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하기 힘들어 못해 먹겠다’
불안한 노사관계, 높은 인건비, 제조업의 공동화, 그에 따른 실업문제 대두. 이같은 악순환이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고, 산업이 고도화될 수록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문제임에도 여전히 ‘제조업이 무너진다’는 경고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이제는 ‘늑대가 나타났다’는 외침 만큼이나 체감도가 떨어져 가고 있으나 사용자 단체나 이에 동조하는 일부 보수언론들은 연일 한국 제조업의 앞날을 개탄한다. 진정 우리에겐 내일이 없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6월 내놓은 ‘우리나라 제조업의 해외 이전 동향과 대응과제’란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이 중국의 7∼8배, 관리직은 43배까지 차이난다”며 노사분규에 대한 엄정 대응과 지나친 임금임상 억제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대한상공회의소도 ‘국내 제조업 공동화 현황과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국내 제조업 일자리가 90년 504만개에서 올해는 416만개로 13년 사이에 88만개가 사라졌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하병기 산업연구원 산업경쟁력실장은 지난 12월 5일 서울 르네상스 호텔서 열린 ‘제조업 공동화와 산업구구조정’ 국제회의에서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는 제조업 성장에도 긍정 작용하기 때문에 산업 공동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조업 해외이전에두 불구, 실질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85년 24.8%에서 작년 33.4%로 오히려 높아졌다는게 하 실장의 논거다.
특히 제조업체의 해외진출은 수출로 이어져 무역수지 개선에 큰 효과가 있다. 실제로 작년 기업내 교역을 통해 중국 등 아세안 국가에서만 35억7000만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작년 우리나라 전체 무역흑자액의 45%에 해당한다.
윤종언 삼성경제연구소 기술산업실장은 “우리나라 제조업의 중국 등지로의 이전은 산업의 공동화가 아닌 ‘산업의 서진’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즉 대부분의 제조업이 유럽대륙→영국→미국→일본 순으로 주도권이 이동해 왔고, 앞으로도 한국·대만→중국·동남아→인도 등으로의 서진은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윤 실장은 “미국과 일본도 이미 이같은 서진 현상을 경험했지만 탁월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여전히 탄탄한 자국 제조업에 기반해 세계 경제를 주무르고 있다”며 “문제는 탈(脫)제조가 아니라 IT접목 등에 의한 기존 제조업의 업그레이드, 연구개발을 통한 첨단 기술력의 확보 등 ‘초(超)제조’다”고 강조했다.
제조업의 공동화. 이는 분명 2004년을 맞는 우리에게 위기이자 또다른 기회임에 틀림없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