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정보격차 해소도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주위에서 보이지 않게 나눔의 문화를 실천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이 사회를 밝게하는 진정한 리더들입니다.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그들의 숨은 활약상을 중심으로 이번주부터는 정보화를 이끄는 인물을 소개합니다.
법무부 정보화담당관실의 윤용범 계장(43)은 제16회 정보문화의 달 기념식에서 보호소년 및 재소자의 정보화와 선진 법무 전자행정 구현에 공헌한 공로로 영예의 국무총리상(정보화교육상)을 받았다. 수용자들도 정보화의 물결에서 낙오되지 않고 지식정보사회의 역군이 되도록 하겠다는 한 공무원의 피땀어린 노력이 10여년만에 드디어 조명받은 셈이다. 우리사회의 대표적 소외계층인 수용자들을 정보화의 물결로 이끌어 마침내 꿈을 실현하게 한 윤 계장의 이야기는 ‘노력’이 무엇인지 말없이 보여준다.
“장기간 수용소에 머물다 출소한 재소자들의 경우 새로 나온 동전만 봐도 세상이 낯설다고 합니다. 주위를 둘러보세요. 정보화 덕분에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수용자들이 복잡한 세상에 쉽게 적응하도록 하려면 정보화 교육은 필수였죠.”
윤 계장은 아주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는 표정으로 덤덤히 말문을 열었다. 어쩌면 동기는 단순했을지 모른다. 수용자들의 사회 적응력을 키우려면 정보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재소자와 보호소년(소년원 학생을 일컬음)에게 정보화 교육을 시행하게 되기까지는 걸림돌이 적지 않았다. 일반 국민의 정보화도 언감생심인데 범죄자한테까지 그럴 필요 있냐는 반론이 거셌다. 당연히 예산확보 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지난 85년 법무부 서울소년분류심사원에서 소년보호직으로 공직을 시작한 윤 계장는 18년이 넘는 공직생활 동안 보호소년과 재소자들의 정보화교육에 매진해왔다.
95년 전국 소년보호교육기관에 컴퓨터교육장을 마련키로 하고 삼성SDS로부터 486 PC 200대를 기증받은 게 시초였다. 보호소년에 대한 정보화교육은 그때부터 날개를 달아 이듬 해에는 서울소년원에서 제1회 전국소년원학생 PC경진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른다.
“정보화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과 열기는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습니다. 똑똑하고 능력있는 아이들인 줄은 진작에 알았지만 학습속도와 집중력은 정말 놀라웠어요. ‘교정·교화가 다른 게 아니구나, 정열을 쏟을 대상을 만들어 주는 것이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정보화 교육의 성과에 힘입어 99년에는 소년원 교육이 특성화체제로 전환된다. ‘보호소년정보화교육추진단’을 결성해 정보통신부로부터 10억원을 지원받아 12개 소년원에 정보화교육장이 마련되도록 하고 컴퓨터산업디자인, 컴퓨터건축설계, PC수리 등의 교육과정도 신설했다. 각종 첨단 장비를 갖춘 종합정보처리교육센터도 마련, 본격적인 정보화교육을 위한 틀을 갖췄다.
이듬 해에는 법무부에 정보화담당관실이 신설돼 조직적 기반도 구축됐다. 김정길 당시 법무부 장관의 정보화에 대한 관심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사와 ‘비행청소년 및 저소득 서민층 정보화사업’을 공동 추진키로 하는 쾌거도 올렸다. 교육인적자원부와 협의해 전국 소년원에 컴퓨터애니메이션과, 멀티미디어정보통신과, 컴퓨터산업디자인과, 경영정보과도 신설했다. 모두가 윤 계장의 숨은 노력이 바탕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일은 2001년 벌어졌다. 소년원 학생들이 그동안 배운 정보화 지식을 토대로 네트워크설비 등을 담당하는 IT벤처회사 바인텍(대표 박승호)을 공동 창업한 것이다. 이후 엔씨위즈, 그린파인 등 IT벤처회사 창업이 잇따르자 법무부는 지난해 소년원학생 창업지원을 위한 ‘서울소년창업보육원’까지 열었다.
