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두루넷에서 멀어지나.’
최근 카드 사태로 LG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그룹 통신사업이 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두루넷 인수마저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LG는 지난 10월 하나로통신 주총 직전만 해도 최대 3000억원까지 자금조달의 여력이 있다고 밝혀왔으나, 카드문제가 불거진 지금으로선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기 때문이다. 여기다 두루넷 인수주체로 거론되는 데이콤·파워콤 역시 자체 자금여력은 예상 인수대금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LG통신사업의 축인 데이콤이 강력한 실현가능성을 내비치며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업계는 지난 10월 주총후 냉각됐던 하나로통신과 LG그룹 유선사업부문의 제휴 논의가 조만간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따라, 또 LG가 그룹위기를 조속히 극복하고 통신사업 자생력 확보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여부에 따라 통신시장 2차 구조조정의 상징인 두루넷 인수전이 판가름날 전망이다.
◇두루넷 매각입찰 일정=지난달말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두루넷이 제출한 회사정리계획안이 다소 미흡하다며 보완을 요구하고 내년 1월초로 인가를 미뤘다. 덩달아 내년 1월로 예정됐던 두루넷 매각 입찰도 늦춰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회사와 채권단이 하루빨리 정상화를 바라고 있으며, 강력한 인수대상자인 하나로통신이 최근 추가 외자유치를 통해 자금여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매각이 다소 앞당겨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증권가의 한 전문가는 “지난번 매각입찰에 하나로통신의 자금여력이 없었고, LG도 인수가 급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만큼 채권단도 보다 나은 매각조건을 위해서는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LG, 희망은 있다=현재로선 두루넷이 LG보다 하나로통신쪽에 보다 가까워 보인다. 지난 매각입찰때 데이콤·하나로통신이 제시한 가격이 4000억원선이었던 만큼 채권단의 기대에는 못 미치더라도 최소 이 정도 규모의 자금여력은 있어야 한다. LG의 지원을 배제한다면 데이콤이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은 파워콤으로 매각할 예정인 망 대금이다. 데이콤이 보유한 기간망·가입자망 모두를 넘기면 최대 4000억원까지는 확보할 수 있으나 매각 규모와 대금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여기다 내년말까지 예정한 4000억원 이상의 파워콤 인수대금 납입도 부담이다.
그러나 데이콤은 최근 그룹 위기가 두루넷 인수에는 큰 영향이 없다며 여전히 자신했다.
LG카드 매각이 성사되면 그룹 차원의 부담을 덜어 오히려 통신사업 투자여력이 생기는 데다, 두루넷을 인수해도 당장 모든 인수대금을 납입할 필요가 없어서다. 또한 정부가 데이콤·파워콤의 망 경쟁력인 케이블(HFC) 확충을 지원할 태세인 데다, 파워콤에 대한 두루넷의 망 의존도가 커 호락호락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데이콤 관계자는 “최근 그룹사태가 통신사업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면서 “두루넷 인수는 반드시 성사될 것이며 이같은 구상을 담은 통신사업 전략을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망=두루넷 인수전의 숨겨진 변수는 무엇보다 LG의 유선사업부문과 하나로통신이 어떤 식으로 관계를 정립할지다. 한때 논의가 활발했던 데이콤과 하나로통신의 제휴는 완전히 얼어붙은 게 사실이다. 향후 양사가 유선전화·초고속인터넷·망임대 등의 분야에서 전면전을 펼친다면 공멸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제휴보다는 경쟁이라는 게 주변의 중론이다. 만일 양사간의 제휴관계가 구축된다면 일종의 ‘신사협정’에 따라 두루넷 입찰전이 쉽게 정리되나, 반대의 경우 인수과정에서는 물론이고 앞으로 사업 전반에 걸쳐 출혈경쟁이 불가피하다. 하나로통신·두루넷의 파워콤 망 의존도가 크고 하나로통신도 두루넷을 놓쳐 자가망을 구축하게 되면 데이콤과 벌여야 할 전면전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다. 결국 두루넷의 행보는 양사의 자금여력 외에도 ‘관계설정’이라는 복잡한 변수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