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를 태운 버스가 잘 정돈된 거리와 줄지어 늘어선 야자수 사이를 지나 싱가포르 HP 건물 앞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이곳엔 모든 사물에 컴퓨터가 스며들고 이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돼 언제·어디서나 인터넷에 연결된 모바일 기기로 생활을 풍요하게 한다는 HP의 유비쿼터스 비전이 집약된 ‘HP 쿨타운(HP Cool Town)’이 자리잡고 있다.
나무와 풀마저 사람의 손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꾸며놔서 자연과 인공의 구분이 모호한 섬, 싱가포르는 네트워크와 물리 세계의 구분이 없어지는 유비쿼터스 세계의 시연장으로 가장 적합한 곳이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는데 어느덧 차가 멈추고 HP 직원들이 반긴다.
쿨타운은 일상 생활의 모든 사물과 환경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면 우리의 삶과 비즈니스가 어떻게 변할지를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쇼케이스’다. 무선태그(RFID)와 저장형 웹서버, 이동통신, 인터넷, 각종 모바일·디지털 기기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돼 일상과 웹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간이다.
필요한 정보를 찾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PC를 켜고 인터넷에 연결할 필요 없이, 자료를 인쇄하려고 굳이 프린터가 있는 사무실로 갈 필요없이 네트워크에 연결된 주변 모든 사물을 통해 자연스럽게 원하는 서비스를 얻을 수 있는 유비쿼터스 공간이다.
쿨타운 전시장에 들어서자 PC와 PDA, 디지털 카메라 등이 놓여있는 응접실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마크 매너스 싱가포르 쿨타운 책임자는 “무선랜 접속 및 RFID 송수신, 블루투스 기능 등을 갖춘 PDA와 휴대폰이 현실 세계와 인터넷 속의 가상 세계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가 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카메라폰·디카로 사진을 찍고 이를 바로 웹에 전송, 실시간으로 포스트를 올리는 모블로그도 유비퀴터스적 현상이랄 수 있다”고 말하더니 찰칵 사진을 찍는다.
마크 매너스 책임자는 쿨타운의 전자정부 및 금융 결제 시스템을 소개하며 “한국에서 이미 비슷한 서비스가 진행 중” 또는 “한국에서 도입된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PDA나 직불카드를 이용한 쿨타운의 모바일 결제 시스템 역시 한국에서 도입된 것이라고 밝혔다. 높은 초고속인터넷 및 이동통신 보급률을 자랑하는 한국이 유비쿼터스발전과 기술·서비스 실험을 위한 최적의 여건을 갖췄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쿨타운에서 ‘모든 사물에 컴퓨터가 스며드는’ 유비쿼터스 세상의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것은 아마 두번째 전시장에서 만나게 되는 디지털 디스플레이 거울일 것이다. 이 방에서 쿨타운 관람객들은 방문객이 아니라 오늘 샌프란시스코로 출장을 떠나는 비즈니스맨이 된다.
오늘은 출장일, 졸린 눈을 비비고 세수를 하며 거울을 손가락으로 건드리자 거울은 대형 평면 디스플레이로 바뀐다. 밤새 도착한 e메일과 오늘 일정, 날씨 정보들이 거울 위에 떠오른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친구가 그곳의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며 따뜻한 옷을 챙겨오라는 동영상 메일을 보냈다. 일정 관리 프로그램은 비행기 시간을 알려주며 “오늘은 비가 와서 길이 많이 막히니 서둘러 출발하는 것이 좋겠다”고 일러준다.
급히 짐을 챙겨 자동차에 오르지만 열쇠를 꺼낼 필요는 없다. 나의 모바일 단말기에 달린 무선태그가 보낸 신호를 자동차가 수신, 스스로 출발 준비를 갖춘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으면 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GPS를 사용한 길 안내와 도로 정보는 기본. 온라인 카스테레오로 인터넷의 내 주크박스에 접속, 미리 저장해 둔 노래를 들으며 길을 가면 된다.
매너스씨는 “쿨타운에선 생활 속의 모든 사물이 인터넷과 연결, 무선 기기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정보와 원하는 서비스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드디어 샌프란시스코 도착. 이곳 지사가 자리 잡은 빌딩에 들어서는 순간, 문득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출력해 오지 않은 것이 생각난다. 어떡하지?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일단 PDA로 사내 전산망에 접속한다. 신원 인증이 끝나면 사내 웹서버에 접근, 당신이 저장해둔 자료를 불러온다. 가장 가까운 프린터에 인쇄 명령을 전달한 후 그 프린터가 있는 사무실에 가 출력된 자료를 챙겨 오면 된다.
