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전자유통의 메카 `용산`](상)퇴색하는 `용산` 신화

무너지는 전자유통 메카 `용산`

 연말연시를 맞아 각 유통업계가 온통 특수잡기로 분주하다. 하지만 용산전자단지는 그 어느 때 보다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다. 용산단지를 찾는 고객들이 지난해 ‘절반수준’도 안될 뿐아니라 매출도 ‘반 토막’난지 오래다. 평균 20%대에 육박하는 빈 매장에 대해 ‘느는것은 한숨이요, 줄어드는 건 매상과 직원’이라는 자조 섞인 한탄이 용산의 분위기를 한껏 짓누르고 있다. ‘전자 유통의 메카’로 불리던 용산단지가 뿌리채 흔들리고 있는 양상이다. 단순히 내방객과 매출이 줄어서가 아니라 상권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용산’문제를 3회 시리즈를 통해 점검해 본다.

 

 용산전자단지에 드리워진 보다 큰 문제는 앞으로 경기가 호전되더라도 위축된 전자 상권은 좀처럼 회복될 수 없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는 점이다. 용산에서 10년째 컴퓨터매장을 운영해 온 이병승씨(컴닥터 대표)는 “매달 5, 6개 매장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른바 ‘용산괴담’을 꺼내며 “지금이라도 용산을 떠나는 것이 오히려 수지에 맞는 장사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컴퓨터 전문 선인상가의 경우는 지난해까지 빈 매장을 찾기가 어려웠으나 지금은 유동 인구가 많은 2층을 제외하고 1, 3, 4층에는 장기간 셔터를 내린 빈 매장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현재 선인상가에서만 줄잡아 70여 매장이 기약없이 새 임대주를 찾고 있다.

 집단 상가 위기는 먼저 이른바 ‘신유통’ 채널이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몇 년 전만해도 전자 제품하면 ‘용산’이었지만 지금은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채널이 곳곳에 널려 있다. 인터넷 쇼핑몰을 비롯해 TV홈쇼핑은 물론이고 집객력을 기반으로 한 할인점 등 일반 매장까지 전자 제품을 전면에 취급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게다가 지역마다 전자 전문몰이 잇따라 생겨나면서 ‘용산 메리트’는 사라지고 있다. 테크노마트를 시작으로 국제전자센터, 올 초 김포공항을 리모델링한 ‘테크노 스카이시티’가 들어선 것을 비롯해 내년에는 용산 민자역사 내에 ‘스페이스 나인’이라는 초대형 전자 쇼핑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12년째 용산단지를 지키고 있는 이상배씨(고용산쇼핑몰 대표)는 “온라인 채널이 용산의 최대 경쟁자로 등장했다” 며 “세련된 시설과 편리한 원스톱 쇼핑이 가능한 전자 전문몰의 등장으로 용산의 비교 우위가 날로 사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고질적인 임대료와 전대 문제, 고비용 매장 운영 구조 등 내부문제도 상인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마땅한 아이템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것도 그렇다. 용산을 떠받들던 조립PC 시장은 2000년이후 수요 정체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용산 경쟁력의 ‘보고’였던 도소매·총판도 인터넷 쇼핑몰 벤더로 전락하거나 하나, 둘 근거지를 옮기고 있다.

 상인들도 이런 문제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서비스 향상과 인력 재교육에 상인들은 목말라하고 있다. 하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어 겉돌고 있다. 한 때 ‘용산 재건’을 부르짖으며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각종 단체와 모임도 점차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서울시나 용산구청 등 해당 관청에서도 용산 문제는 관심 밖으로 밀려난지 오래다. 임무선 용산전자협동조합 이사장은 “비록 예전의 명성을 잃었지만 우리나라 전자산업 발전과 궤를 같이해온 용산의 노하우와 업적은 분명히 계승돼야 한다”며 “상인과 정부가 힘을 합쳐 매장 리노베이션, 공동 시스템과 물류, 온라인 사업, 서비스와 재교육 등을 골자로 체계적인 ‘용산 마스터플랜’ 수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