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SK·현대 등 국내 그룹 총수들의 갑신년 신년사를 보면 대부분 글로벌 기업으로써 위상을 확립하겠다는 의지와 이를 위한 기업투명성 제고에 무게를 두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것은 공통적으로 21세기에 걸맞은 인재 육성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겠다는 의지를 시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CEO들의 강력한 의지덕분인지 실제로 대부분 기업들의 자체 인력개발원 운영형태 등 인력 육성방안이 서서히 바뀌어 왔다. 실제로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인력개발원과 같은 자체 시설은 주로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입사 사전교육 등을 위해서만 운영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이제는 회사의 앞날을 책임질 인재를 키우는데 초점을 둔 교육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발, 운영하고 있다.
기업들이 올해도 지난해처럼 새로운 인재 확보와 육성을 두고 한판 전쟁을 치를 전망이다. 올해 국내 기업의 인재 육성 방안을 짚어본다.
◇삼성·LG 올해도 ‘글로벌 인재 육성’=국내 기업들의 인재육성 프로그램의 핵심은 역시 ‘글로벌’이다.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인적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이다.
대표적인 글로벌 인재육성 기업은 역시 삼성그룹이다. 그룹의 인재육성 프로그램으로 지역전문가 과정과 MBA과정을 두고 있다. 지난 90년대부터 시작한 지역전문가 과정은 지난해말까지 총 2530여명을 배출했다. 1년동안 세계각국에 파견을 나가 본인이 직접 주제를 정하고 스스로 공부하고 견문을 넓히는 프로그램이다. 올해도 250명을 보내기로 했다.
MBA과정은 94년부터 차세대 리더 양성을 위해 만든 그룹내 프로그램이다. 해외 주요 대학 혹은 국내 테크노 MBA과정을 밟도록 지원하는 것인데 지금까지 약 460여명이 이 과정을 마쳤다. 올해도 30여명이 파견될 예정이다.
삼성이 이처럼 글로벌 인재 육성에 나서는 데는 1등만이 살아남는다는 경영철학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세계 경쟁력을 갖출 제품을 만들려면 결국 인력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좋은 인재를 채용하거나 혹은 사원을 교육시킨다는 것이다.
삼성에는 사장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되는 것과, ‘해외 우수 인력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사장단 평가항목 중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삼성이 글로벌 인재 확보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 지 보여주는 일면이다.
LG도 올해 글로벌 인재육성에 지속적인 투자를 벌이기로 했다. LG는 글로벌 인재육성을 위해 ‘글로벌 EMBA’ ‘GBC’ 등 해외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글로벌 EMBA 프로그램이란 LG가 지난 97년부터 해외 사업을 담당할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고자 연세대, 워싱턴대학교와 산학협동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만든 MBA과정이다. 이 과정은 각 계열사에서 과장, 차장, 부장 등 관리자급 핵심인재들 가운데 1차계열사별 자체 심사후 2차 LG인화원의 어학테스트, 3차 선발위원회의 면접 등 엄격한 심사를 거쳐 매년 30여명을 선발하고 있다.
특히 LG는 글로벌 비즈니스 감각과 영어 구사 능력을 제고시키기 위해 LG인화원과 미국 현지를 연계한 GBC잉글리시 과정을 운영해 사내 인력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말 중국 법인 설립 이후 가속화된 세계경영을 위해 글로벌 인재양성에 주력하기로 한 경우다. 지난해 중국 현지인을 처음으로 채용하기 시작하면서 올해부터 글로벌 인재양성을 더욱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포스코는 교육프로그램 개발 뿐만 아니라 사내 인력들의 어학교육에 초점을 두기로 했다.
◇인재상 재정립=21세기에 맞는 ‘인재상’을 새롭게 구체화하려는 기업도 늘고 있다. 두산그룹이 대표적인 경우. 두산은 박용만 사장이 지난해 10월 직접 신입사원에게 업계 최고의 연봉을 주겠다고 호언할만큼 인재발굴에 팔을 적극적으로 부치고 있다. 이런 의지를 살리기 위해 올해 인재상과 더불어 인재육성 프로그램도 새롭게 바꾸기로 했다. ‘인화’를 중심으로 했던 인재상을 새로운 시대 흐름에 맞춰 구체화시켜 올해 초에 확정하기로 한 것. 우수인발 선발을 위한 ‘피플섹션 프로젝트’와 인재육성 프로그램인 ‘G프로젝트’를 동시에 새롭게 만들고 있다.
한화그룹도 해외 인재발굴 등 전반적인 인재육성 방안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향후 그룹의 차기 경영자가 될만한 리더들을 집중적으로 선발·육성하는 방안이 될 전망이다. 태스크포스팀을 중심으로 인재육성방안을 짜고 있는 한화그룹은 인재육성 뿐만 아니라 핵심인력 풀을 어떻게 가동하고 상벌에 대한 기준도 체계화하기로 했다.
시대흐름에 맞춰 여성인력 양성에 주력하는 기업도 있다. 코오롱그룹은 계열사마다 올해 여성인력을 30% 이상 뽑도록 정례화하기로 했다.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여성인력 채용이 제조부문 등 계열사마다 편차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20%대를 조금 상회하는 것으로 집계됐다”며 “유통분야 등 섬세함과 창의력이 필요한 곳에서 여성인력을 집중적으로 양성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강화하겠다는 기업이 늘고 있다. SK그룹은 올해 인사시스템을 특별히 바꾸지는 않을 계획이나, 측정지표를 구체화해 장기적으로 인적 투자에 초점을 둘 계획이다.
동부그룹도 질적전환을 위해서는 양적확보가 필수적이라는 인식하에 경기와는 상관없이 상하반기 인력을 지속적으로 충원하기로 했다.
◇제대로 된 평가기준 갖추는 것이 급선무=외국기업과 국내기업의 인재양성프로그램 중 가장 큰 차이중 하나는 외국에서는 기업 내에서 스스로 키우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데 있다. 이미 이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자료에서 국내기업이 잘못하고 있는 사례로 꼬집은 바 있다. 상의는 ‘핵심인재관리의 성공포인트’라는 보고서에서 모든 기업에 통용되는 핵심인재는 거의 없기 때문에 각 기업의 문화와 조직에 맞는 맞춤형 인재를 자체 발굴하는 프로그램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인재부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방안이란 것이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크로톤빌센터와 일본 소니의 유니버시티라는 프로그램이 그러한 예다.
물론 우리나라도 대기업의 경우 자체적으로 매년 정기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일부 형식적인 부분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HR전문업체인 대양씨앤씨의 김진홍 총괄이사는 “최근 들어 핵심역량강화보다 한 단계 높은 경력개발프로세스(CDP) 시스템에 관심을 두는 기업이 늘고 있다”면서도 “경력개발, 인사전문가 육성, 국제금융가 육성 등 이슈는 많은데 육성체계에 대한 시스템적인 지원이 안돼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 기업들의 인재육성정책에 있어 평가보상이 우선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훌륭한 사람을 키우거나 영입을 한 후에는 포상이 뒤따라야 하는데 국내 기업들은 평가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