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게임은 문화상품이다. 온라인게임을 수출하면 국부를 살찌우는 것은 물론 문화를 수출하는 부가이득까지 얻게 된다. 따라서 게임은 최고의 부가가치와 함께 문화수출의 주역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가며 디지털 콘텐츠의 왕좌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게임=문화상품’이라는 등식은 아직 성립되지 않는다. 현재 출시된 온라인게임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과연 이 상품이 우리의 고유한 문화상품인가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대부분의 작품들의 공통점은 천편일률적인 캐릭터다. 게임마다의 특징을 구별하기 힘들다. ‘리니지2’의 캐릭터와 ‘A3’의 캐릭터가 별반 다르지 않다. “신작은 출시되지만 새로운 캐릭터는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캐릭터는 국적없는 얼굴이 대부분이다. 한국인 형의 얼굴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상체보다 유난히 긴 하반신은 현실감도 떨어지지만 한국인의 체형은 더욱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체형과 얼굴생김새는 서구인에 가깝다. 여기에 캐릭터 명칭 역시 외래어 일색이다. 게임명도 마찬가지다. 내용 역시 ‘리니지’ ‘뮤’ ‘라그나로크’ ‘A3’ 등 유럽의 신화나 소설을 배경으로 제작된 서양풍 팬터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막연한 서구에 대한 동경을 게임이 조장하고 있음을 부인 못할 상황이다. 최근 동양풍 무협게임이 고개를 들고 있으나 딱히 ‘한국풍’을 찾기란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선과 악을 대표하는 상징의 구분이다. 선의 주인공은 언제나 젊다. 가냘픈 여성이거나 잘생긴 남자캐릭터가 대부분이다. 반면 악당은 백발의 늙은이가 독차지하고 있다. 흰 수염을 휘날리며 날카롭게 노려보는 눈으로 악당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온라인게임 어디에도 독창성이나 자주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의 온라인게임은 은연 중에 ‘할리우드식’ 선악의 개념에 물들어 있다. 창의성 또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단순히 게임으로 끝난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하지만 게임을 즐기는 사용자들은 무의식적으로 게임의 캐릭터를 닮아가고 싶어 하는 충동을 느낀다. 서구적인 얼굴생김새와 체형, 외래어 일색은 자존(自尊)의 가치관을 흔든다. 이쯤되면 온라인게임을 한국의 문화상품이라고 말하기에 쑥스러울 따름이다.
송병호 상명대 교수는 “개성없는 온라인게임은 곧 개성없는 한국문화를 뜻하는 것”이라며 “기존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시도의 온라인게임이 아쉽다”고 말했다.
게임 역시 수출상품이기 때문에 현지인의 공감대를 얻기 위한 ‘문화 공통분모 찾기’ 노력이라면 수긍할 수 있다. 국제상품으로 한국적 요소를 가급적 배제한 것이라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으로 한국문화를 수출하는 ‘한류’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온라인게임은 문화수출보다 외래문화 수입의 창구로서 역할이 더 크다. 이른바 ‘逆한류’가 게임을 통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주체는 역시 개임개발업체다.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한국’ 브랜드 자체가 상품이 되고 있는 즈음, 가장 한국적인 게임이 성공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따라서 게임개발자들이 한국을 인식하는 것이 우선이다. 상품성을 고려하지 않은 게임은 곤란하지만 민족문화 없는 ‘무국적 게임’은 장기적으로 문화상품으로서 게임의 위상을 떨어뜨린다.
유형오 게임브릿지 사장은 “게임의 기획단계에서부터 한국의 문화를 알릴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민족문화를 담은 게임에 대해서는 사전제작 지원의 폭을 늘리는 장려정책 등 다양한 정책적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우기자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