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기를 살리자](3)정부규제가 문제다

 “사실 (정부)밖에 있을 때 재단을 운영했는데 재단등록 하나 하는데도 절차가 상당히 복잡하더군요. 안에 있을 땐 잘 몰랐는데 밖에서 본 정부는 역시 규제가 있습디다.”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농반진반으로 던진 한마디다. 이는 정부는 그동안 묶여 있던 규제를 많이 완화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민간에서는 부족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해 준다. 이 장관은 취임당시 “산업, 무역, 수출, 에너지, 외국인투자 등 산자부 업무중 하나같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이들이 하모니를 이룰 때 문제(고용 등)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으뜸 가치관은 주체인 기업들의 애로를 풀어주고 규제를 풀어 투자 활성화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할 것”이라고 강조했고 지금도 기회가 있을때 마다 ‘기업의 기(氣)를 살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얼마전 대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한 언론사 설문조사에서 ‘수익이 남았을 경우 투자를 하겠느냐’는 질문에 58% 가량이 투자하겠다고 대답했지만 실제로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한 기업은 많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돈이 있어도 투자를 하지 않는 이유로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많긴 했지만 정부규제도 적지않은 표를 얻었다.

 이처럼 정부의 규제는 비단 이 장관의 입을 빌지 않더라도 국내외에서 다양하게 들을 수 있다.

 지난 97년 영국 웨일즈개발청 초청으로 웨일즈 지방에 갔을 때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공장을 설립해서 제품을 만들어 파는데 100여개에 이르는 도장을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기업을 경영하기란 그만큼 복잡다난한 것이었다.

 웨일즈,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등은 침체에 빠져 있던 영국의 경제를 북돋우기 위해 90년대초부터 기업설립에서 공장설립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프라 환경을 일사천리로 제공해주는 ‘원스톱 서비스’를 무기로 해외투자유치에 팔을 걷고 나섰다. 덕분에 지금 이들 지역엔 많은 선진국 기업들이 들어가 공장을 설립해 고용 창출과 경제적 부를 가져다주고 있다. 거기엔 우리나라 기업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그런데 최근 한 TV토론회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접했다. 우리나라는 기업을 설립하고 공장을 세우는데 100개의 규제·법규와 60여개의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많이 완화했다고 하지만 1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아진 건 별로 없다.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은 “일반 기업이 공장을 지어 생산을 하려해도 쉽게 땅을 살 수 없다”며 “우리나라는 기업이 공장을 지으려 해도 땅사는데부터 걸려 포기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외국인투자유치 실적이 4년연속 줄어든 것과 국내 생산라인을 해외로 이전하려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조동성 서울대 교수는 “더욱 중요한 것은 투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왜 국내에 투자를 않고 외국행을 선택하려 하는지 곰곰히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우리나라는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것보다는 투자여건을 갖추는 데 노력해야 하고 나아가서는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국가, 영국 등 투자유치 경쟁국에 비해 얼마나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시장조사를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경제 발목잡는 국회

 “국회의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모두 우리가 살길이라는 말을 되풀이 합니다. 그러나 정작 공식석상에서는 딴 소리를 하고 있고, 국회에서는 이 문제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김재철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국회의 한·칠레 FTA 비준 건과 관련해 국회에 대한 불신을 감추지 않았다. 이 시기를 놓치면 많은 것을 잃을 수 밖에 없는 현실임에도 국회의원들은, 정치인들은 상황에 따라 말이 달라진다는 것이 김 회장의 불만이다.

 칠레와의 FTA 비준에 대한 국회 동의 무산은 국회의원들에게는 국익보다는 표 계산이 우선이라는 점을 방증한다. FTA는 이미 세계 150여개국에서 발효중이고 협정국가간 호혜 무역이 주를 이루고 있음에도 무역의존도가 70%를 넘어 수출로 먹고 살는 우리는 세계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FTA 외에 국회의 정쟁과 늦장으로 많은 경제·산업활동이 지장을 받고 있다.

 방송법 개정안도 한 예다. 개정안은 발의됐으나 문광위 상임위에서조차 논의되지 못했다. 이 개정안은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데이터방송 등 디지털방송을 도입하기 위한 서비스 정의, 규제 등의 내용을 담은 것으로, 이 영향으로 신규 디지털 방송서비스를 도입하기 위한 전제조건인 관련 법안이 없는 상태가 발생했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대기업, 외국자본 지분 제한을 완화하는 방송법개정안도 처리되지 않아 SO의 디지털 전환, 대형화를 어렵게 하고 있다. 국산애니메이션 의무방영 조항도 입법이 안돼 애니메이션 업계에는 시름이 되고 있다.

 정치권은 ‘정치 상황과 경제는 무관하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국회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인식은 객관적인 사실이건 아니건 국민의 마음속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 인터뷰 - 조동성 서울대 교수

 “과연 정부규제가 풀어지고 노사문제와 정부 정책 문제가 해결되면 기업의 기가 살아나고 투자 활성화로 연결될까요?”

 ‘기업 기 살리기’를 저해하는 기업 외적인 요소와 해결방안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조동성 교수는 질문과 대답을 동시에 던졌다.

 “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면 ‘과연 기업의 투자가 되살아 날까요?’의 답은 ‘아니오’입니다.”

 조 교수는 “요즘 같은 세상에 정부가 나서서 지원하는 것은 나중에 더 심각한 구조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이제는 정부가 아니라 시장경쟁체제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지켜봐야하며 결국 기업들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는 규제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구시대적인 것을 그대로 가져가기 보다는 규제의 기준을 글로벌 스탠더드인 시장메커니즘에 맡겨두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선진국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은 예전과 같은 물량공세가 아닌 기술 투자와 차원높은 마케팅이 필요한 만큼 자율 경쟁에 맡겨둬야 한다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얼마전 정부관리와 기업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서 기업의 80%는 기업의 기를 살리고 투자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정부가 지원을 안해줘도 되니 규제도 없애줬으면 한다고 대답한 반면 정부관리의 80%는 지원과 규제도 필요하다고 대답해 대조를 보였다”며 “기업은 이제 정부의 그늘 아래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정부관리들은 반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규제를 통해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고 기업에도 그런 차원에서 적용돼 왔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호를 많이 받고 규제를 많이 받은 농업의 경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경쟁력이 낙후된 산업으로 꼽히고 있다”며 “규제의 목적은 농업의 생산력과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었는데 그렇지 못했고 이는 금융, 교육분야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과거의 생산주도 시대처럼 투자한 만큼 거둬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며 “선진국들과 경쟁해서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기술투자와 전문경영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분야에 투자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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