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기를 살리자](4)기업 내부 장벽은 없나

 최근 국내 기업들 사이에 ‘윤리경영’이 새로운 테마로 부상했다. 기업들은 너나없이 윤리경영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투명성을 강조한다. 물론 이같은 윤리경영 바람은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그만큼 그동안 국내 기업들이 윤리경영에 무관심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60년대 경제개발 시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기업 확장 과정에서 불행히도 윤리경영은 그다지 큰 덕목이 되지 못했다. ‘성장’이라는 지상 과제가 족벌 경영, 비자금, 정경유착 등 각종 허물을 덮어주면서 윤리경영은 한켠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일시적으로 덮혀 있던 허물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면서 기업 전반에 걸쳐 위기감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개별 기업의 실적 악화뿐 아니라 회사 종업원들의 사기 저하, 더 나아가서는 기업에 대한 사회 인식을 부정적으로 바꿔 기업의 힘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을 가져왔다.

 실제로 지난해말 대한상공회의소와 현대경제연구원이 국민들의 기업호감도를 조사해 수치화 한결과는 100점 만점에서 38.2점에 불과했다. 비호감의 이유로는 ‘정경유착’ ‘분식회계 등 투명하지 못한 경영’에 대한 언급이 가장 많았다.

 각종 정부 규제나 지원정책 부재 같은 외적인 요소와는 별개로 기업 내부의 문제로 기업 스스로의 역량을 훼손하는 마이너스 효과가 심각한 것이다.

 최근의 LG카드 사태에서도 기업의 윤리 불감증을 엿볼 수 있다. LG그룹의 몇몇 관계사와 관련 주주들이 이번 사태가 불거지기 전에 LG카드 지분을 매각해 차익을 남겼다는 사실은 회사 직원들은 물론 이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마음도 우울하게 만들었다.

 윤리경영의 중요성은 최근 같은 불황기에는 더욱 커진다. 가뜩이나 경기 불황으로 인해 위축된 기업이 시장 환경이 아닌 내부적인 문제로 발목을 잡힌다면 해결점을 찾기 어렵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성호 윤리경영팀장은 “윤리경영은 기업의 필수 요소”라고 강조하고 “기업들이 스스로 윤리경영을 체질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최근들어 상당수의 기업들이 윤리경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이다. 많은 기업들이 윤리경영과 함께 투명경영·정도경영을 표방하고 나섰다. 실제로 적지 않은 기업이 이를 통해 회사 내부 역량 결속과 이미지 제고를 실현, 대외 사업 측면에서도 효과를 거두고 있다.

 사외이사·감사위원회·내부거래위원회 등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 윤리경영을 강화하고 있는 SK텔레콤의 신영철 홍보실장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윤리경영을 강화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윤리경영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관련 사내 교육을 강화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 `반기업정서`도 위험수위

 “정부가 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반기업정서를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일부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기업도 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데 너무 싸잡아 평가되는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반기업정서 불식’에 정부도 앞장서겠다고 하지만 사실 정부로 인해 기업 이미지가 더 나빠지고 있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강신호 전경련회장도 최근 신년간담회에서 “정치자금 수사의 목적은 정치개혁인데도 수사가 확대되면서 기업 이미지는 한층 나빠지고 있다”며 “수사를 조기에 마무리하고 기업들이 본업에 충실하도록 해야 경제살리기가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땅에 떨어진 기업의 이미지와 신뢰를 끌어 올리지 않고서는 경제회복과 기업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전경련 이승철상무는 “기업은 부가가치를 올려 더 많은 세금을 내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국부에 기여하는 것이 기본 기능”이라며 “성공한 기업과 기업인을 얼마나 국부창출에 기여했느냐로 판단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기업에 대한 이같은 왜곡된 인식은 기업 스스로가 자초한 면도 적지 않다. 기업이 국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행동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돈으로 떼우는 식’의 사회 공헌에 익숙해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원인이 어디에 있건 우리나라의 반기업정서는 위험수준에 다달아 있다. 정부도 기업을 규제대상으로 인식하고 있고 시민단체와 노조, 국민들도 기업인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기업인이 죄인취급 당하는 문화속에서는 ‘죄인’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반기업정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제 정부도 기업에 대한 시각을 달리하고 반기업정서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한다.

 

 ◆ 기고 -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 gong@gong.co.kr

 한국의 사업 환경은 척박하다. 특히 수주를 해야 하는 경우엔 정도가 조금 지나친 감도 없지 않다. 게다가 이곳 저곳 손을 내미는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기 때문에 사업가들을 볼 때마다 용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이런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잊을만할 때가 되면 터져 나오는 기업의 비자금 문제는 그 이유가 어떠하든지 간에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때때로 ‘윤리경영’이란 주제가 등장하지만 기업의 이같은 움직임을 이벤트가 아니라 진정한 움직이라고 믿는 일반인들은 많지 않다. 그것이 오늘 이 땅에서 기업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물론 이런 굴레를 벗어나는 일은 기업 혼자서만 노력해서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의 눈에 비친 기업은 끊임없이 등장하는 부패 스캔들의 한축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긴 어려운 것이 현재의 실상이다. 그래서 기업과 기업가는 부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자신들의 직분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많이 나아지긴 하였지만 한국 사회는 어디를 가든지 간에 공사가 불분명하다. 기업이 상장한다는 사실은 한마디로 사적인 영역을 벗어나 일반 주주들에게 책임을 지는 위치가 됨을 뜻한다. 그러나 이처럼 위치의 변화에 걸맞게 공사가 뚜렷하게 구분되게 활동하는 기업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 기업들은 몇몇 시민단체들에게 빌미를 제공하게 되고 그 결과로 지나친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따금 언론 지상을 장식하는 사건들이 터질 때면 일부 대주주의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일이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기업을 사유화하는 일은 기업체 임직원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편 노사관계란 한국 기업들이 넘어서야 할 커다란 산이다. 가득이나 일본과 중국사이에 낀 우리로선 안정적이고 건설적인 노사관계는 장기적인 경쟁력이란 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원활한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으로 신뢰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을 성공적으로 축적한 기업들도 있다. 하지만 일부 기업들의 경우에 연례 행사처럼 노사 분규가 반복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노와 사 모두 할 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시대, 실용의 시대가 대세임을 고려하면 좀더 실용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노사 문제가 기업 내부의 교섭과 협상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개입에 의해서 해결되는 것을 목격할 때가 많다. 노사 관계가 그 고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로 변질되기 시작하면 기업 내에서 신뢰라는 자산을 축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 사회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향해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지 오래지만 의식이나 제도면에서 여전히 낙후된 분야가 많다.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낫긴 하지만 기업들도 분발해야 할 점이 아직 많다. 어찌할 수 없거나 시간이 걸리는 외부적인 요인들을 제쳐두고라도 경쟁력과 신뢰 그리고 믿음을 되찾기 위한 기업들의 보다 적극적인 내부 혁신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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