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이레전자 정문식 사장(4)

사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회사를 방문했을 때 900MHz 전화기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충전기를 개발하고 우선 시중에서 일정 물량을 판매했으나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거래선의 확보를 위해 휴대폰 후발업체로 뛰어든 H전자를 대상으로 OEM영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담당자와의 접촉마저도 3개월의 노력 끝에 겨우 이루어질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천으로 매일 출근을 하다시피해 겨우 얻어 낸 규격서를 가지고 2주간의 밤샘 끝에 어렵사리 샘플을 만들어 제출했다. 그후 H전자는 추가 샘플을 제출해달라고 연락을 주었으나 뭔가 다급한 처지에 있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H전자는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기존 거래 업체들의 샘플을 검토했으나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고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던 이레전자의 샘플이 의외로 만족스런 성능을 보였기 때문이다. 담당자의 다급한 분위기를 파악한 나는 모험을 걸기로 했다. 아직 30대의 샘플 테스트가 완료된 상태는 아니지만 승인 후에 생산을 하면 일정을 맞출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결과에 관계없이 H전자에서 필요로 하는 충전기 4000대를 미리 만들기로 했다.

 정상적으로 승인이 나올 경우 이레전자는 출고일에 맞춰 엄청난 신뢰를 확보할 수 있지만 승인이 나지 않는다면 엄청난 손실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종 테스트에 합격이 된 후 담당자가 납기 일정을 조르기 전에 내일이면 납품할 수 있다고 하자 그는 놀라는 눈치였다. 처음엔 모두들 믿지 못하였지만 다음날 납품을 하였던 것을 시작으로 H전자와 이레전자의 협력관계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사업이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으나 또다시 새로운 사업을 하기로 하고 외국에서 본 900MHz 초소형 무선 전화기사업에 뛰어들었다.

 기왕이면 세계에서 가장 작은 제품을 만들려는 의욕으로 디자인을 하고 전화기 전문 개발업체를 찾아서 개발을 의뢰했다. 일부에서는 늦게 뛰어들었다는 점 때문에 우려를 하기도 했으나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었다. ‘프리폰’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이 무선전화기는 헤드세트를 이용해 허리에 차거나 호주머니에 넣고 일반 휴대폰처럼 사용할 수 있어 다른 회사들의 제품과 차별화가 가능했다. 무선전화기 모형을 들고 미국 컴덱스에서 미국 최대 통신회사인 벨 부스를 찾아가 다짜고짜 사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집요하게 요청했으나 퇴짜만 맞았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접촉해 3일 만에 5분의 면담 시간을 얻었다. “이것이 이번 저희 회사에서 개발한 초소형 전화기입니다.” “그래요. 훌륭하군요. 그런데 이건 장난감이 아닌가요?” “예, 아직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더만 내려 주신다면 곧 완제품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당신 같으면 어쩌겠소. 내가 당신한테 장난감을 들고 가 ‘이것 좀 사주세요’ 하면 당신은 사겠소? 그래 정말 만들 수는 있겠소?” 그렇게 말하면서도 벨의 사장이 명함을 집어넣는 것을 보며 한가닥 희망을 부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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