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 발발 이후 지난 30일(현지시간) 처음으로 한국인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현지 특수’를 기대했던 기업들에게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특히 이번 피해자가 군인·정부 관계자가 아닌 민간인으로 확인되자, 현지 진출을 계획중이던 기업뿐만 아니라 중동에 진출한 기업들까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에는 현재 한국기업으로는 유일하게 대우인터내셔널 관계자만이 남아 있으며 현대건설의 재건사업 수주 태스크포스팀을 비롯해 삼성, LG, 휴맥스등 현지에 진출해 있는 기업 관계자들은 지난주 사태 악화에 대비 쿠웨이트 등 주변국으로 철수한 상태다. 현지사정에 밝은 KOTRA 관계자는 당분간 현지 진출은 자제해줄 것을 주문하고 사태 진정후를 대비한 정보구축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업계, 대응마련에 부심=한국 기업인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동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은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중동을 총괄하는 두바이(UAE) 총괄본부에서 암만(요르단) 등 5개 지점에 테러관련 공문을 보내 20여명의 한국인 주재원뿐만 아니라 현지채용인 모두에게 이라크 출장을 자제하도록 지시했다. 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시설에는 되도록 출입을 삼가고 미군관련 시설에도 접근을 제한해 달라고 전했다.
UAE, 사우디, 요르단, 터키 등에 법인과 지사를 갖고 있는 LG전자도 공문을 통해 위험지역 출입을 삼가할 것을 당부했으며 또 안전을 위해 상호비상연락망을 확보하고 지속적으로 연락을 유지하도록 했다. 이와함께 향후 중동에서의 신규사업은 부득이한 것을 제외하고는 미루는 것을 검토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동에서 상당한 실적을 낸 셋톱박스 전문 업체인 휴맥스는 단기적으로 현지 상황이 호전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이라크 시장에 대해 관망한다는 방침이다. 이밖에 현대건설은 내년 5∼6월경 이라크 지사를 세울 계획이었으나 이번 사건으로 재검토에 나섰다. 현대건설의 관계자는 “한국 기업인에게까지 피해가 왔기 때문에 한동안 사업을 전개하기 힘들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지금은 인맥구축에 힘쓸 때=정부는 이라크의 치안불안 상황이 장기화될 것으로 우려하며 현지 진출 자제를 당부하고 있다. 특히 현지에 내년초 민간정부가 들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으나 최근의 상황으로 볼 때 내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임에 따라 사업계획도 이에 맞춰 변경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KOTRA 이라크대책반 우재량 팀장은 “현지시장에 대한 전망은 밝은 편이지만 치안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상 섣부른 진출은 금물”이라며 “진출계획을 가진 기업들은 현재로서는 인맥을 구축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며 상황이 다소 호전된 후에 요르단 등 주변국에 있는 이라크 전문 에이전트 등을 통한 우회진출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우 팀장은 아울러 “현상황에서 좋은 조건으로 사업제안을 하는 외국기업이 있을 것”이라며 “이 경우에도 현지 대사관 및 KOTRA를 통해 사전에 알아보고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라크 파병시 기업에 미치는 영향=정부가 당초 예정대로 이라크 파병시 단기적으로 중동에 진출한 국내기업에 큰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는 이라크뿐만 아니라 중동 주변국 대부분의 국가에서 반미감정이 심한 상태여서 치안 상황이 악화되고 사업에도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라크 시장이 아니라 중동 전체”라며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타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라크 저항세력이 조기에 진압되는 경우 파병에 따른 경제적 특혜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