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시장 `신무역전쟁` 시대로

 세계 반도체 업계는 올들어 새로운 양상의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다. 과거 반도체 무역전쟁이 업체를 중심으로 한 일대일, 일대다, 다대일, 다대다 등의 모습으로 국지전 형태였다면 최근의 반도체 무역전쟁은 국가대국가, 대륙대국가 등의 전면전 성격으로 치닫고 있다.

 ◇업체·업계분쟁이 국가간 분쟁으로=지난해만 하더라도 반도체 업계의 소송은 특허침해가 주된 이유였다. 당시엔 10여건의 소송이 업체대업체 또는 단수업체대복수업체의 형태로 전개됐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판이하다. 지난해 독일의 인피니온이 한국 메모리 업계 전체를 대상으로 정부보조금을 받고 있다며 유럽연합(EU) 집행위에 상계관세 부과를 요청한 것을 기폭제로 무역관련 소송은 국가대국가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어 유사한 사안을 빌미로 마이크론이 미국 상무부와 무역위원회를 통해 한국산 메모리 대상의 상계관세 문제를 들고 나왔고 이에 대만과 일본 업계전체가 가세하는 양상이다.

 이제는 미국이 중국의 과세정책을 표적삼아 활시위를 당길 태세다. 미국 반도체 업계를 대변하는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지난달 29일 중국을 상대로 한 자국업계의 불만과 우려를 담아 221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냈다.

 중국 정부가 내수 시장에서 유통되는 반도체에 부과하는 부가가치세(증치세)를 차별 적용하는 등 보호주의적인 세제를 운용하면서 사실상 국내(중국) 생산업체들에게 부당한 특혜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SIA측 주장은 내수시장에서 유통되는 반도체에 대해 17%의 부가가치세가 징수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현지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업체들은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어 실제로 적용되는 세율은 3%까지 낮아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현재 건조를 계획하고 있거나 진행중인, 또한 완공된 상태인 19곳의 반도체 공장은 이같은 세제 조작이 아니었더라면 다른 국가에 세워졌을 여지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다음 표적은 중국=반도체 환급제도의 차별성이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5월에는 세계반도체협의회(WSC)가 제7차 연례 회의에서 중국 정부가 환급제를 철폐하고 국내외 생산업체에 동일한 세율을 적용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중국이 자국내 반도체 업체를 세제 등으로 지원한 것은 명확한 특혜라는 점에서 중국에 쫓기는 다른 나라의 반도체 업체와 이들 반도체업체가 속한 정부의 공방은 더욱 더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국가간 반도체 무역전쟁은 떠오르는 태양으로 인식되는 중국에 초점이 모아질 전망이다.

 동부아남반도체의 민위식 부사장은 “중국의 파운드리 신생기업인 SMIC나 GSMC는 중국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에 힘입어 조만간 다크호스가 될 수밖에 없으며 이를 정부 차원에서 견제하지 않을 경우 세계 반도체 산업붕괴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50% 이상의 정부돈과 세제지원이 있기에 웨이퍼를 64메가로 제작해 16메가로 팔만큼 저조한 수율로도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고 영향력도 키워나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중국이 장차 성(省)별로 하나씩 총 스무개 이상의 팹을 짓겠다고 나선 마당에서 각 팹이 5만장의 웨이퍼 처리능력을 갖출 경우 매월 총 100만장 이상의 웨이퍼가 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따라서 과거 철강 과잉생산의 사례처럼 반도체 시장은 공급량 폭증으로 붕괴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다른나라의 소자업체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가동팹을 줄이면서 생겨난 세계의 유휴팹을 경기침체 상황에서도 사들일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중국이라는 점에서 중국은 예의주시해야할 호랑이로 인식되고 있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