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있다.
지방 사람들이 서울을 가르켜 이르는 말이다. 대한민국이란 한 나라가 서울이라는 공화국과 그 나머지로 구성돼있다는 것이 지방사람들의 주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모든 문화, 경제, 사회 기반 시설이 집중돼 지방이 소외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난 동안 우리는 급속한 산업화를 이룩했지만 균형 없는 성장에 기초했을 뿐이었다. 이런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수도권은 교통 혼잡과 환경 오염, 토지 및 주택 부족 등 과밀 폐해에 시달리게 됐다. 이에 반해 지방은 인구와 인적자원, 자본 유출로 정체와 침체에 빠졌다. 이로 인한 지역간 불신의 벽이 높아져 ‘지연’에 얽매이는 사회 구조가 정치, 경제, 문화에까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매번 선거때 마다 가장 큰 변수는 지역감정. 지역감정은 오랫동안 국가의 화합을 가로막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부산대의 한 교수는 “지방대학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계 최고의 연구 성과를 내도 조명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세계 학계에서 인정받아도 한국서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새 정부 들어 이런 서울 집중화와 지역 갈등을 없애고 지방경제를 활성화해 국토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려는 계획이 어느 때보다 활발히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획기적인 정책을 통해 지방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역간 균형을 달성함으로써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해나가겠다는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 정책=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을 최고 국정과제 중 하나로 설정하고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설치했다. 정부는 과거 수도권의 억제를 통해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려 했던 것과 달리 전국 각 지역을 상호의존관계로 발전시킨다는 목적을 밝혔다. 정부는 그동안 각 부처별로 추진된 지역 관련 정책에 대해 종합 관리 틀을 마련하고 조정기능을 수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역 관련 정책을 조정하는 상설기구를 설립하고 이를 평가할 체계도 구축할 계획이다. 이런 강력한 체계를 구축하고 범정부적인 조정 기구 신설을 위해 정부는 3대 특별법 제정을 추진했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3대 특별법은 지방분권특별법과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다.
먼저 지방분권특별법은 중앙 권한을 지방으로 넘겨 교육·경찰자치, 지방재정 확충 등을 꾀하는 데 목적이 있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의 취지는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지방대학 육성, 지방의 산·학·관 협력지원 등을 통해 전국이 고루 잘 사는 것이다. 이밖에 국가균형발전의 핵심사업으로 수도권과 지방의 발전을 추구하는 신 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있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서는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특별회계를 신설하고 수도권과 지방의 발전 격차 해소, 지방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살린 지역 개발, 중앙차원의 지역시스템 마련 등이 포함됐다. 또 균형 발전을 위해 공공기관 등 중추관리 기능의 지방 이전을 강력히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정부투자기관과 출연연구기관, 기업 등을 전국 각지에 골고루 이전시킨다는 전략이다. 이들의 지방 이전을 촉진하려고 주택자금 지원과 주택 취득에 따른 취득세 및 등록세 감면 등 다양한 세제 혜택도 고려하고 있다.
정부는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를 행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고 재정과 세제의 분권화를 확대할 계획이다. 또 학생이 없어 무너져 가는 지방대학의 특성화를 통해 지방 인적자원을 개발하고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려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 화합의 숙제=국가균형발전을 통한 대 화합은 수 천년 동안 이어온 집중의 관성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중앙과 지방의 긴밀한 협조 체계의 구축이다. 