회의도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나 진행할 수 있다. 당신은 이쪽 지사의 담당 직원과 함께 대형 디스플레이에 특수 펜으로 그림과 도표를 그려가며 기획을 논의한다. 그러다 다른 도시에 있는 다른 직원과 논의할 일이 생기면 영상회의 시스템으로 그 사람을 호출할 수 있다.
조금전까지 화이트보드로 사용하던 대형 디스플레이를 통해 이번엔 다른 지사 직원의 모습이 보인다. 그쪽 직원이 디스플레이 위에 무언가를 그려 가며 설명하자 그 도표가 그대로 디스플레이 위에 겹쳐 나타난다. 지리적 거리를 초월해 완전히 눈 앞에 두고 대화하는 것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다.
이번엔 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쿨타운에 구축된 유비쿼터스미술관에선 모든 작품이 자신의 고유 정보를 발신하는 RFID태그를 달고 있다. 관람객은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 그 작품에 관한 정보, 작가에 관한 사항 등을 RFID 수신 기능을 가진 PDA로 확인해 볼 수 있다. 또 미술관 내에서 자신이 찾는 미술품의 위치를 PDA로 파악해 찾아갈 수 있다. 눈앞에 보고 있는 그림을 바탕으로 만든 포스터나 엽서를 살 수 있는 기념품 매장도 안내받을 수 있다.
전시된 그림이 맘에 들었다면 그 그림 파일을 살 수도 있다. RFID로 소액 결제를 선택한 후 출력 명령을 내리면 나가는 길에 미술관 내 기념품 가게에 들려 프린터에서 출력된 고해상도의 그림을 챙겨갈 수 있다.
RFID와 무선 인터넷을 결합한 이런 기술은 미술관뿐 아니라 학교, 도서관 등에서도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쿨타운은 실제 세상과 웹 속의 세계를 연결하고 RFID나 무선인터넷을 통해 이들 세계를 오가며 정보를 주고 받음으로써 삶을 더욱 풍요하고 편리하게 하는 비전을 제시한다. 이는 정보기술(IT)을 인간 생활에 보다 밀접히 연결시키려는 HP식의 유비쿼터스구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HP는 모바일과 인터넷, 웹과 물리적 세상을 하나로 잇는 비전을 쿨타운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쿨타운을 나서는데 처음 전시장에서 찍었던 사진 파일을 어느새 가공해서 마우스패드에 인쇄해서 기념품으로 나눠준다.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었다. “I’ve experience the vision” 그리고 나는 이 비전을 직접 체험했다.
<싱가포르=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
<쿨타운 프로젝트>
쿨타운(Cool Town)은 HP가 모바일 기기, 이동성, 네트워킹, 웹을 연동하는 기술의 미래 모습을 제시하기 위해 세운 전시 공간이다. 이 프로젝트는 모바일 컴퓨팅의 미래에 관한 HP의 비전을 보이기 위해 처음 시작됐으며 HP 연구소(HP랩)의 인터넷·모바일 시스템 연구실에서 추진됐다.
따라서 쿨타운은 ID나 URL 등의 개별 정보를 발산하는 전자태그(RFID), 내장형 웹서버, 인터넷 인프라 등을 통해 개인이 이동하는 곳 어디서나 그곳의 디지털 기기들이 제공하는 웹서비스를 PDA·휴대폰 등의 장치에 연결시키는 컴퓨팅 모델과 시나리오로 구성된다. 이러한 PDA나 휴대폰은 RFID·블루투스 등 근거리 무선 통신 수단을 통해 RFID 등이 발신하는 신호를 읽을 수 있다.
쿨타운 프로젝트의 핵심 개념은 현실의 사람·사물·공간이 동시에 인터넷에도 존재하는 ‘현실같은 월드와이드웹(WWW)’을 구축하는데 있다. 인터넷과 상호작용하는 디지털 기기들을 이용해 이동 사용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환경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다.
쿨타운에선 일상 생활 속의 디지털 기기와 특정 장소에 특화된 인터넷 서비스, 이동통신이 시스템적으로 통합된 웹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즉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으로 무장한 채 떠돌아다니는 디지털 유목민(nomadic user)들이 자유롭게 생활하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유비쿼터스환경을 시험적으로 조성한 공간이다.
HP 쿨타운은 근거리 무선통신과 웹서비스 기술들의 결합이 일상적 비즈니스 업무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 e서비스의 상용화로 인한 혜택을 일상 생활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쿨타운은 싱가포르 외에도 미국 뉴저지주와 메릴랜드주, 캐나다 토론토, 스위스 제네바, 영국 런던 등에 설치돼 있으며 유비쿼터스비전의 상용화를 위한 아이디어와 기술을 공유하는 것이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