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방송산업정책의 퇴행은 산업계와 ‘엇박자’를 내기 일쑤인 정책 당국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법을 만드는 국회까지 거들었다.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선정된 디지털방송이 당장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자 산업계 일각에선 정책 무용론까지 터져나왔다. 지금 당장이라도 정책 당국과 국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디지털TV정책 파행=DTV는 참여정부가 잘한 일이라는 차세대성장동력산업 발굴에 가장 먼저 선정된 산업. 그러나 참여정부가 내린 첫 정책 결정은 기존 방송 일정의 연기다. 왜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으로 선정했는지 의아하게 만든다.
TV제조업체에 미칠 악영향과 디지털TV를 구입한 소비자도 문제이나 국가기관이 소신없이 끌려다니며 책임지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방송위는 기반인 방송계의 반발을 지나치게 의식한 행보를 보여왔다. 정통부도 방송사를 의식한 소극 대응으로 일관해 문제를 키웠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전송방식 논란에 방송사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정부가 이렇게 휘둘려서야 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정부가 방송시한 연기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면서 해당 지역 시청자에게 사과 한마디 하는 걸 못 들어봤다”면서 “책임자 문책도 없는 것을 보면 역시 정부는 민간기업과 다르긴 다르다”라고 꼬집었다.
◇방송법도 ‘민생법안’=직무유기는 국회도 마찬가지다. 정치인들의 관심이 온통 4월 총선에 가면서 방송산업계의 현안을 두루 망라한 방송법 개정안이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방송통신 산업계의 발목을 잡는 방송법 개정안은 16대 국회의 마지막 회기가 될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17대 국회와 상임위 구성 이후 또 다시 발의과정을 거쳐야 해 연내 처리가 불투명하다.
<전경원기자 kwjun@etnews.co.kr><유병수 기자 bjorn@etnews.co.kr>
◆ 이해 당사자들 입장
△ 업계
-배준동 TU미디어 상무=제도 미비와 정책 추진 지연으로 위성DMB사업자 선정이 늦어지면 불필요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세계 첫 서비스 상용화 기회를 잃어 관련 산업 육성과 국가경쟁력 강화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중계기·단말기 등을 개발하는 국내 장비업체들의 일본시장 진출 기회를 잃을까 걱정스럽다.
-신만용 삼성전자 부사장(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끊이지 않는 디지털TV 전송방식 논란이 시장확대에 걸림돌이다. 광역시 디지털방송 시기까지 연기돼 마케팅이나 판매전략에 변화가 생겼다. 당초 올해엔 튜너를 내장한 일체형 제품 판매가 급증할 것으로 봤으나 차질을 빚게 됐다.
-LG전자 디지털영상사업부 윤상한 부사장=지리한 전송방식 논쟁으로 판매가 준데다 광역시 방송개시 시한도 연기돼 디지털TV 판매 목표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일본은 우리보다 디지털방송을 늦게 시작했어도 붐이 일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때늦은 논쟁으로 활성화하지 않았다. 논란을 빨리 마무리 지어야 국내 산업활성화는 물론 수출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다.
-김상근 한국전자산업진흥회 부회장=광역시 서비스 연기 자체보다 근본적인 원인인 DTV 전송방식 논쟁을 빨리 끝내 산업계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한다. 이제와서 방식을 바꾸면 서비스 자체가 3년이상 늦춰지며 내수 산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 정책 당국
-방송위=방송 주무기관이나 실제 정책 추진과정에서 문화부와의 합의 조항 때문에 독자적인 정책 수립과 집행을 하지 못했다. 방송위가 관리하는 방송발전기금 역시 방송과 관련없는 곳에 사용되는 사례가 많아 기금 운용의 효율성이 떨어졌다. 그래서 방송법을 개정해야 한다. DTV전송방식 논쟁은 어떤 선택이 더 좋은가를 따지려는 게 아니다.방송비용을 궁극적으로 부담하는 시청자 대표가 참여한 국민적 합의와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
-정통부=정통부는 지난 97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전송방식을 미국방식(8-VSB)으로 결정해 HDTV 서비스 제공에 아무런 문제없이 시행될 수 있었다. 당시 방송계에서도 미국식으로 가자는 의견이 많았는데 이렇게 번복해 유감스럽다. 그래도 대화와 토론을 통해 논란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불가피하게 광역시 방송 개시 시한을 연기했다. 논란이 끝날 때까지는 어쩔 수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