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아타나주아

 아타나주아

 칸느 영화제 황금 카메라상을 받은 자카리아스 쿠눅 감독의 ‘아타나주아’는 에스키모어로 촬영된 최초의 에스키모 영화다. 6개월간 툰드라 지역의 차가운 얼음 바닥 위에서 북극 올 로케로 촬영된 이 영화는 수천년 동안 구전되어 내려온 에스키모 신화를 영화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런닝 타임 168분이 너무 길다고 불평하지 말자.

 모든 민족의 신화 속에는 그 민족의 집단적 삶의 원형질이 담겨 있다. 차가운 북극에서 얼음집을 짓고 개 썰매를 몰며 순록이나 물개를 사냥해서 살아가는 에스키모인의 삶은 농경민족이나 기마민족에 비해 단순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 살건 인간은 인간이다. 존경받고 지혜로운 사람에게 이어져 내려가는 족장 승계의 전통이나 두 남자와 한 여자 혹은 한 남자와 두 여자 사이의 삼각관계, 사랑과 배신, 질투와 증오, 살인 등의 이야기가 아타나주아의 내러티브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아타나주아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외형적 서사구조가 아니다.

 이 영화는 온통 하얗다. 순백색이다. 눈과 얼음으로 덮인 북극의 땅도, 그것을 비추는 하늘도, 하얀 순록의 가죽으로 알몸을 가린 사람들도 온통 하얗다. 영화를 보는 동안 북극의 차가운 공기, 그러나 더할 나위 없이 맑은 공기가 폐 속으로 밀려드는 것 같다. 우리는 극장 의자에 앉아있는 동안 지구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 차가운 북극 대륙에서 어떤 민족들이 어떻게 삶을 영위해 왔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타나주아가 주는 최대의 선물은 무공해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도시생활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안겨주는 것이다.

 빠른 사나이라는 뜻을 가진 아타나주아는 힘센 사나이라는 뜻을 가진 형 ‘아막주아’와 함께 에스키모 부족의 용감한 사냥꾼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족장 ‘사우리’의 아들 ‘오키’는 이들 형제를 견제한다. 더구나 오키와 약혼한 사이인 ‘아투아’가 아타나주아와 심상치 않은 눈빛을 교환하자 전통적인 방법 즉 서로의 안면에 맨주먹을 교환하여 먼저 쓰러트리는 자가 아투아를 차지하기로 한다. 권력을 둘러싼 갈등, 부족의 금기에 도전하는 용감한 전사,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남자들의 결투 등을 우리는 아타나주아의 전반부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신화적 구조 안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이야기 틀이다.

 아타나주아가 아투아와 결혼하고 또 오키의 여동생까지 아타나주아의 두번째 부인이 되지만 오키는 아타나주아 형제를 살해하기로 마음먹는다. 결정적으로 게으르고 사악한 오키의 여동생이 아타나주아에게 버림받자 그 형제들이 긴 사냥에서 돌아와 지쳐 잠든 사이에 오키는 그들의 텐트를 습격해서 창으로 찌른다. 아막주아는 살해당하지만 아타나주아는 알몸으로 텐트를 빠져나가 도망친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 사랑과 복수가 이어진다. 아타나주아에 등장하는 사악한 인물들, 가령 오키나 그의 여동생까지도 우리들의 눈에는 그렇게 끔찍하게 보이지 않는다. 물론 존속살해까지 저지르지만 이미 순백의 자연에 마음을 빼앗긴 우리들의 눈에는 그런 모습까지도 그렇게 잔혹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지막, 복수의 주체자인 아타나주아가 대타협과 용서로 복수를 마감하는 모습은 에스키모인의 세계관을 확연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아타나주아 속에는 권위와 복종의 수직적 관계로 형성된 타민족들과는 다르게 수평적 관계 속에서 삶을 영위해 가는 에스키모인의 평화와 상호호혜 정신이 깃들어 있다. 우리가 눈여겨볼 부분은 바로 그런 것이며 그런 그들의 삶을 가능케 한 거대한 자연이다.

 영화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s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