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살리기` 건의문 채택 배경

 전국 이공계 대학장들이 26일 대통령 건의문까지 발표하며, 이공계 살리기를 적극적으로 호소하고 나선 것은 역설적으로 이공계 문제가 단순한 사회현상으로 간과하기엔 너무나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건의문의 목표점이 대통령을 향한 것은 이공계 문제를 단순히 과학기술계의 내부 문제가 아닌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할 국가적인 현안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란 게 일선 이공계 대학장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무엇보다 과학기술인의 사기진작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 과학기술인들이 제대로 대우받고 사기가 올라간다면, 자연스럽게 청소년들도 이공계를 선호할 것이라는 얘기.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학연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고려대 공과대학의 K모군은 “적지 않은 선배들부터 왜 이공계쪽에 지원했냐”고 물을 정도라고 전했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정권만 바뀌면 구조조정이다 뭐다해서 ‘매스’를 들이대는 상황에 사기가 높아지겠냐”며 “이공계 문제는 보수 인상, 연금확대 등으로 출구쪽인 기성 과기인의 사기를 높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수 인력의 안정적 수급을 위한 교육제도 개편을 강조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현행 대학체제와 입시제도 아래서는 이공계 기피 현상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워 △연구중심대학 육성 △대학 중심의 국가R&D체제 구축 등 획기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병역특례 확대 등 이공계 지원율을 높이기 위한 특단의 모티브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3년 10개월인 연구원의 대체 복무기간을 2년 이내로 줄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새로운 개념의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 서울대 공대 한민구 학장 일문 일답

 -어떻게 대통령 건의문을 생각했나?

 ▲지난 20일 3대 전국 이공계 관련 대학장 협의회가 공동 주관해 이공계 살리기 대책에 대한 공청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각계각층에서 이공계 문제에 대한 얘기를 듣고 사태의 심각성을 재확인, 이후 대학장들과 논의 끝에 대통령에게 건의문을 보내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정국이 혼란스러운 때에 이공계 문제에 팔걷고 나선 이유는?

 ▲중국은 빠르게 추격해오고 있고, 기술장벽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이공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들고 일어선 것이다. 나라가 혼란스럽지만, 이럴 때일수록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공계를 살리기 위한 대책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대통령 건의문 채택 이후 추진 계획은?

 ▲우선 김태유 보좌관을 통해 e메일로 대통령에게 건의문을 보내고 정부, 입법부, 산·학·연이 모두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어 인력수급 문제를 철저하게 검토해 나갈 것이다. 가능하다면 입시제도를 비롯해 교육제도 등 관련 제도를 대수술할 수 있도록 노력할 나갈 것이다.

 -일각에선 이공계 문제가 과대포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이공계 문제가 이렇게 계속 흘러간다면 경제가 어려워지고, 결국 나라가 힘들어진다. 기능공도 중요하지만, 고급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일이 시급하다. 인력을 양성하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국가차원에서 장기 비전을 갖고 다루어야 한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