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9일 보좌관회의에서 오명 과기부장관 임명 배경과 관련, “과학기술 및 산업정책, 과학기술인력 양성 등을 부총리급 위상에서 총체적으로 기획, 조정할 수 있는 비중있는 인사”라고 말해 귀추가 주목된다.
최근 기술부총리제 도입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부총리급인 오 장관을 전격 기용한데는 무언가 큰 뜻을 담고있다는 부연 설명을 한 셈이다. 특히 차세대 성장동력 프로젝트를 계기로 과기, 산자, 정통 등 R&D ‘빅 3’ 부처간의 밥그룻 싸움이 극에 달하면서 오 장관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왜 힘 실리나=오 장관의 기용이 기술부총리제 도입에 힘을 실어주는 주된 이유는 무엇보다 그의 ‘중량감’ 때문이다. 장관만도 세번을 거치고 언론사 회장까지 역임, 부총리 혹은 총리급으로 분류되던 그가 과기부를 맡을 이유가 적다는 뜻. 실제 오 장관은 참여정부 출범 당시 유력한 교육부총리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현재로선 기술부총리는 신설이 아니고 장관의 위상을 부총리급으로 격상시키는 형태라 할 수 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 역시 이날 “과기부장관이 부총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지 기술부총리라는 직함이 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통부 장·차관을 포함, 오 장관이 산·학·연·관 등 과기계 전반에서 풍부한 경험을 통해 남다른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고, 특유의 행정 능력을 검증받은 인물이란 점에서 청와대가 기술부총리를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즉, 과기·정통·산자부의 기술부문을 흡수·통합할 경우 이공계 출신으로서 여러부처 업무에 능통한 그만한 적임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과기계의 한 관계자는 “오 장관이 진대제 정통부 장관과 이희범 산자부 장관의 경기고 선배로서 3부처를 아우를 수 있는 백그라운드를 가진 인물”이라며 “최근 차세대성장동력포럼회장 등 과학기술 관련조직 및 단체에 관심을 보인 것을 봐도 오래전부터 기술부총리를 염두에 두고 청와대와 조율을 해오지 않았겠냐”고 반문했다. 오 장관은 28일 언제 입각을 통보받았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밝힐 수 없다’고 강조, 눈길을 끌었다.
◇변수는 무엇인가=현재 정부 안팎에선 “산업기술과 기초기술, IT산업과 비IT산업을 놓고 3부처간의 밥그릇싸움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기술부총리제는 유일한 대안이자 가장 바람직한(아이디얼) 시스템이다”라는데 공감한다. 실제 오래전부터 과기·산자·정통 3부처 모두 타부처에서 하기 어려운 고유의 기능과 역할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물리적 통합보다는 기술부문을 기능적으로 통합하는 기술부총리 신설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무엇보다 태생적으로 환경이 다른 3부처를 하나로 묶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아보인다. 특히 주도권을 어느 부처가 쥐느냐도 첨예한 문제다.
산업 및 응용기술(정통, 산자)과 기초기술(과기)을 한데 묶을 경우 상대적으로 기초기술이 위축될 우려가 높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산업기술에 비해 기초기술은 아웃풋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R&D의 방향이 성과 중심으로 전개될 경우 산업기술 비중이 더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와관련, 과기계의 한 관계자는 “기술부총리로 모든 기술을 통합할 경우 전체적인 R&D 관리는 유리해질지 몰라도 갈수록 전문화되고 고도화되는 기술 트랜드를 행정이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특히 정책 경쟁이 사라져 기술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