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이레전자 정문식 사장(5)

 “5만대를 사겠소. 그리고 이것은 당신의 열정을 사는 것이오.”

 전혀 기대치 않았던 벨 사장이 주문을 냈다. 그리고 이 주문에 이어 추가로 7만대의 주문이 들어 오면서 회사는 정상적인 궤도에 진입했다.

 점진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이레전자는 더 이상 전선을 가공하던 단순한 하청업체가 아닌 어엿한 제조업체로 발돋움을 하게 되었다. 특히 어느 분야보다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정보통신 분야로 사업을 확대함으로써 기술 개발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었다.

 이왕에 개발을 한다면 세계 최초의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실시간 화면 분할기 개발에 착수 했다. 이 제품에 대해 설명을 들은 CCTV업체들은 적지않은 관심을 표명했다. 착실히 개발이 진행됐으나 최종 판매를 위해 승인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전자파 차단에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생했다.

 해결점의 돌파구가 나타나지 않는 상태에서 집착을 하는 것은 비용도 비용이지만 다른 기회마저 놓칠 우려가 있다는 판단으로 개발에 대한 손실을 감수하고 이 사업을 중단키로 결심했다.

 신제품 개발의 실패로 슬럼프에 빠져 있을 즈음에 H전자에서 개발한 CDMA휴대폰의 생산에 관한 제안이 들어오자 새 기회로 여기고 은행 차입까지 하면서 과감하게 80억원이 넘는 설비투자를 했다. 기존의 협력업체이며 대기업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발생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경기가 깊은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자 H전자의 판매량이 감소하여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특히 협력업체 중에서 가장 늦게 설비를 투자하고 생산에 참여한 우리 회사가 가장 먼저 타격을 받게 됐다. 이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제와서 돌이켜보니 서로를 부축해준 직원들간의 화합이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이레전자는 통신부분에서 가장 중요하고 까다로운 TL-9000이라는 규격에 대해 세계 10번째로 인증을 획득했다. 이 시점에 생산물량의 확대에 따라 협력업체를 수배중이던 L전자와 연결이 되어 이레전자로서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최초 1만대 시험양산으로 이레전자에 대한 검증을 하였는데 생산직 사원은 물론이고 사무직 직원을 포함한 모든 임직원이 일체가 되어 수주 물량의 납품과 품질 유지에 최선을 다했다. L전자는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 판매가 크게 늘어 생산능력의 확보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레는 생산설비에 대하여 또다시 투자했으며 L전자도 이레전자에 생산물량을 지속적으로 증가시켜 현재는 월간 50만대 수준의 규모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실패를 하였을 경우에 투자비를 모두 날려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추진하는 모든 사업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보다는 실패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실패를 교훈 삼아 더 좋은 기회를 만든다면 성공으로 향하는 반석이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david@era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