그의 놀라운 추진력을 확인하게 한 대목이다. 부처내에서 아이디어맨, 해결사로 통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현재 창업보육원에는 전자상거래, 전자출판, PC정비, 웹디자인, 네트워크관리, 영상미디어 등 IT과정이 다양하게 마련돼 IT창업 인큐베이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소년원 출신이라는 기억은 아이들에게 평생 어두운 그림자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법적으론 아무런 기록도 남지 않지만 마음이 어디 그런가요. 창업은 아이들에게 생활의 기반을 마련해줄 수 있고 나아가 미래에 대한 꿈과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입니다.”
한편 윤 계장은 수용자 정보화뿐 아니라 전자결재시스템, 지식관리시스템 등의 구축도 적극 추진해 법무행정의 정보화에도 기여했다. 수작업에 의존해오던 소년원·보호관찰·치료감호 업무를 전산화한 것을 필두로 법무지식관리시스템, 보호정보시스템, 교정정보시스템, 외국인등록정보시스템, 이동출입국시스템, 보호관찰모바일정보시스템 등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등 법무행정 효율화에 기여한 공로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는 지난 6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정보화교육상(국무총리상)을 받고도 상금 전액을 보호소년 창업보육기금으로 기탁해 또 한번 주위를 놀라게 했다. 보호소년들에 대한 가슴 깊은 애정없이는 하기 힘든 일이다.
“정보화를 통해 소년원이 어두운 인생의 시작이 아니라 탈출구, 나아가 꿈의 공작소가 되도록 할 겁니다. 보호소년과 재소자들을 범죄자가 아니라 내 자식이나 가족처럼 생각하고 이들을 위한 정책개발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전국 소년원 보호소년 IT교육 현황
소년원이란 법원 소년부에서 보호처분을 받은 12세 이상 20세 미만의 소년을 수용하는 곳이다. 최대 18개월 동안 각종 교육과 지도활동을 통해 원생들을 사회에 적합한 인재로 양성한다.
현재 소년원에서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멀티미디어, 정보통신, 컴퓨터그래픽, CAD, PC수리 등 정보화관련 내용을 특성화교육 및 직업능력개발훈련 프로그램에 다수 포함시켜 원생들의 정보화 능력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화 능력 향상에만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감을 되찾게 해준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IT자격증을 취득한 한 보호소년의 체험담을 담은 ‘우리도 IT맨(법무부 발간)’이라는 책에서도 이같은 사실은 확인된다.
“밤 12시까지 공부하는 데도 피곤한 줄 몰랐던 나날들. 그렇게 해서 정보기기운용기능사,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취득했을 때 제 인생에서 그 어떠한 때보다 기뻤습니다. 나도 드디어 IT맨이 된 것입니다. 실패했던 인생이었기에, 그 전환점의 시작이 이 자리라는 것을 알기에 정보화교육 훈련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모릅니다.”
보호소년들은 요즘도 윤 계장이 주도적으로 조직한 ‘소년원학생 봉사단’을 통해 지역주민이나 장애인을 위한 컴퓨터 지도교사로 활동하는가 하면 IT자격증을 취득해 관련분야 상급학교로 진학하거나 IT기업에 취업하고 있다.
95년부터 실시된 정보화교육 이수자는 연평균 2000명 이상, 학생 강사수 350여명, 컴퓨터 자격증 취득자 5500여명, 상급학교 진학자 500여명, 벤처기업 취업자 2300명 등. 이같은 숫자는 그의 숨가쁜 활약상을 입증한다. 특히 컴퓨터 자격증 취득자는 특성화교육체제가 도입된 2000년 이후 급격히 증가해 올 들어서는 일반기능이나 외국어 자격증수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법무부는 내년에도 인터넷방송센터를 개설해 보호소년들이 직접 디지털 콘텐츠를 개발토록 하는 한편 교육 프로그램을 직종별로 다양화하는 등 교육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정소영기자 s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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