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가 최근 삼성전자, 삼성SDI 등 삼성그룹 전자계열사는 물론 LG전자, LG필립스LCD 등 LG그룹 전자 계열사들을 넘나들면서 협력관계를 돈독히 하는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협력관계를 맺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최근에는 전방위로 확대되고 심지어 삼성전자와 합작회사까지 성사되면서 소니 움직임에 세계 전자업체들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한국업체와 전방위 제휴에 나서는 소니=소니는 지난해 상반기 LG전자로부터 PDP모듈을 구매하기 시작했으며 PDP모니터, LCD모니터 등도 LG전자가 주요 공급업체다. LG전자는 지난해 전체 LCD모니터 생산량의 20%에 가까운 100만대 이상의 물량을 소니에게 공급했다. 또 삼성전자와 LCD합작 발표 전까지 소니는 LCD TV용 패널을 전량 LG필립스LCD로부터 구매했다.
반면 삼성그룹 전자계열사와도 협력 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소니는 메모리스틱과 관련해 삼성전자와 제휴를 체결한 데 이어 지난해 10월에는 7세대 LCD투자와 관련해 삼성전자와 합작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해, 전세계 LCD업체들을 놀라게 했다. 또 최근에는 삼성SDI로부터 PDP모듈을 공급받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외부에 알려진 것 외에도 삼성전자는 소니에 VCR, 캠코더 등 AV제품도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상당물량 공급중이다.
◇제휴는 생존의 키워드=소니는 지난해 11월 향후 3년간 직원 2만명을 감원하고 2006년까지 부품·원자재 조달회사를 기존의 20% 수준인 1000개사로 줄여 약 3300억엔의 고정비를 절감한다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또한 이 내용에는 삼성전자와의 합작사 설립이 포함돼 있다. 소니그룹은 올 상반기(4∼9월)에 순이익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66.4% 줄어드는 등 매출(-3.2%)과 영업이익(-51.3%)이 모두 감소했다. 가장 큰 이유는 PDP TV, LCD TV 등 평판 TV분야와 DVD리코더 등 주력 제품에서 타 경쟁사에 밀렸기 때문이다. 소니의 부활은 이 같은 주력 제품에서 다시 예전에 영화를 찾는 데 기인한다.
그러나 PDP, LCD모듈 부분은 투자를 집행하지 못해 국내업체들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또한 DVD리코더, VCR, 캠코더 등도 경쟁력 회복을 위해 아웃소싱이 절대적이나 아웃소싱할 수 있는 업체는 삼성전자, LG전자에 국한된다. 대만이나 중국업체들이 소니가 요구하는 품질 수준을 맞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협력하지만 향후 전쟁도 준비한다=국내업체들은 소니와의 협력은 기꺼이 하되 향후 펼쳐질 경쟁도 준비하고 있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소니와 OEM사업을 진행하면서 소니의 저력을 새삼 느낄 때가 많다”며 “그러나 조만간 세계 가전시장에서 소니와 붙게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예전에 비해 약화됐다고 해도 여전히 소니는 세계 넘버원 가전 메이커라는 점도 국내업체들이 협력을 아끼지 않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부품 차원과 기술 표준 차원의 협력은 강화하되 예전과 같이 OEM비즈니스는 지양하겠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마켓 플레이어를 지향하는 만큼 굳이 소니와의 OEM을 추진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의 한 고위관계자는 “90년대 후반만해도 트리니트론 브라운관을 구매하려고 소니측에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바 있다”며 “그러나 2000년 초반에서 소니측에서 먼저 트리니트론을 구매해달라고 요청해 당황스러웠다”고 상황변화를 설명했다.
국내업체와의 제휴로 예전의 영화를 찾으려는 소니, 소니를 통해 세계적인 가전 메이커로 도약하려는 삼성전자 및 LG전자. 두 업체는 어쩌면 같은 배를 저으면서도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른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