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대만의 PC제조 및 관련제품 생산업체인 럭션(LUXEON)의 에릭 친(Eric Chin) 사장이 국산 온라인게임을 퍼블리싱을 위해 내한했다. 그의 인터뷰 일성은 “한국 게임업체는 글로벌 비즈니스의 관행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었다. 한국 온라인게임개발 기술력은 최고 수준이지만 이를 상품화 하고 장기적인 비즈니스로 이끌어가는 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어 “한국 온라인게임업체의 과제는 시장과 상품을 냉정히 보는 글로벌 비즈니스의 안목”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11월 17일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참석한 게임산업 중장기 비전 발표회 자리. 게임업체 대표급 사장들은 거의 다 참석했다. 철저한 준비만큼 체계화된 게임산업에 대한 지원계획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때 좌중을 지키던 한 업체 사장의 건의사항은 일순간 분위기를 바꾸었다.
그는 그동안 정부의 체계화되지 않은 지원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문화관광부가 게임산업 주무부처로, 정보통신부가 관련산업을 이유로 줄을 세운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지난 한 해 10여차례 이상 ‘오라, 가라’며 시간만 낭비했다고 그는 볼멘소리를 했다. “정작 게임업체에 필요한 것은 시장을 만들어 가는 데 필요한 조그마한 정부의 역할이다. 특히 글로벌 비즈니스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초지식을 알려주는 것이 게임업체에 가장 현실적인 지원”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대부분의 온라인게임업체들이 해외를 주 공략시장으로 정하고 수출에 모든 힘을 쏟고 있는 반면 국내에는 게임 수출과 관련돼 국제관행이나 협상요령을 담은 제대로 된 ‘가이드북’ 하나없는 실정이다.
국산 온라인게임이 해외시장에서 대세를 이룬다는 측면에서 국내 업체들간의 경쟁이 곧 국제 경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의적인 차원에서 볼 때 노하우 공유없이 시행착오를 되풀이한다면 국가경쟁력 약화는 불보 듯 뻔하다. 3∼4년 전 인터넷업체들의 해외진출이 가져다 준 교훈을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글로벌 비즈니스에 우왕좌왕하는 사이 온라인게임의 최대시장인 중국은 기술개발에 나서고 있다. 자금력이 딸리는 국내 일부 업체는 소스코드까지 통째로 팔아넘기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그동안 우위로 자신해 왔던 게임개발 기술이 한순간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개발기술을 획득한 중국은 결코 시장을 내주지 않는다. 결국 단합하지 못한 국내 게임업체, 부처간 갈등에 쌓여 우선순위를 놓친 정부 모두 글로벌 비즈니스의 패인으로 남는다.
지난해 게임업계 관심 중의 하나가 액토즈소프트와 샨다와의 분쟁이었다. 로열티 미지급문제로 지루한 분쟁을 벌여오다 어렵게 협상이 타결됐다. 결과를 놓고 보자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명백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샨다 역시 나스닥시장 상장을 앞두고 잡음을 해결하자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추론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 온라인게임의 주력시장은 해외다. 그러나 시장은 개별업체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특히 해외시장은 자국시장을 방어하려는 세력과 치열하게 맞붙어야 하는 난관도 있다. 정부와 선도업체가 나서 보다 세련된 시장환경을 조성하지 않고 선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운 게 우리 게임산업의 현실이다.
<이경우기자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