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사실상 정상영 명예회장 `섭정` 체제로

 현대그룹 경영권 확보를 놓고 정면대결 양상을 벌려온 정상영 금강고려화학(KCC) 명예회장과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간 지분권 타툼이 정 명예회장의 ‘현 회장 체제 존중’ 발언으로 일단 소강국면에 접어들 전망이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이 ‘대주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 현대그룹의 맥을 이어가겠다’며 사실상 ‘섭정’ 의지를 밝힌 만큼, 현대그룹은 향후 본격적인 정 명예회장의 영향권 아래로 들어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9일 정 명예회장은 KCC를 통해 밝힌 공식입장에서 이번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매집이 ‘선의의 의도’임을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현 회장이 올바르고 투명하게 회사경영에 임한다면, 이를 적극 지원하고자 한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이같은 조건부 지원 의사 표명은 현 회장의 입지를 좁혀, 결국 정 명예회장이 그동안 탐탁지 않게 여겨왔던 ‘가신그룹’의 청산수순에 들어가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경우 현 회장 및 가신그룹으로 대표되는 기존 경영진과 정 명예회장측간 갈등이 또다시 표면화될 수밖에 없어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는 상태다.

 이에 따라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 등 현대그룹측은 일단 관망세를 유지하되, 향후 정 명예회장측 동향에 맞춰 법적 대응 등 구체적인 경영권 방어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한편 이날 현 회장은 “그동안 다소 오해도 있었지만 이제 더욱 새로운 마음으로 독립적인 경영기반을 다져 현대그룹의 발전에 열심히 노력하겠다”면서도 향후 정 명예회장과의 구도설정, 현 경영진 유지 여부 등과 관련한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추후 정확한 입장을 밝히겠다”며 말을 아꼈다.

 특히 현 회장측은 이날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측이 “KCC는 ‘현대차그룹=범현대가’라고 표현하며 이번 분쟁에 우리를 끌어들이지 말라”고 선을 긋고 나선 것에 상당히 고무된 분위기다.

 현 회장은 조만간 정 명예회장과 만나 그동안의 오해를 풀고 그룹의 향배 등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전해져 귀추가 주목된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