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연구단지 조성 30주년]허허벌판에 꽃핀 `과학기술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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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해 연구 투자액 1조여 원, 고급연구인력 1만8000여명, 수행 연구과제만 5000여 건….

 무려 2780만㎡(840만평)에 조성되어 있는 한국과학기술의 메카 대덕연구단지의 현황을 숫자로만 뽑아 본 기본 데이터이다.

 지난 73년 조성을 시작한 대덕연구단지가 출연연 기반의 연구집적시설에서 산·학·연 클러스터로 변화해 오면서 어느덧 3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특히 지난 5년 간은 IMF터널을 거치며 세대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이공계 기피현상과 맞물려 수천명의 연구원들이 대학으로, 벤처기업으로, 심지어 해외로 뿔뿔이 흩어지는 아픔을 겪는 등 질곡속에서도 변혁을 향해 달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덕연구단지라는 기관차는 멈출 줄 몰랐다. 아니 멈출래야 멈출 수 없이 가야 하는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였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30주년을 맞아 어느덧 장년에 들어선 대덕연구단지가 한국과학기술의 요람에서 산·학·연이 함께 하는 클러스터형 메카로 거듭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주변을 돌아보고, 세계화에 걸맞게 틀을 갖추기 위한 조직 정비가 한창이다.

 국가 경제의 위기를 극복할 유일한 대안이자 국민소득 2만 달러 실현의 발현지로서 대덕연구단지는 이제 신성장 동력 산업의 핵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덕연구단지 관리본부 권갑택 이사장은 “대덕연구단지가 시련기를 지나 어른스런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는 전환점을 맞고 있다”며 “그동안 대덕연구단지가 우리 나라 산업사회를 일으키는 주춧돌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한국의 신성장 동력을 이끌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는데 키포인트를 맞춰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30주년 맞는 대덕연구단지=지난 74년 기반 조성에 들어간 대덕연구단지(당시엔 대덕산업기지라 불렸다)에 처음으로 입주를 시작한 기관은 표준과학연구원과 원자력연구소, 기계연구원, 화학연구원, 에너지기술연구원 등 5개 기관에 불과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돌아보며 산속에 파묻혀 있는 허허벌판인 대전 유성구 도룡동 일원을 가리켜 연구집적지로의 개발을 지시하면서 “이곳이야말로 우리 나라 국부창출의 보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올해초 정년 퇴직했지만 당시 연구단지 조성과 역사를 같이 했던 박윤순 표준연 전행정부장은 “연구원들이 초창기 비만 오면 땅이 질어져 장화를 신고 출퇴근을 해야 할 정도였다.”고 회고한다.

 이렇듯 초라하게 시작됐던 대덕연구단지가 30년만에 미래형 첨단기술 개발의 현장으로 탈바꿈했다.

 현재 대덕연구단지에는 연구기관만 출연연과 민간연구소를 합쳐 55개나 된다. 교육기관 4개, 벤처기업 158개, 공공·지원 기관 15개 등 모두 232개 입주기관에 1만8439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 중 박사인력은 4853명, 명실공히 우리 나라 과학기술의 집산지이다.

 지난 30년간 입주기관 건설 및 기반시설 등에 투자된 예산은 모두 6조1064억 원이다. 또 연구예산으로 출연연만 매년1조원이 넘는 예산을 집행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모두 13조원가량이 투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성장동력의 견인차 출연연=대덕연구단지에는 최근 국내 수출을 이끌고 있는 IT(정보통신)를 비롯한 BT(바이오)·NT(나노)·ST(항공우주)·ET(에너지)·RT(방사선) 등 첨단 연구가 대부분 망라되어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디지털이동통신시스템(CDMA)은 대표적인 ‘대박’사례다. 이를 필두로 ETRI는 전전자교환기(TDX)와 D램 반도체,행정전산망용 PC 등의 개발을 통해 R&D투자대비 144배에 해당하는 106조6509억 원의 신산업 시장 유발 효과를 창출했다.

 BT분야에선 생명공학연구원을 중심으로 형질전환 젖소 등 동물복제 기술과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국산 신약 1호 ‘팩티브’를 개발하는 개가를 올렸다.

 또 순수 국산기술로 개발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우리 별 1, 2, 3호와 과학기술위성 1호, 항공우주연구원의 국산로켓 KSR-Ⅲ도 항공우주분야에서 빼고 지나갈 수 없는 연구실적이다.

 이를 기반으로 대덕연구단지는 참여정부의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을 견인할 신성장동력의 산업화에 주력하고 있다.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등 해당 정부부처의 R&D투자 예산을 기반으로 수십조 원의 예산을 신성장동력 산업에 쏟아 부을 계획이다.

 성장동력으로 선정된 차세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차세대 PC, 미래형 자동차, 로봇, 정밀기계,신소재, 바이오, 신에너지환경, 우주항공, 지식 서비스, 텔레매틱스, 이동통신, 임베디드SW 등 대부분이 대덕연구단지와 함께 21세기를 이끌어갈 첨단 기술 분야들이다.

