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그래픽분야 인력 2∼3명 정도만 더 있으면 한층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텐데 아쉽습니다.”
핵심엔지니어 부족으로 제품 출시를 늦추고 있는 게임업체 L사장의 하소연이다. 그는 청년 실업률이 두자릿수에 육박하고 있고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진 현재의 취업환경에서도 구인난에 시달려야 한다는 작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푸념한다.
지방 IT업계의 문제는 기술인력뿐 아니다. 제품개발을 끝내놓고 마케팅을 못해 발을 구르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인력을 뽑기도 힘들거니와 일을 가르쳐 익숙해질 만하면 서울이나 대기업으로 가버린다. 이래저래 지방 IT벤처들의 박탈감은 가중되고 있다.
지역연고가 있는 프로그래머를 물색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던 K사장은 무안당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가까스로 찾은 프로그래머는 납득하기 힘든 조건을, 너무나 당당한 태도로 요구했다고 한다. 근무기한도, 급여도 일방적으로 제시했다는 것.
지역의 중소 IT업계 현실을 모르느냐는 K사장의 힘없는 말에 프로그래머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보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발자를 구하기는 커녕 한동안 자신이 ‘아무도 몰라주는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자괴감에 시달렸다는 K사장은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지방 벤처는 침몰하는 일밖에 안남았다”고 말한다. 정도를 넘어서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게 그의 인식이다.
이공계 기피 완화와 고급 연구인력 양성을 위해 정부가 나서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 지방 IT업계 사장들에게 기술인력난은 중앙에서 보는 것보다도 훨씬 더 심각하고 냉엄한 현실이다.
흔히 지방 IT벤처들은 ‘국가 10대 신성장동력산업 육성사업’의 기반이라고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 벤처들은 이 거대 담론으로 눈을 돌릴 여유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고급인력 부족 현상에 따라 추가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마케팅도 할 수 없는 지방 IT벤처들은 이미 산업계의 중증환자로 내몰리고 있다.
<부산=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