성했다.

 그러나 산학연 공동연구는 필요성과 가치에도 불구하고 항상 도마위에 올라야 했다. 과거나 지금이나 과제 심사과정의 불협화음이 대표적이고 최근에는 산업구조가 복잡해지면서 과제 선정의 우선 순위문제도 대두되기도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산학연 공동연구는 한국의 기술발전을 지탱해 왔고 따라서 향후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견이 있다면 성과가 나올 때까지 지원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양한 연구개발 기회를 마련할 것인지 등의 두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문제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샘플 출하에 대한 지원과 함께 판로 문제까지 정부에서 적극 지원해 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될때 산학연 공동연구 성과가 진정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산자부 무역위원회도 “정부의 정책자금을 지원받아 개발된 신기술 제품의 70% 이상이 외국에서 수입되는 제품과 똑같거나 비슷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같은 문제는 정부의 연구개발(R&D) 자금지원이 단순한 소액 배분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많은 정부 및 기관 관계자들은 집중적인 지원이 강조되다 보면 장기 플랜에 따른 개발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보다 많은 기업에 기회를 제공하면서 실질적인 성과까지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기술시험원 중소기업기술지원단 이인식연구위원은 “70년대부터 시작된 산학연 공동연구는 30년 이상의 세월을 거치면서 많이 세련되게 변모했고 선정과정도 투명해졌다”며 “이제 실질적으로 중소기업에게 도움을 주는 시스템적인 방안 마련이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김태유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은 최근 한 포럼에서 “기술발전을 통한 국가발전 전략에는 기술선도형, 기술추격형, 기술혁신형 등 3가지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첨단기술에 대한 국가역량 집중을 통한 기술혁명으로 국민소득을 늘리는 기술혁신형이 적합하다”며 “기술에 대한 마인드를 갖춘 인력이 주요 정책의 입안, 의사결정 과정에 많이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기업들조차 국내에서의 산학연 공동기술 개발보다는 일본 등 해외에서의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물론 대기업 나름의 정책적 판단이 작용한 것이지만 대기업이 국내 대학·연구소 등과의 협력에 소극적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반도체업계에서는 이같은 해외 협력사례가 자주 나타나고 있는데 아무리 정부사업이라도 성과와 여건을 중시할 수 밖에 없는 기업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일본통산성은 산학공동연구를 지원하는 ‘지역 컨소시엄 연구개발 사업’의 조성 대상에 실용화연구를 포함하고 있다. 국가가 지원하는 산학 공동연구가 기대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연구 거품’이라는 비판을 수용한 것으로 이 때문에 샘플을 출하하는 실용단계까지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공동개발의 총알이 되는 정책자금의 일관성 유지도 현행 산학연 공동개발 사업의 업그레이드를 이룰 수 있는 핵심 사안이다. 부품소재투자기관협의회 문병길 사무국장은 “지난 98년 이후 각 부처가 정책자금을 경쟁적으로 지원하면서 정책자금 지원제도가 너무 복잡해졌다”며 “이같은 상황은 수요자의 혼란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수요자 친화성을 좀먹는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산학연 공동연구가 ‘겉돈다’는 비난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업계의 요구를 반영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불가능하다. 물론 선심성으로 수혜자를 늘리는 것보다는 기술력이 뛰어난 유망 기업에 투입하는 쪽으로 정책자금의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한 분야에 집중 투입하는 것보다는 산학연 공동연구의 성과가 성공적으로 도출될 수 있는 시스템적인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별기획팀>

◆ 산학연 협력 모범사례

 산·학·연간 협력 체계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제기되는 가운데 일부 정부 산하 단체와 중소 업체간 협력 사례가 귀감이 되고 있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전자부품연구원과 생산기술연구원이다. 이들 단체의 설립 목적은 중소 업체의 기술지원이다.

 그런데 올들어 이들은 연구단체 역할을 단순한 기술 지원에 그치지 않고 기술 영업 지원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제품을 중소 벤처 업체와 공동 개발한 후 그 결실을 해외 시장에 내다팔기 위해 장터를 찾아다니거나 직접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부품연·생기원이 이같은 산·연 협력 모델을 구축한 것은 그간 중소 업체와 기술 개발을 함께 해오면서 체험한 경험덕분이다. 부품연 한 관계자는 “우수한 제품을 개발해놓고도 정작 해외 마케팅 여력이 부족한 탓에 시장 진입에 번번이 좌절한 기업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직접 팔을 걷어 부치게 됐다”고 배경을 밝혔다.

 이에 따라 부품연·생기원 등 기술 인력들은 중국은 물론 베트남·대만 등 동남아 시장에서 발품을 팔며 ‘메이드인코리아 기술’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중소벤처 업체들이 예전과 달리 기술지원보다는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지원방안을 절실히 원하고 있어 이들 기관이 보유한 기술 노하우를 공동으로 활용하는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연구원측은 또 11월께 중국 톈진시 및 북방기술교역소와 공동으로 ‘한중교역상담회’를 개최해 중소업체의 기술력을 중국에 널리 알려 판로를 개척하는 한편 중국 베이징에 전자산업기술협력센터도 개소, 중소 업체를 위한 디지털 TV 등 분야에서 한·중 협력사업을 발굴하고 있다.

 이와 관련 벤처기업인 미디어포드 한 관계자는 “정부 산하기관이 직접 지원해준 덕분에 말레이시아 등 현지 시장에 진출할 경우 현지 업체들이 기술력·경영상태 등에 대해 공신력이 높아지고 있다”며 “기술력을 보유했지만 독자 마케팅력이 부족한 업체는 커다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생기원도 이달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되는 ‘제1회 베트남국제기술제품전시회’에 국내 중소업체의 제품을 전시했다. 생기원측은 이를 통해 중소업체의 기계·정밀가공 등 기술을 현지에 소개함으로써 우리 업체들이 로열티 등 기술료 수익은 물론 농업국에서 공업국을 지향하는 베트남의 미래 수요를 선점하는 기반을 다지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