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메일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이다. 스팸메일 문화현상 속에는 우리사회의 부정적인 메타포가 집약되어 있다. 언뜻 보더라도 상업주의와 이기주의라는 기본 틀 안에 그릇된 성문화, 청소년문제, 개인신용위기, 사행성문화 등이 드러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직접 노출되니 않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개인의 프라이버시 남용에 관한 문제이다.
스팸메일 문제를 “정보통신산업”과 관련한 문제로 볼 것인지 아니면 개인의 “프라이버시” 차원의 문제로 볼 것인지에 따라 그 해법이 달라진다.
지난 11월 5일 `스팸메일 규제 방안 마련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많은 전문가 그룹이 옵트인 제도 도입을 주장한데 반해 정통부 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제시했다.
※ `옵트인`(Opt-in)이란 사전 동의를 얻어야만 e메일을 보낼 수 있게 하는 방식이며, `옵트아웃`(Opt-out)은 메일을 받은 뒤 사후에 거부의사를 밝히면 더 이상 보내지 못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아직까지 옵트인 방식이 스팸메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옵트인으로 갈지는 정해지지 않았으며 연말께 정부 입장을 최종 정리하겠다”
정책을 결정하는 국가기관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신중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확신”을 갖기까지 과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 궁금해진다. 그 동안 정보통신부는 줄곧 옵트아웃 방식에 대한 견해를 유지해 왔다. 그 사유 또한 중소 사업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였음은 익히 잘 안다. 여기서 옵트인 도입에 대한 고민의 본질을 엿 볼 수 있다.
옵트인 도입이 무리라고 주장하는 쪽의 견해는 항상 두 가지 문제를 주장한다. 하나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이메일 마케팅이 필요한 중소사업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이제 억지논리에 가깝다. 표현의 자유는 항상 프라이버시와 충돌한다. 표현의 자유의 한계는 당연히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선이다. 스팸메일로 인한 국민 개개인의 불편과 불쾌함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프라이버시를 앞에 두고 ‘표현의 자유’ 라는 논리는 이제 그만 써먹기 바란다. 이미 용도 폐기된 지 오래다.
불법 스팸메일을 판단하는 기준은 법령에 있지만, 적법한 경우에도 스팸메일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수신자에게 있다. 수신자가 스팸메일로 느끼면 그만이다. 따라서 스팸메일 문제는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불법 스팸메일이 있는 것 이상으로 적법한 스팸성메일도 난무한다. 불법 스팸메일은 어차피 규제의 틀 밖에 존재한다. 그러나 합법적인 스팸메일은 제도의 틀 안에 있다. 불법 스팸메일과 합법 스팸메일 중 어느쪽이 더 많을까? 정확한 자료를 구해 볼 수는 없었으나, 내 메일박스만 보더라도 합법적인 스팸성 메일의 규모가 만만치 많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옵트인 제도를 도입하면 중소사업자의 이메일 마케팅 활동이 위축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오히려 옵트아웃 제도 하에서 중소사업자의 이메일 마케팅 활동이 더더욱 위축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물려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옵트아웃 제도 하에서 규제와 처벌의 강화는 결국 불법 스팸메일에 대해서만, 그것도 결과에 따른 반응에 속한다. 합법적인 스팸성 메일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 법제도만 비키면 합법적인 스팸성 메일을 얼마든지 보낼 수 있다. 어찌 보면 중소사업자에게 말이 되는 듯 하다.
그러나 이메일을 주고받기 위해선 메일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 스팸성 메일로 장비와 네트워크를 비롯한 엄청난 자원이 소모되는 메일 사업자 입장에서는 스팸성 메일이 난무하는 환경은 별 차이가 없다. 따라서 대다수 이메일 사업자는 스팸성 메일로 인한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차단정책을 도입한다. 심지어 적법한 스팸성 메일을 완벽히 걸러내기 위해 방책을 세워 운영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메일 내용 중에 “광고”, “정보통신부” , “수신거부” 등의 문자가 있으면 아예 스팸성으로 판단하여 차단하는 식이다. 즉, “법을 지키는 스팸성 메일은 차단한다” 는 얘기가 된다. 물론 이 같은 자기방어는 더욱 강화되고 있으며, 사업자 입장에선 피해를 줄이기 위한 타당한 사업적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대기업들도 점차 이러한 차단정책을 도입하고 있으며 말 많은 온라인 우표제도 그 내용의 본질은 허락 받은 회원에게만 메일을 보내라는 주장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옵트아웃 제도 하에서 규제와 처벌만 강화되는 사이 시장은 나름대로의 살 궁리를 해나가는 형국이다. 아직도 중소사업자의 이메일 마케팅 활동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가 통한다고 생각하는가? 옵트아웃 환경에서 중소사업자의 스팸성 이메일 마케팅 활동은 이미 시장에서 “스팸” 으로 정죄 되기 시작한 지 오래다. 착각하지 말라.
