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계미년(癸未年)이 저물고 있다. 올 한해는 참여정부의 출범으로 시작된 변화의 소용돌이가 IT산업계 뿐만 아니라 정관계, 재계를 비롯해 온 국민들을 생활속으로 파고들어 다소 혼란스럽기도 하고 새로운 희망을 품기도 했다. 여느해보다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변화의 한해, 화제가 됐던 뉴스 메이커들을 되짚어 본다.
◇정·관계=진대제 장관은 삼성전자의 잘나가던 CEO에서 정통부 장관으로 입각해 올 한해 화제를 몰고다녔다. 입각하자마자 터진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특유의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IT신성장동력 발굴사업과 자유분방한 행동과 말로 관가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하지만 지나친 산업 중심적 사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았다.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17년여동안 겉돌던 원전수거물 관리센터 문제를 일사천리로 진행시켜 화제가 됐다. 그러나 현지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원전센터 관련 현금보상 발언과 위도 대통령 별장 건립 발언, 원전센터 부지선정 보완정책 발표 등 깜짝발언으로 재임 내내 뉴스를 만들어냈다.
김태유 대통령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은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과학기술·정보통신 분야에서 가장 크게 부상한 인물이다. 차세대 성장동력 육성,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 등 주요 IT정책을 잇따라 내놓으며 과기부 정통부·산자부·문화부 등 IT 주무부처들과 함께 굵직꿁직한 국정 현안들을 직접 챙기고 있다.
참여정부 초대 교육부총리에 올랐던 윤덕홍 전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시행을 둘러싸고 일관성 없는 언행으로 교육계 갈등을 수습하는 데 실패한 데 이어 학교생활기록부 CD 파동, 대학수학능력시험 복수정답 파문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9개월만에 중도 하차했다.
◇통신업계=윤창번 하나로통신 사장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출신으로 나락에 빠진 하나로통신의 수장을 맡아 회생시켜 일약 스타가 됐다. 대주주 LG의 반대로 거의 힘들었던 외자유치를 극적으로 성사시켰으며,그 과정에서 하나로통신 임직원들을 ‘하나로’로 뭉치게 하는 능력을 발휘해 ‘초보 경영자’ 딱지를 확실히 뗐다.
LG 통신총괄 사장으로 화려하게 컴백GKS 정홍식 전 정통부 차관은 만감이 교차한 한해를 보냈다. 특유의 저돌성으로 초기 열세인 하나로통신의 경영권 향방에서 전세를 뒤집는 듯 했으나 막판 소액주주운동의 역풍을 맞아 경영권 확보에 실패했다. 데이콤 사장으로 내정돼 파워콤 등과 함께 LG의 유선사업을 직접 진두지휘할 예정이며 그가 제 능력을 발휘할 지는 내년도 통신서비스업계의 관심거리다.
지난해 출범한 민영 KT의 초대 사장을 맡은 이용경 사장은 올해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지난 10월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5500명 규모의 사상 최대 인력 구조조정을, 별 잡음없이 깔끔하게 처리했다. 이 사장은 나아가 부사장 직제를 없애고 엔지니어 출신의 40대 젊은 임원들을 전진 배치하는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전자·부품업계=이기태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은 모토로라를 누르고 처음으로 세계 2위에 올라섰다.
삼성 휴대폰을 최고급 브랜드로 만드는 동시에 하이엔드 시장에선 더 이상 적수가 없게 만들었다. 품질 하나로 세계 최고의 휴대폰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이 사장은 휴대폰 하나로 삼성신화, 나아가 국가 브랜드 상승에도 일조했다.
황창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사장은 낸드형 플래시메모리를 회사의 캐시카우로 키워낸 주인공. 올 3분기 이후부터는 노어형 제품으로 플래시메모리 시장을 군림해오던 인텔을 4위권으로 밀어내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수년째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세계 D램 및 S램 시장은 물론 올해 세계 1위로 부상한 플래시메모리까지 메모리 분야의 3관왕을 차지하게 됐다.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은 ‘TDR(Tear Down & Redesign)’이나 ‘6시그마’ 등 경영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디지털 어플라이언스(DA)사업을 세계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지난 69년 입사 이후 35년간 현장맨으로 근무하며, 급기야 9월30일자로 최고경영자(CEO)에까지 올라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송문섭 팬택앤큐리텔 사장은 올해 두마리의 토끼를 잡았다. 하나는 거래소 상장이고 또 하나는 내수 시장 안정적인 3강 구축이다. 송 사장은 거래소 상장을 통해 현대전자 시절 어려움을 함께 했던 직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독자브랜드로 도전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양강구도를 3강으로 만들어 팬택계열의 가치를 드높였다.
구자홍 LG전선그룹 회장(내정)은 지난 10월 LG전자 회장에서 물러난 이후 5개월만에 화려한 복귀에 성공했다. LG산전, 희성전선 등 관계사를 아울러 그룹의 진용과 시너지 효과를 본격화할 구 회장의 내년도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LG필립스LCD의 구본준 부회장은 올해 LG필립스LCD를 중대형 LCD분야 1위로 끌어올려 LCD업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또한 부회장 승진으로 LG그룹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했다. LG필립스LCD 직원의 공식 인사를 ‘1등 합시다’로 바꿀 정도로 임직원들에게 ‘1등 LG’의식을 고취시켰으며 정확한 시장판단, 과감한 투자를 주도했다.