 ◇과제와 전망=대덕연구단지내 출연연구기관 연구진들이 매년 국내 과학기술논문의 19%정도를 발표하고 국내외 특허출원이 3만921건에 등록건수만 1만6908건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연구결과물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한국정보통신대학교(ICU),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등 국내 최고급 인재 공급기지와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 초고전압투과현미경, 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1억건이 넘는 과학기술정보데이터 등 R&D인프라는 세계 최고를 구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실속이 없는 것에 대해 출연연 연구진들은 정부가 너무 조급하게 단기성 과제나 성과물에 연연하지 말고 느긋하게 믿고 맡기는 국가적인 차원의 연구관리 풍토를 주문하고 있다.

 출연연 관계자들은 “ETRI의 CDMA연구개발 이후의 ‘대박’이 신성장동력과제에서 터질 것”이라며 “아직까지 국내에서 배출한 적이 없는 과학분야 노벨상 또한 대덕연구단지에서 해 내고야 말 저력이 있다”고 자신감을 나타낸다.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개발 주도형 혁신 클러스터’ 조성으로 재도약을 꿈꾸는 대덕연구단지의 불꺼지지 않는 첨단 R&D 실험실은 그만큼 밝은 한국과학기술의 미래를 기약해 주고 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

◆ 인터뷰 - 박호군 과학기술부 장관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를 대표하는 대덕연구단지가 서른돌, ‘이립’(而立)을 맞았다. ‘사람은 30세가 돼야 비로소 학문의 기초를 확실히 세운다’는 내용을 적은 논어에서 유래한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30주년을 맞은 대덕연구단지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럼에도 이 시점에서 우리 과기계는 분명 과도기이자 위기를 맞고 있다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드물다. 과기계의 한복판에 선 대덕연구단지 역시 마찬가지다.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은 날로 심화되고 있고, 일선 연구원들의 사기는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 과학기술 추진체계 개편이 물밑 추진되면서 IMF이후 구조조정의 악몽을 떨쳐버리지 못한 과기계가 동요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과기계의 ‘수장’인 박호군 장관은 부임 이후 줄곧 대덕연구단지 현장근무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일선 연구원들의 목소리를 현장에서 보다 생생하게 듣겠다는 그만의 소신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는 특히 참여정부 내각중 유일한 과학기술자 출신 장관이다. 그런 만큼 대덕연구단지 조성 서른돌과 함께 과기장관직을 수행하는 박 장관의 감회는 남다르다.

 ―주무 장관으로서 대덕연구단지 30주년의 의미를 평가한다면?

 ▲지난 30년간 정부의 집중적인 투자로 인해 대덕에는 230개의 연구기관과 1만8000여명의 고급인력이 모여있는 국내 최고 지식산업 집약지로 자리매김했다. 반도체와 이동통신이 우리나라 수출주력상품으로 자리잡은 것도 상당부분 대덕연구단지의 몫이다. 생명공학 분야 역시 국내외 3000편의 논문이 발표되고 600건의 특허를 보유할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했다. 대덕연구단지는 그동안 산업구조의 선진화를 견인하고 고급 과학기술 두뇌의 양성과 공급기능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자부한다.

 ―대덕연구단지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구상이 있다면.

 ▲현재 대덕엔 과기부 R&D의 48.9%가 투입될 정도로 과학기술계의 구심체가 되고 있다. 앞으로도 제 2 과학기술입국을 달성하기 위해선 대덕연구단지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는 특히 대덕을 국가균형발전의 모델로 조성할 계획이다. 이와함께 동북아 R&D허브 구축 차원에서 탁월한 국내외 과학기술자와 연구소를 지속적으로 유치하고, 연구환경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일방적인 역할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이젠 연구단지 스스로와 지역사회의 노력과 지혜가 한데 어우러져야 한다.

 ―지방균형발전 차원에서 연구소 분원화가 진행중인데, 대덕의 발전에 장애가 되진 않는가.

 ▲사실 우리나라는 R&D 주체가 수도권과 대덕에 70% 이상 편중돼 있다. 다른 지역은 대학 이외에는 R&D환경이 척박하다.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들은 공공연구소가 지역별로 분산돼 지역 과학기술 혁신의 거점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 지방 분원이 지역 특성에 맞게 설립돼 대덕연구단지와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윈윈전략을 구사해 나갈 계획이다.

 ―그동안 대덕연구단지 현장근무를 통해 얻은 게 있다면.

 ▲1주일에 1회 이상 대덕근무를 통해 R&D투자확대, 연구사업 기획·평가·관리, 과학기술자 사기문제, 여성과학자 육아 문제 등 매우 다양한 애로를 들었다. 이 과정에서 과학기술인들이 잘못알고 있는 내용은 직접 설명해주고, 제도개선이 필요한 사항은 관련 실·국을 통해 조속히 정책에 반영토록 하고 있다. 특히 연구원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통해 좀 더 그들의 애로사항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게된 점이 큰 소득이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