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시행령을 둘러싸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정보기술원가표준원과 전자신문사는 시스템통합(SI) 및 소프트웨어(SW) 산업 발전을 위한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긴급 좌담회를 개최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한국SI연구조합이 후원하고 ‘정보화사업의 수·발주 제도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지난 1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6층 칼튼룸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정보화사업의 △예산 및 대가 산정 제도의 발전방향 △수·발주 및 계약제도의 개선방향 △공정경쟁체제 확립 방안 외에 SI산업의 신성장동력화 문제 등을 놓고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이주헌(사회·한국정보기술원가표준원장·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최근 정보통신부가 사업자의 매출액 규모에 따라 국가 정보화 프로젝트 참여를 제한하는 내용의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시행령을 발표하는 등 정보화 사업의 수·발주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통부가 고시한 매출액 규모에 따른 사업참여 제한을 놓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입장이 상반되는 등 SI 및 SW 업계의 현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김선배(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현대정보기술 사장)=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는 시행령과 관련해 정통부와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번 문제를 놓고 사전 조율은 없었다. 중소기업 활성화 지원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중소기업이 일정규모 이상 사업을 수행할 능력을 갖췄는지에 의문이다. 그리고 대기업의 사업참여 기회 제한에 대해서는 충분한 분석을 통해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역할 분담과 교통정리가 중요하다.
△김인(삼성SDS 사장)=이번 시행령은 발상 자체가 이해가 안된다. 이번 결정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도 역행한다. 현재 대기업은 SI의 사업 구조상 중소기업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삼성SDS도 대부분의 프로젝트를 중소기업과 협력해 수행하고 있다. 전세계 IT 서비스 시장 규모가 6400억달러에 이르지만 국내 IT 서비스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작은 국내 시장에서 경계를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해 경쟁력을 키워 나가야 하는 마당에 사업 규모를 기준으로 대기업의 프로젝트 참여기회를 제한하려는 시행령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
△이주헌=SI 및 SW 시장과 관련해 정통부가 건전한 구조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반대하고 있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간 대기업의 지나친 과당경쟁 속에 중소기업들이 희생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의견도 있다.
△윤영민(전자정부전문위원회 위원·한양대 정보사회학 교수)=공공부문 프로젝트들의 흐름을 보면, 대형사업에서 소형사업으로 넘어가고, SI에서 보완성 SM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사업규모를 기준으로 프로젝트 참여기회를 제한할 경우 대형 SI업체들이 역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 반면 과당 경쟁이 심해지면 우수 중소 솔루션업체들이 살아남기 어렵다. 이런 두 가지 점을 동시에 고려해 대기업과 중소 솔루션업체들이 공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이철수(경원대 소프트웨어대학원장·전 한국전산원장)=정통부가 SI 및 SW산업을 살리기 위해 사업자별 사업기회를 제한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했던 배경에는 대기업도 자유로울 수 없다. 저가에 수주하고 손실을 중소기업에 떠넘기는 구태로 인해 중소기업들이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에 제대로 된 협력관계를 보여줬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대기업도 다양한 공공 분야에서 나름대로 특성화 및 차별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주헌=이번 시행령은 차치하더라도 그동안 정부 프로젝트의 예산 집행 및 발주 관행에 대해서도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인=현재 SI 및 SW 사업 대가에 대한 기준은 합리성이 떨어진다. 특히 IT 프로젝트 특성상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업무 범위가 수시로 변경될 수 있지만, 정부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이같은 탄력성을 기대하기 어렵게 돼 있다. 즉 ‘변경관리’가 관건이다. 따라서 SI사업 발주자의 ‘변경관리 시스템’ 같은 장치가 필요하다. 지식산업이라는 SI의 특성을 고려, 발주기관에서 프로젝트 진행과정에서의 ‘변경’을 수용한다면 SI업체들의 적자구조가 많이 해소될 것이다.
△이철수=정부 프로젝트는 예산확보와 편성이 관건이다. 아쉽게도 현재 공공 프로젝트는 예산 산정단계부터 문제가 되고 있다. 사업 규모가 큰 IT 프로젝트의 경우 다년간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정보화전략계획(ISP) 수립을 통해 적절한 예산을 확보하고, 사업 단계별로 정산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예산에 얽매인 정보화 사업은 당초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도 싸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재차 깨달아야 한다. 예컨대 웹에 공공기관이 발주해 온 정보화 프로젝트 관련 정보 및 데이터를 집적하거나 단일화된 기구를 통해 발주 선진화를 꾀한다면 지금보다는 예측가능하고 타당성 있는 예산 기준 및 집행을 보다 쉽게 합리화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공공 프로젝트의 대가를 미리 산정해 주는 전문기관이 만들어져야 한다.
△윤영민=발주기관의 전문화가 요구되고 있다. 정부기관이 발주할 수 있는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발주기관의 전문성 부족은 곧 발주 관리의 후진성을 제공하는 근본 요인이다. 결국은 인력의 문제다. 이와 관련, 공무원들의 인사문제가 심각하다. 1년 동안 한자리에서 2∼3명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순환인사를 하다보니 다년도 사업인 경우에 혼란을 겪기 일쑤다. 특히 전자정부사업의 경우 다년간 사업인데 ‘변경관리’가 없으면 안된다.