스팸메일 범람은 문화 현상이다. 문화적 흐름은 처벌과 규제로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문화적 흐름의 기본이 되는 골격을 손대야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 옵트아웃과 옵트인은 배타적인 개념이다. “일단 보낼 수 있다” 와 “허락 받기 전에는 보낼 수 없다” 는 내용적으로는 혁명적인 시각의 전환이다.
따라서 흐름이 바뀐다. ‘규제와 처벌’은 ‘문제에 대한 반응’ 이지만 ‘제도의 변경’ 은 문제의 본질을 바꾼다. 옵트인 제도가 도입되면 많은 포털 사이트와 대기업, 메일 사업자가 이에 따란 새로운 기준과 운영원칙을 세울 것이다. 그리고 나서 메일을 이용하는 이용자들의 문화적 흐름이 차차 바뀔 것이다. 지금까지는 마음대로 스팸성 메일을 보내는 문화가 기본이었으나, 상대방의 허락을 받아야 메일을 보낼 수 있는 퍼미션 문화로 점차 이동해 갈 것이다. 청소년 층의 네티켓 교육도 이점에 포커스를 맞추면 된다. 프라이버시 보호 차원에서도, 중소사업자의 이메일 마케팅 활동을 위해서도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네티켓 또는 정보통신 윤리의 기준에 있어서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가이드라인이 된다. “옵트인 문화”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배려문화”는 사이버공간 도덕 불감증을 치유하는 가장 강력한 백신이기도 하다. “옵트인 제도”는 문화적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장점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옵트인 제도 도입의 폐해는 사실상 없다. 피해자라면, 합법적 스팸메일을 보내는 사업자가 주로 해당할 터이다. 그러니 대승적 견지에선 미룰 이유가 없다.
스팸메일 문제는 ‘정보통신분야’ 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얼마든지 프라이버시 보호차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할 수 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프라이버시 보호법은 소극적인 수준이다. 대부분 "○○ 정보의 보호 및 활용에 관한 법률” 과 같은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보호보다는 활용에 초점을 두고 있다. 현재 프라이버시 보호법에 관한 논의는 현재의 부수적인 성격에서 탈피해 개개인의 모든 활동영역에 걸친 프라이버시 보호법을 제정하는 방향으로 모아지고 있다. 또한 단순한 프라이버시 보호에서 더 나아가 자기정보 통제권이 법제화되어야 한다. 이는 개인정보가 어떠한 곳에 어떠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알 권리를 뜻한다. 당연히 개인의 이메일 주소도 이 범주에 빠질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스팸메일 문제는 국민생활과 관련한 문제이다. 프라이버시 보호는 시대적 흐름이다. 그리고 약자를 최우선 보호함이 국가기관의 의무이다. 옵트인 제도 도입은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는 통찰력을 지녀야 주저 없이 시행할 수 있다. 시간을 끌다가 정보통신부가 아닌 다른 정부 부처에서 이 문제를 발벗고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 홍윤선 yshong@webstage.co.kr
필자는 우리나라 인터넷 1세대로, PC통신 유니텔과 포털사이트 네띠앙 대표를 거쳐 웹스테이지 대표로 활동 중이다. 현재 e메일을 이용한 회원관리 마케팅 서비스 오즈메일러(www.ozmailer.com)을 운영하고 있으면 인터넷 문화 칼럼리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클릭네티켓(2000, 중앙M&B)`과 인터넷 문화비평서 `딜레마에 빠진 인터넷(2002, 굿인포메이션)`이 있으며, 인터넷을 `문화`로 바라보고 해석하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홍윤선의 프랙탈 인사이트`는
`프랙탈`은 부분이 전체를 드러내고, 전체가 일부를 반영하는 카오스적 속성을 뜻하는 과학용어입니다. 눈(Snow)의 결정입자가 무한히 반복되는 모습에서처럼, 부분인듯 전체이고 전체인듯 부분의 역할을 하는 속성을 뜻합니다.
사이버 공간은 부분이 전체처럼, 전체가 부분처럼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사회의 일부에 해당하는 인터넷의 문화적 현상을 통해 사회전체를 조명하기도 하고, 반대로 사회현상을 통해 인터넷 문화를 해석하기도 하는 관점에서 통찰력있는 문화적 공감대을 나누고자 하는 글쓰기 의도를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