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에는 변하지 않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그의 영화에는 악인이라고 부를 만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립적 서사구조의 구축을 위해 주인공을 괴롭히는 반대세력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가 있다. 관객들이 일방적으로 선악의 이분법적 논리로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세상 모든 만물들의 내부에 깃들어 있는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또 하나는, 어려운 시련을 극복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확립해가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긴 터널을 지나 이름마저 잃고 방황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센이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시골에 정착한 뒤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웃집 토토로’의 남매를 보라.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런 주인공들을 통해 우리 삶에 놓여 있는 거대한 함정이나 터널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준다.
대부분 그의 영화의 주인공들은 10대의 여자아이다. 소극적이고 자기방어적인 여성보다는 오히려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중성적 캐릭터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인공들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붉은 돼지’에서도 타이틀롤을 맡은 인물은 전쟁에 대한 혐오로 스스로 마법을 걸어 돼지가 된, 붉은 돼지라고 불리는 비행사 포르코지만, 그 주변에는 2명의 매력적인 여성이 등장한다. 성인인 지나와 17살 비행정 정비사인 피오가 그들이다. 지나는 3명의 비행사와 3번이나 결혼했지만 모두 전쟁과 사고로 그녀 곁을 떠난다. 그녀는 전쟁에 의해 상처받은 인물의 대표적 상징이다.
문제의 핵심은 피오라고 볼 수 있는데, 그녀는 천방지축 순진무구하게 좌충우돌하며, 포르코와 적대적 관계에 있는 하늘의 공적 맘마유토단이나, 그들이 포르코와 대항하기 위해 고용한 미국의 비행사 커티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다. 피오는 결정적 장면에서 자신만의 당당함으로 모두를 설득시키고 서로를 화해시키며 파국으로 가는 것을 막는다.
‘붉은 돼지’의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0년대 말의 이탈리아다. 왜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탈리아를 영화의 배경으로 선택했을까. 비행기를 몰고 다니다가 관광 유람선을 터는 바다의 해적, 아니 공중에서 나타나는 공적들과, 그들을 붙잡아 현상금을 받아 먹고 사는 붉은 돼지의 설정은, 의심할 바 없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맹군이었던 일본과 이탈리아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소수의 동맹군을 다수의 연합군이 공격했던 상황에 대한 영화적 복수라고 해석하는 것이 무리일 수는 있겠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피오를 둘러싸고 사랑의 결투를 벌이는 붉은 돼지와 미국 비행사 커티스의 결투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상상적 재결투다. 당연히 붉은 돼지는 미국 비행사를 물리친다. 전쟁의 후일담이라고 부를 수만 없는, 패전국 국민으로서의 회한이 그 속에는 삼투되어 있다. 따라서 정치적 시각이 ‘붉은 돼지’ 밑바닥에는 깔려 있다. 나는 그의 정치적 시각을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이성적으로 동의할 순 없다.
그러나 ‘붉은 돼지’에는 미야자키 하야오만의 긍정적 유머가 깔려 있다. 심지어 어린 유치원생들을 인질로 잡고 돈을 요구하거나 관광객들을 노략질하는 공적들까지도 밝고 명랑하게 그려져 있다. 삶에 대한 대긍정의 따뜻한 시선이야말로 ‘붉은 돼지’에서 누구도 패자로 만들지 않는 묘법이다. 이것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에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