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화물연대 파업 당시만 해도 물류 인프라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 경쟁력을 위한 핵심 사안이었다. 정부와 재계는 물론 학계와 시민단체까지 나서 이 기회에 낙후된 물류 인프라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북아 경제 중심 국가를 위해서도 후진적인 물류 체계를 시급히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해를 넘긴 지금 정작 기대에 차 있어야 할 물류업계의 실망감이 가득하다. 대한통운의 한 관계자는 “물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유행 따라 반짝했다 사라지는 분야도 아닙니다. 탁상공론식 당위론 보다는 지금 당장 고칠 수 있는 분야부터 차근차근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정보화가 급진전되고 e비즈니스와 IT가 확산되면서 대부분의 산업이 이와 맞물려 해마다 효율화되고 있지만 물류 만큼은 10년 전이나, 5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각 기업에서 물류를 보는 시각조차도 아직도 명확하게 정립돼 있지 않아 유행에 따라 ‘우왕좌왕’하는 상황이다.
먼저 물류와 관련된 ‘저조한’ 지표는 ‘정보화 선진국’이니 ‘최대 무역국가’라는 명성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우선 국가 물류비는 5년 전과 마찬가지로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3%로 대로 미국과 일본의 수준에 크게 못미치고 있다. 우리 기업의 매출 중 물류비 비중은 11.1%로 일본 기업 5.4%의 두 배를 넘어섰다. 세계 12∼13위권 무역 규모를 가진 우리나라가 물류 만큼은 아시아 최하위권의 후진국인 셈이다. 더욱이 우리 수출 상품을 수송하는 수출입 물류의 50% 이상을 국내에 등록된 물류 회사들중 5% 정도의 외국계 종합 물류회사가 장악하고 있는 현실이다.
한 마디로 지금까지 외친 선진 물류 인프라 구축이 모두 ‘헛구호’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물류 인프라와 관련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불합리한 제도와 정책의 개선이다. 슬로건식의 구호보다는 ‘발등의 불’로 떨어진 산업계 사안부터 차근차근 고쳐 나가야 한다. 산업계에서는 설립 허가부터 창고 건립, 기본 물류업무, 산업인력 조달, 심지어 전기 사용료 등 다른 업종과 비교해 불합리한 사안을 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유통산업 발전법’ 등 제도도 보다 구체화돼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딱히 전담 정부 부처가 없을 뿐 더러 소관 업무도 산발적으로 나눠져 있어 물류 정책이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물류 기반 시설과 인프라 관련해서는 건교부와 해양수산부, 수출입 물동량 업무는 산업자원부, 물류 정보화와 시스템은 정통부와 건교부, 물류 행정은 행자부에서 부분적으로 맡고 있는 상황이다.
박대용 CJ GLS 사장은 “물류 문제가 터질 때마다 정책과 슬로건만 남발하고 세부 현안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발뺌하다 보니 물류 정책에 대한 지속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특히 제조 등 개별 기업에서도 물류을 단지 비용을 낮추기 위한 일시 과제가 아닌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전략 과제의 하나로 마인드를 고칠 때 낙후된 물류 인프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