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의 종언
마뉴엘 카스텔 지음
박행웅·이종삼 옮김
한울아카데미 펴냄
흔히 정보화사회를 말할 때 컴퓨터, 인터넷, 통신 등 인간의 삶을 한층 편리하고 풍요롭게 해주는 신기술과 신산업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스페인태생의 정보사회학자 마뉴엘 카스텔이 제시하는 정보화사회의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카스텔의 정보사회관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때론 아주 비관적이기 조차하다. 그는 암과 싸우면서 만들어낸 대표작 ‘정보시대: 경제, 사회, 문화(The Information Age: Econimy, Society, and Culture)’를 통해 그만의 색깔을 지닌 신 정보화관을 역설한다.
‘정보시대...’는 흔히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비견된다. 자본론이 18∼19세기 유럽 산업사회를 분석하기 위해 경제학은 물론 정치, 사회, 문화적인 총체적 접근을 시도했다면, ‘정보시대’ 역시 정보사회에 대한 기술 중심의 논의의 한계를 넘어 경제, 미디어, 정치, 문화 등으로 폭넓은, 입체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
96년부터 98년까지 매년 한편씩 발표됐던 3부작 ‘정보시대’의 완결판 제3권 ‘밀레니엄의 종언(End of Millennium)’ 한글 개정판이 나왔다. 사실 이 완결판 정보사회에 대한 교차문화적, 사회학적 이론을 경험에 입각, 정립해보려는 카스텔의 12년 연구 노력의 결정체다.
카스텔은 96년 발표한 제1권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The rise of the network society)’에서 정보 전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고 그 범위를 전세계로 확대하는 ‘네트워크’를 강조했으며, 제2권 ‘정체성 정체성 권력(Power of identity)’에서는 정보시대와 세계화에 따른 새로운 사회운동의 부상, 민주주의의 위기 등을 진단했다.
이에 반해 ‘밀레니엄의 종언’에선 세계 사회의 역동적 변화를 추적하고 있다. 소련의 붕괴를 시작으로 제4세계의 등장, 사회적 배제의 다양한 형태, 세계적인 범죄 경제, 동아시아의 발전과 위기, 유럽연합의 딜레마 등 정보사회라는 거대한 퍼즐을 이루는 다양한 조각그림을 맞춰나간다.
카스텔은 20세기 시작과 끝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 즉 소련의 등장과 붕괴 원인을 국가 통제주의와 네트워크화의 갈등에서 찾고 있다. 또 정보 집중에 따른 정보격차의 심화는 한 국가, 사회 내에서, 그리고 전 지구촌의 양극화를 심화시켜 정보화에서 소외된 사회계층, 지역, 국가들을 최극빈층인 ‘제4세계’로 규정했다.
‘밀레니엄의 종언’엔 또 세계가 네트워크화되는 이면에 마약·무기 밀매, 여성 및 어린이 불법 거래, 돈세탁 등의 범죄 경제가 점차 세계화할 것이며, 한·중·일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지구적 네트워크화 과정에서 부침을 겪을 것이라고 예시했다. 카스텔은 특히 전형적인 ‘네트워크 국가’ 유럽 통합에 주목했다.
그러나 정보기술의 발달이 결국 인류에게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점을 잊지 않고 주장한다. 다만 카스텔은 그것은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며, 인류가 20세기에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한다면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인류의 삶은 마감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2만원.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