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IT기업 본사 국내 시장 입김 강해지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각 분야에서 외국계 IT기업의 대표주자로 여겨지는 MS와 IBM이 국내 시장에서 본사의 영향력을 강화할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특히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업계에서는 다국적IT 기업 지사들이 국내 시장 특성에 맞는 마케팅이나 영업방식을 토착화하려는 그간의 노력을 후퇴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어 주목된다.

 고현진 전 대표가 물러난 후 8개월 가까이 지사장을 인선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마이크로소프트(이하 한국MS)는 신임 사장 영입을 계기로 본사의 영향력을 한층 강화할 것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MS는 이미 2003년 회계연도가 시작한 지난 7월을 기해 본사 차원의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실시하고 7개 사업부의 독립 시스템으로 조직을 재정비한 상태. 이에 따라 한국MS도 현지 특성을 살린 통합적인 전략보다는 7개 사업부별로 본부장이 본사와 직보 체제를 가지고 사업 전략을 수행하게 되면서 새 법인장의 역할이 이전보다 대폭 줄어들게 됐다.

 MS 본사의 이같은 방침은 헤드헌터를 통해 물색하고 있는 지사장 선임 조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한국MS 지사장 제의를 받았음에도 고사했다는 한 관계자는 “한국MS의 새로운 지사장은 영업에 대한 권한이 전혀 없는 것을 비롯해 지사장 역할이 과거와 달리 대폭 축소돼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고 전했다.

 한국MS의 이같은 상황은 세계 전 지사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사안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리눅스를 비롯한 공개소프트웨어에 대한 육성 방안이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시점을 감안할 때 지사 운용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한국IBM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LG IBM과 그 협력사의 납품 비리 사건에 대한 책임이 한국IBM으로 옮겨지면서 한국IBM은 국내 진출 37년 만에 최대의 고비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검찰 조사가 시작될 무렵 한국IBM 내부에서는 관계자 구속 여부와 관계 없이 본사 차원에서 한국 지사에 대한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할 것이란 관측이 대두돼 왔다.

 실제로 현재 한국IBM은 예년의 본사 감사와는 다른, 강도 높은 감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IBM은 한국IBM에게 투명 경영을 더욱 강조할 것이며, 이는 과거 ‘융통성’을 발휘하며 영업을 발휘해온 한국 지사의 운신의 폭이 상당폭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본사가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이같은 움직임은 극단적으로 외국계 지사장 선임으로 결말이 날 것이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경우 한국적인 상황을 감안한 영업이나 마케팅보다는 일방적으로 본사의 지침을 전달되는 상명하달식 지사 운영이 불가피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흘러갈 경우 한국마이크로소프트와 한국IBM이 컴퓨팅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의 지사가 본사로부터 비용을 책정받아 운용되는 ‘코스트 하우스’ 수준에 머문다면 한국 IT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만약 지금의 우려가 현실화될 경우 한국을 선진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가 가능한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정부가 추진해온 다국적 기업의 R&D 투자 유치 등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 <조윤아기자 forang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