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장이 단일화되면서 국가 내지는 거대 기업간 경쟁은 완성품 위주에서 부품소재 등 핵심역량을 위주로 사업화해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반도체·디스플레이·2차전지 등 첨단 기술을 요구하는 제품을 만들고 있지만 완제품 위주의 수출 확대와 대량 양산 전략을 추구한 탓에 알맹이인 부품·소재 기반 기술이 취약하다. 이에 일본·미국 등 선진국에서 부품소재를 그대로 들여와 무역수지 불안으로 연결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000년 한국의 기술 수출 총액은 2억달러인 반면 기술 도입 총액은 30억 달러로 이 중 상당부분이 부품소재 관련 기술 도입액으로 추정된다. 디지털셋톱박스·카메라폰·디지털카메라 등 수출 주력품이 잘 팔릴수록 기술수지 적자 폭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산자부는 중소 기업 형태인 탓에 우리의 부품소재 산업의 설계기술·신제품 개발능력·신기술 응용능력이 선진국의 70% 수준에도 못 미치고 금형·표면처리 등 생산기술 수준도 80% 미만으로 평가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정부가 지난 2000년 부품소재 산업 특별법을 제정하고 산업육성에 발 벗고 나서면서 핵심 소재 개발에 성공하거나 양산화가 급진전되고 있다. 5∼10년 후에는 부품소재 기술 자립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삼성종합기술원은 최근 새로운 액정 배향 공정을 통해 세계 최고의 응답 속도를 갖는 액정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 선진 업체에 도전장을 낼 계획이다. 재료 전문업체 동진쎄미켐도 LCD 핵심소재인 액정을 산학 협동을 통해 개발, 상용화에 나섰다. 액정은 독일의 머크와 일본 치소가 세계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LCD 핵심 재료로 그동안 특허와 신뢰성이 문제가 돼 개발이 지연돼 왔다.
두산은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유기EL에서 발광재료로 사용되는 여러 색상의 유기화합물질을 내년부터 양산할 계획이다. 물론 독자 특허도 획득했다.
또 서울대 차국헌 교수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차세대 반도체의 핵심 재료, 저유전절연물질(Low-k)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현재 국내 기업에 기술 이전을 추진 중이다. 이 재료를 활용하면 비메모리 반도체는 속도가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빠르고 두께는 절반 이하로 얇아지며 전력 소모도 줄어들게 돼 반도체 강국의 역사를 새롭게 쓸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카메라폰의 핵심 소재인 CMOS 이미지 센서 분야에서 애질런트·필립스·산요 등 유수 업체와 자웅을 겨루고 있다. 품질과 가격경쟁력이 뛰어나 휴대폰 2위 업체인 삼성전자는 카메라폰의 70∼80%를 하이닉스측 물량으로 채우고 있을 정도다.
LG전자와 벤처기업인 에코조인은 독자적인 무연솔더(lead free) 특허를 보유, 올해부터 일본과 미국이 양분한 무연솔더 시장에 본격 진입할 계획이다.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시장이 이제 막 형성된 무연솔더는 크림 타입의 경우 ㎏당 15만원대로 기존 납솔더 대비 3배 이상 비싼 제품이다.
삼성전기는 올해 휴대폰 기판 부문에서 대만 컴팩·일본 마쓰시타 등을 당당히 제치고 올해 1위 등극을 자신, 우리도 완성품이 아닌 고부가 부품산업에서 1등 제품을 하나둘씩 배출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이러한 여세를 몰아 2007년까지 디지털 튜너·적층세라믹콘덴서·광픽업 등 제품에서도 1위를 달성할 계획으로 선행기술 개발에 박차를 하고 있다.
이외에 코칩·파츠닉·LG이노텍·자화전자·모아텍·심텍 등 업체들도 전기이중층콘덴서·LED·RF통신 복합모듈 등의 핵심기술 개발에 진력, 가시적인 성과를 얻는 등 부품소재 산업의 르네상스가 도래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삼성종합기술원 손욱 원장은 “부품소재를 주로 수입에 의존, 선진 기업들과 차별화된 완제품 개발이 어려웠지만 최근들어 90년대 비교해 핵심 부품소재 기술 개발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제조업의 체질 개선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
손재권기자 gjac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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