삼성전자 AMLCD 사업부 이상완 사장은 올해 소니와의 7세대 합작건을 성사시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국내 LCD산업의 산 증인이기도 한 이상완 사장은 소니와의 합작은 물론 2010년까지 총 20조원이 투입되는 충남 탕정 LCD크리스탈 밸리 시대를 개막했다. 또 경쟁사들이 차세대 LCD라인으로 6세대 투자를 결정하는 와중에도 특유의 뚝심으로 7세대 투자를 발표, 역시 이상완 사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컴퓨터·소프트웨어=보수적인 일본 기업이 국내인을 본사 임원으로 발탁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안경수 한국후지쯔 회장. 안 회장은 지난 96년부터 7년간 한국후지쯔 사장으로 재임하며 회사를 매출 700억원대에서 3800억원대로 끌어올렸으며, 지난 6월 후지쯔 본사 등재임원으로 선임되기 전 이미 2년간 본사 글로벌경영부문 아태영업본부 부본부장과 대만후지쯔 회장을 겸직하면서 한국인 경영자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고현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은 반(反) 공개SW선봉에 서 있던 한국마이크로소프트의 사장에서 180도 위치를 바꿔 공개SW 활성화를 주도하는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KIPA) 수장으로 등극했다. 올해 IT업계에서 가장 완벽한 ‘변신’을 추구한 인물로 꼽힌다.
백종진 한글과컴퓨터 사장은 프라임산업이 한글과컴퓨터를 인수하면서 우리나라 간판 소프트웨어업체의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게 됐으나 오랫동안 비IT업계에 종사해 온 뉴페이스. 그러나 취임 후 1년이 채 못되는 짧은 기간 동안 관련 기업 인수, 신규 사업 진출 등 적극적인 경영으로 소프트웨어업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벤처·연구계=김남주 웹젠 사장은 온라인게임 ‘뮤’의 개발자로 웹젠 대박 신화를 창조한 인물. 김 사장은 올해 웹젠을 코스닥 등록에 성공한데 이어 나스닥 상장까지 일사천리로 이뤄내 화제를 모았다. 고졸 출신 CEO이라는 점에서 더욱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김 사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중국 방문 수행단에도 참가해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벤처업계 또하나의 화제의 인물은 레인콤의 양덕준사장. 코스닥예비심사에서 4번의 고배를 마신 뒤 5번만에 통과한 레인콤은 연말 코스닥시장에서 황제주로 떠오르면서 산업계 및 증권시장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업계에서 덕장으로 통하는 양덕준 사장은 지난 99년 임직원 7명, 자본금 3억원으로 출발한 레인콤을 올해 매출 2300억원, 순이익 430억원을 바라보는 회사로 성장시켰다.
서울대 수의과대 황우석 교수는 유전자 조작 및 동물 복제 기술로 ‘광우병에 걸리는 않는 소’와 ‘장기 생산용 무균돼지 복제’를 탄생시키는 연구성과로 주목받았다. 황 교수는 국내 최초로 복제 송아지 영롱이를 연구한 복제동물 연구의 대가이다. 이번에 발표한 연구 성과에 따라 이 소가 상용화되면 더 이상 광우병 걱정 없이 쇠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인간 유전자를 보유한 장기 생산용 무균돼지 기술이 완성되면 돼지에서 장기를 얻어 인간에 이식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금룡 사장은 전자지불업체인 이니시스에 취임한 이후 전자상거래 메카포털인 ‘온켓’을 런칭하면서 뉴스메이커로 부상했다. 이 사장은 온라인경매업체인 옥션의 사장으로 제직하는 동안 세계적인 온라인경매업체인 이베이에 성공적인 매각을 이끌어낸 것으로 명성을 날린 전문경영인. 온켓 런칭으로 주가가 폭등하자 ‘이금룡 효과’라는 신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재계=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은 지난 8월 4일 서울 계동 현대사옥 12층 사무실에서 투신자살하며 온 사회에 충격을 던져줬다. 정 회장이 떠난 후 부인 현정은씨가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의 회장에 취임,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섰다. 그러나 정 회장의 삼촌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대량 매입, 현재까지 ’시숙부와 조카며느리간 경영권 분쟁’이 진행중이다.
최태원 SK(주) 회장은 지난 2월22일 SK네트웍스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됐다. 최 회장 구속 후 그룹이 혼란에 빠지자, 외국계 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SK(주) 주식 14.99%를 매입하며 SK(주) 경영권에 적극 관여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9월22일 법원의 보석 결정으로 출감한 뒤 최근 경영일선에 복귀했으나 소버린측에서는 퇴진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어 내년 이사회가 주목되고 있다.
손길승 SK그룹 회장은 평사원에서 출발해 재벌 그룹 총수에까지 올라서며 샐러리맨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올들어 SK네트웍스(옛 SK글로벌) 분식회계 혐의로 기소된데 이어 1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정치권에 제공한 것이 드러나며, 부패한 기업인으로 몰락했다. 지난해 9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에 취임했다가 잇따라 터진 악재로 인해 9개월만에 중도하차 했다.
이종석 LG카드 사장도 올해 금융계를 뒤흔든 카드사태의 소용돌이 가장자리에 있었던 인물로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고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러나 채권단과 LG그룹 대주주의 힘겨루기 속에서 이방인처럼 전혀 힘을 쓸 수 없는 애환을 겪은 전문경영인이었다. 한때 부도위기까지 몰렸던 회사는 최악의 사태는 면했지만 내년에도 회사의 회생은 장담할 수 없어 그의 재기여부가 불투명하기만 하다.
하나로통신 소액주주들은 하나로통신 경영권 공방에서 재벌 LG의 손을 들게 만들어 무시못할 개미의 힘을 확실히 보여줬다. 국내 초유의 프록시(대리인) 싸움에 참여해 승리함으로써 소액주주운동의 신기원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인터넷 등을 활용한 활발한 주식 확보 활동을 벌여 경영권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