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우드에서 만들어진 맛살라(masala) 영화는 그 춤과 노래로 항상 흥겹기는 하지만 예측가능한 서사구조와 권선징악의 단순한 주제 때문에 흥미를 반감시켰다. 인도는 국내에서 개봉된 ‘춤추는 무뚜’ 같은 영화들을 일년에 800여편 넘게 만들 정도의 놀라운 영화 생명력을 갖고 있지만 ‘샬롬 봄베이’ 같은 작가주의 영화들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1930년대 할리우드 뮤지컬과 맛살라 영화는 닮아 있다. 참신한 기획력으로 빠르게 성장한 영국의 대표적 영화사 워킹 타이틀이 바로 이점에 착안해서 만든 ‘구루(The GURU)’는 일종의 기획상품이다. 그렇지만 독특한 향료처럼 춤과 노래가 버무려진 인도의 맛살라 영화를, 할리우드 스타일에 맞게 연착륙시킨 데이지 메이어 감독의 ‘구루’는 또한 미국 상류층의 테라피 문화를 통렬하게 풍자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기획상품의 이미지를 벗어던진다.
인도의 댄스 강사 라무(지미 미스트리)는 ‘그리스’의 존 트라볼타처럼 성공하겠다고 뉴욕에 건너간 후 엉뚱하게도 섹스 테라피 문화의 구루로서 섹스 전도사가 된다. ‘구루’의 최대 미덕은 상류층의 허위의식을 풍자하는 예리한 비판의식에 있다.
‘구루’는 다른 맛살라 영화처럼 축축 늘어지지 않는다. 우선 3시간 30분이 기본인 맛살라 영화와는 다르게 100분 내에서 끝난다. 서사적 전개에도 빠른 속도감이 있다. 맛살라 영화의 비쥬얼한 화려함과 할리우드의 로맨틱한 코미디가 절묘하게 만나고 있다는 평가는 매우 적절하지만 ‘구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것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미국 상류층 문화의 허위의식에 대한 비판과 풍자이다. 만약 이것이 없었다면 ‘구루’는 그저 그런 맛살라 영화의 변주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영화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섹시 댄스 강사 라마가 포르노 배우 샤로나(헤더 그레이엄)와 어떻게 사랑을 이루어가는가 하는게 아니라 그들이 풍자해 내는 상류층의 영혼만능 허위의식이다. 풍요로운 물질에 대한 자각은 상대적으로 빈곤한 영혼의 허기를 느끼기 시작했고, 미국 상류층 문화가 영적인 것에 대한 목마른 갈구로 이어지도록 작용했다. 이른바 테라피(therapy) 문화, 각종 장르에 테라피라는 단어를 붙여 물질로 병든 영혼을 치유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은 또다른 속물근성의 표현일 뿐이다.
명상과 요가를 신봉하며 정신적 스승 구루를 찾아 헤매던 부잣집 외동딸 렉시(마리사 토메이)는 미국 상류층의 상징이다. 렉시의 주선으로 상류층 인사들의 섹스 상담사가 된 라마의 강의는 사실 포르노 배우 샤로나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도 이 영화가 가진 풍자정신의 한 면을 보여준다. “보통의 배우들은 의상이 따로 있지만 우리들에게는 벗은 몸 자체가 의상이예요” 이런 샤로나의 말을 상류층의 파티에서 머리에 터번을 쓴 구루가 던진다면, 그것은 심오한 인생철학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이중적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제 자리로 돌려보낸다. “이건 환상일 뿐이예요. 너무나 간절히 바라던 일이라 진짜처럼 느껴지겠지만 진실이 아니예요. 사랑은 마음에서 나오지 머리에서 나오는게 아닙니다. 내 마음은 당신을 향해 뛰고 있어요” 샤로나의 결혼식장으로 뛰어든 엉터리 섹스 구루 라마는 이렇게 사랑하는 샤로나에게 자신을 고백한다. 그러자 샤로나의 약혼자인 소방관 러스크 역시 사실 자신이 게이였다고 고백한다. 그토록 영적인 것을 찾아 방황하던 렉시는 스스로의 명상으로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므로 ‘구루’의 진정한 승자는 라마나 샤로나가 아니라 렉시라는 것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렉시는 이 영화의 주관객층인 미국이나 영국 관객들의 시선이 투사된 인물이니까. 결국 상류층 문화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마저도 철저한 상업정신으로 기획된 것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눈치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