중앙과 지방이 유기적으로 결속해 지방을 살리고 나아가 국가 전체를 살리는 위대한 균형의 시대를 열 준비를 해야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앙집권체제를 분권화해 유연하고 효율적인 국가체제를 구축하려는 중앙 스스로의 개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 지금까지 지방은 자체적인 발전 전략보다는 중앙 정부에 집중된 자원을 더 많이 분배받으려고 서로 로비경쟁을 벌였던 지방의 행정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지방은 스스로 비전과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지역 스스로 각 특성에 적합한 지역혁신체계를 구축해 가치와 지식을 창출하고 확산시켜야 한다. 지역혁신체계는 지역 내 주체들이 네트워크를 구축해 다양한 분야에서 역동적으로 상호 협력하고 공동학습하는 개방 시스템이다. 지역 내 자치단체와 대학, 기업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에서 혁신을 위한 역할을 제고해야 한다. 지역의 자체적인 발전 내용을 구체화하기 위해 자치 단체 공무원들의 기획 및 경영 능력의 신장도 요구된다. 이를 위해 중앙과 지방간 인사 교류를 늘리고 개방형 임용제를 확대해야 한다. 또 교육훈련의 내실화를 꾀해 지방 인력의 능력을 향상시켜 지방의 자립화를 꾀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
◆ 해외 성공사례 - 스코틀랜드
지식기반 사회로 이동은 국가보다 각 지역의 경쟁력이 더욱 강조 되는 시스템으로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세계 각국이 각 지역이 가진 특성을 파악해 경제발전을 도모하려는 것이 이런 이유다. 이에 따라 산·학·연·관의 네트워킹을 통한 지역혁신체계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해하는 것이 국과적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각 지역의 발전과 화합을 도모하는 지역혁신체계는 지방 정부와 대학, 기업, 연구소 등 지역의 다양한 혁신 주체들이 지역의 기술혁신과 신 산업 창출 등을 같이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이탈리아 북부의 제3 이탈리아, 미국의 실리콘밸리, 영국의 캠브리지 과학단지,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축제, 독일의 바덴뷔르템베르그, 뮌헨 맥주축제, 일본 오이타현의 1촌1품 운동, 오스트리아의 그라츠 등과 같이 선진 각국은 지역혁신체계의 구축을 통해 다양한 신성장동력을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선진국의 수많은 사례는 산·학·연·관의 유기적인 연계가 실제로 지역 내 경제발전에 매우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남한의 80% 면적에 해당하는 스코틀랜드는 지역 간 특색을 잘 살려 산업화 클러스터를 잘 구성한 나라로 꼽힌다. 스코틀랜드는 각 지역의 클러스터를 기반으로 산업을 형성해 개인 당 GDP는 1만 2512파운드, 13개 대학과 47개 단과대학이 있다. 스코틀랜드는 에디버러와 글라스고, 던지, 애버딘 등 4개 지역에 바이오클러스터를 구축했다. 이들 4개 지역은 정부를 중심으로 연구기관, 연구개발 회사, 대학, 의약기업 간의 긴밀한 산학연 협력체계를 중심으로 바이오텍 기반기술과 임상실험 기술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해 오고 있다. 바이오클러스터를 성공적으로 구축한 스코틀랜드는 페니실린, 인터페론, 복제양 돌리 등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거둬냈다.
스코틀랜드 서쪽의 글래스고에서 동쪽 에든버러 사이에 펼쳐져 있는 최첨단 산업단지 실리콘글렌은 철저한 투자개발원칙을 바탕으로 지방정부와 민간이 꾸준히 투자한 산물이다. 이곳에 대부분의 스코틀랜드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 광전자공학, 통신기술과 관련된 클러스터 MOCT가 위치해 있다. 스코틀랜드는 MOCT 산업육성을 위해 정부의 R&D 지원과 해외기업의 투자 시에도 자금지원 및 연구개발 세제혜택 등을 부여하며 세계 R&D허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특히 전자공학 설계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한 알바센터와 화합물 반도체 제조 및 인큐베이팅 시설인 컴파운드 세미컨덕터 글로벌 등이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스코틀랜드 리빙스턴에 위치한 알바센터는 스코틀랜드 정부의 주도하에 각 분야의 전문성이 있는 대학과 기업 간의 컨소시엄이다. 이 센터는 1997년 12월에 설립된 반도체, 컴퓨터, 통신분야의 복합연구단지다.
알바센터는 단순한 연구단지를 넘어 기술에 관한 교육과 응용까지 일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종합단지로 서로 연구 성과물을 사고 팔 수 있는 가상공간의 기술거래소(VCX)까지 운영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설계의 중심지를 지향하고 있는 알바센터는 세계 최초로 스코틀랜드 4개 대학인 글라스고, 에든버러, 스트라스클라이드, 헤리옷와트 대학교가 연합해 SoC 설계 석·박사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SLI(System Level Integration) 대학원 등이 자리잡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각 지방을 효율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특성을 파악한 클러스터의 정착으로 유럽의 연구개발 허브로 자리를 잡았다. 이런 인프라로 NEC와 모토롤러, ARM, 케이던스, 엡손 등이 이곳에 이미 R&D 센터를 개소했고 소니 등 세계적인 전자기업이 정기적인 직원 교육을 이곳에 위탁하고 있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