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그룹사의 경영전략과 IT의 ‘화학적 결합’이 이뤄진다.
많은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은 그동안 새로운 가치 창출과 업무혁신(PI)의 구호 아래 경쟁적으로 정보화 구현에 나서왔지만 IT는 여전히 전략적 투자 대상이라기 보다 일종의 비용으로 여겼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이제 단순 IT 수요자에서 능동적 소비자로 탈바꿈하고 있다. 중장기 관점에서 정보화 프레임워크를 개발하고 자기 몸에 맞는 맞춤식 IT를 재단하기 시작했다. IT의 생산과 소비를 결합하는 ‘IT프로슈머’로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대표적 사례가 제조·건설, 금융·보험 등에 22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11위 동부그룹이다. 동부는 IT와 경영의 단순한 ‘물리적’ 결합이라는 틀을 벗고 기업의 특성에 최적화된 ‘화학적’ 결합을 통해 ‘자율경영체계’와 계열사간 시너지 창출을 꾀하는 ‘IT경영전략’을 실천하고 있다.
◇이제는 실시간기업(RTE:Real Time Enterprise)이다=동부의 IT경영전략에는 RTE의 개념이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는 기업환경에서 향후 전개될 변화과정을 시나리오화하고 상황별 대안과 즉시 실행을 위한 시스템이 매우 중요하다는 분석을 배경에 깔고 있다. 이는 하부조직에서 최고 의사결정자에 이르는 전 계통에서 정보 및 지식의 실시간 공유가 가능한 RTE가 전제돼야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동부는 IT를 근간으로 한 RTE를 구현, 업무 프로세스에서 발생하는 지연요소를 제거하고 최신 정보에 기반한 실시간 대응에 나서 기업 경쟁력의 극대화를 꾀하고 있다.
◇IT도 경영자산=IT가 비용의 관점을 넘어 인사·재무 등과 함께 최고의사결정권자가 관리해야 할 경영자산으로 바뀌고 있다. IT 시스템이 그만큼 기업입장에서 적지 않은 부문과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자산으로 인식되는 IT는 효율성과 성과를 측정해야 하는 관리의 대상이다. 동부그룹은 현재 그룹의 IT자산 및 정보화 수준 측정을 위해 제강·화학·건설·전자·화재·생명 등 각사의 IT수준진단 작업을 진행중이다. 특히 이 작업은 외국계 대형 컨설팅업체와 공조하는 일반적인 방식과 달리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함께 개발한 진단툴인 ‘동부시스템인덱스(DSI)’가 적용돼 주목된다.
동부는 DSI를 통해 각사의 IT투자 규모에 대한 정량적 측정보다 IT를 활용한 경영성과와 비즈니스 경쟁력을 진단, 향후 역량 강화를 위한 토대로 활용케 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서로 다른 각사의 사업성격을 반영한 핵심성공요인(CSF) 가중치를 적용해 고유 영역의 특성을 최대한 반영하고 이를 IT경영성과 지표로 개발한다는 목표다.
◇인하우스컨설팅=계열사별 수준 평가 및 컨설팅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지난 9월 ‘IT오피스(ITO)’를 신설했다. ITO는 각사의 자율경영을 유지하면서도 개별적으로 추진중인 IT프로젝트를 그룹차원의 시너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탄생한 조직으로 이명환 부회장의 지휘하에 박상진 상무(ITO전담)가 전략수립 및 컨설팅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ITO는 그룹 및 관계사의 IT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고 투자·성과관리 체계 구축을 위한 IT경영 전반의 정책 및 표준을 지원하는 컨설팅 조직으로 현재 IT수준진단 사업을 수행중이다. 박상무는 “지난 2년전부터 추진해온 성과주의 경영체제를 구현하기 위해 IT에 기초해 정교하고 투명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며 “IT를 경영자산으로 삼고 경영관리에 적극 채용해 그룹 및 관계사들의 자율경영 기반의 RTE로 변모케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환기자 victolee@etnews.co.kr>
◆ 인터뷰 - 이명환 동부그룹 부회장
“기업 본질에 최적화되고 환경 변화에 밀착 대응이 가능한 ‘실시간기업(RTE)’을 구현해야 IT가 기업의 진정한 디지털신경망이 될 수 있습니다.”
동부그룹 IT경영전략 총사령관인 이명환 동부 부회장(59)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뛰어넘기 위해서 이제 기업은 효과적이고 예측가능한 경영을 구현하기 위한 RTE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25년여 동안 삼성SDS 등 삼성그룹에 몸담으며 인사·재무·기획 분야를 두루 거친 부회장의 동부 IT전략의 핵심이다.
그는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만큼 시나리오 기반의 대안과 즉각적 실행이 중요하다”며 “축구선수가 경기 흐름을 읽듯 기업도 CEO에서 사원까지 모든 정보와 지식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RTE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많은 기업들이 IT를 통한 혁신을 꾀했지만 경영전략과 업종의 본질에 충실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비즈니스 고유의 성질을 분석하지 못한 IT는 비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부회장은 IT를 기업자산으로 보는 시각의 전환도 역설했다.
“대다수 CEO들은 그동안 IT를 전문가들의 특수한 고유영역으로만 인식해왔지만 이제는 인사·재무 관리처럼 기업의 주요 경영자산이라는 관점에서 IT에 대한 명확한 관리 포인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하드웨어 성능은 비약적으로 향상되는 반면 가격은 급속하게 떨어지고 소프트웨어도 개발 초기보다 시장이 성숙됐다”면서 “일시적 대규모 투자보다는 기업 주변의 환경과 기술·경쟁사 동향 등을 고려해 적정규모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IT경영 전문가로서 면모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