△김선배=발주처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데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발주처의 담당자가 변경되면 똑같은 내용을 재차 반복해야 한다. 심지어는 SI 및 SW업체들이 발주기관을 대신해 사업 제안 내용을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 부처 업무가 표준화돼 있는 만큼 정부의 정보화 마스터플랜 아래 표준화된 시스템을 통한 일원화된 발주 시스템을 준비해야 한다.
△이철수=필요하다면 업계에서 공무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예측 가능하고 분석 가능한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떠나는 공무원과 새로 온 공무원간 발생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윤영민=정부 프로젝트가 부처별로 발주되는 것도 발주 선진화를 위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의 예산은 한정돼 있고 사업 기관별로 프로젝트를 발주하다보니 예산의 융통성 있는 책정 및 활용은 불가능하고 여기에 부처이기주의 등 구조적 문제까지 겹쳐 있다. 예산의 효율적 집행과 각 부처의 사업 목표 달성을 위해 프로젝트 발주 및 예산 등을 거중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기구가 마련돼야 한다.
△이주헌=각종 사업 수주를 위한 제안서 작성과 벤치마크 테스트 비용과 관련해 업계에서 요구하는 것이 있을 것 같다.
△김선배=정부의 사고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세금을 낭비하는 건 안되고 기업이 투입하는 비용은 낭비해도 된다는 안일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통상적인 사업 제안서 작성 비용은 프로젝트 규모 대비 3∼5%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러나 사업을 수주하는 1개 업체를 제외하곤 모두 비용 부담으로 되돌아온다.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사업 제안서를 아무나 낼 수 있도록 할 게 아니라 검증을 거친 업체들만 제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인=자격 요건을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정부가 제안서 비용을 제한적으로 나마 인정하고 사업자 평가에 있어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과 컨소시엄을 이룬 업체에 가산점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업체의 제안비용뿐만 아니라 입찰과 수·발주 제도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윤영민=지금 논의하고 있는 문제는 진화 혹은 개선 가능성이 충분하다. 지금까지는 업계가 목소리를 내봤자 정부가 들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민간 힘이 갈수록 커지고 있고 참여정부의 의지 또한 있다는 점에서 당장 변화가 안되더라고 지금까지의 관행을 떨치면서 진화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이주헌=현 정부의 SI 및 SW산업에 대한 평가와 IT산업 발전을 위한 생각들을 듣고 싶다.
△김선배=IT기술을 근간으로 사업을 하고 해외 시장에서 국가 경쟁력 향상에 이바지해 온 SI 및 SW 분야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적은 것 같아 아쉽다. 정통부의 신성장 동력에도 SI는 빠져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분야가 SI라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IT산업 부양을 위해서라도 SI에 대한 관심을 가져 달라고 주문하고 싶다.
△이철수=국내 공공분야에서 SI산업이 얼마나 확장될까 하는 점에는 의문이다. 공공분야의 경우 부처별로 정보화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범부처 차원에서 정보화에 필요한 요소들을 찾아나간다면 SI산업은 성장할 것이다. 아울러 SI산업은 해외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 정보화 수준을 외국에 소개할 수 있는 자료를 정부와 SI업체가 함께 만들어 계속 홍보를 해야 한다. SI와 SW는 실제로 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김인=SI 및 SW 산업이 국가의 국책산업이며 기간산업이라는 인식을 정부가 가져야 한다. 최근의 극심한 청년 실업과 제조업 공동화 등 어려운 경제여건 아래, SI 및 SW 산업이 기여하고 있는 바를 인정해야 한다. 우리나라만큼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기 좋은 여건을 갖춘 나라에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은 SI와 SW 산업이다. 정부가 SI 및 SW 산업에 대한 인식을 바꿀 때, IT에 관심과 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 농업 경쟁력을 위해 향후 119조원이 투입될 거라고 하는데, 앞으로 5년이고 10년이고 20조원만 SI 및 SW에 투자한다면 새로운 IT 경제를 견인하는 돌파구가 될 것이다.
△윤영민=SI를 포함해 지식산업 및 미래산업 분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인도할 수 있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인데 현재 어느 부처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다. 정보사회의 미래지향적 사고와 세계를 열어가는 데 필요한 무언가를 해줘야 하는데, 현실에 지나치게 경도돼 있어 앞으로 10년 앞을 내다보는 정책은 지체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SI 및 SW 산업을 미래지향적 산업으로, 신성장 동력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가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고 육성하고 지원해야 한다.
△이주헌=오랜 시간에 걸쳐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SI 및 SW 산업이 국가전략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앞으로 많은 관심과 조언을 부탁한다. 이 자리에서 논의된 내용에 대해 특히 정부 정책 담당자들이 주의깊게 귀를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리=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kr
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kr>
◆ 한국정보기술원가표준원은
한국정보기술원가표준원은 지난해 3월 발주기관과 수주업체의 중립적 위치에서 정보화사업 대가기준의 연구와 교육사업을 전개하는 동시에 대가산정 대행업무 및 전문가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정보기술업계 관계자 10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으며, △사업대가 산정모델 연구 △기능점수 도입확산 △원가산정 서비스 △사업대가산정 전문교육 및 자격제도 시행 △사업대가분쟁시 유권해석 △정보화 성과평가 연구 등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