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목표는 전세계 모든 음악 애호가들이 아이포드와 아이튠즈를 사용토록 하는 것이다.”
애플 CEO인 스티브 잡스가 최근 HP와의 디지털음악 사업 공동추진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디지털음악 플레이어인 아이포드(iPod)와 디지털음악 다운로드 서비스인 아이튠즈(iTunes)를 시장표준으로 만들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이같은 애플의 목표는 꿈이 아니다. 아이포드는 현재 미국 전체 음악 플레이어 시장의 30% 이상, 하드디스크 장착 기기 시장의 75%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지난 분기에만 73만대가 팔리는 등 인기는 날로 높아져만 가고 있다. 하지만 애플 표준화 전략의 핵심은 아이포드보다는 서비스인 아이튠즈에 있다.
2001년 출시 이래 ‘애플이 만들어 독특하고 예쁜 음악 플레이어’에 불과했던 아이포드는 지난해 4월 아이튠즈 뮤직스토어 서비스의 시작과 함께 날개를 달았다. 음악검색에서 다운로드, 하드웨어 기기로의 전송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해 소비자들에게 최상의 편리함을 제공한 것이다.
경쟁이 치열한 전자제품 시장의 특성상 아이포드라는 하드웨어는 비슷한 기능을 가진 저렴한 경쟁기기의 등장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하지만 서비스는 다르다. 이미 수많은 사용자들이 아이튠즈의 인터페이스와 기능에 적응됐기 때문에 쉽사리 바꿀 수 없다.
시장을 지배하는 서비스가 새로운 기술표준을 만든다. 아이포드의 경쟁 기기들도 결국 아이튠즈 서비스의 기술표준을 지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HP가 제조하는 PC에 아이튠즈 프로그램이 기본 설치될 예정이어서 시장 장악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기술표준은 자의적으로 만들 수 없다. 지난 98년 미국음반산업협회(RIAA)는 디지털음악안전협의회(SDMI:Secure Digital Music Initiative)를 구성하고 지재권 보호를 위한 표준 프로토콜을 마련하려했으나 참여업체간의 의견충돌로 성과를 보지 못 했다. 이 틈을 비집고 애플이 자연스럽게 이를 시도하고 있다.
“우리가 싸우고 있을 때 기술 수출의 길은 막히고 나아가 외국 서비스에 종속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무료 온라인음악서비스업체인 벅스의 박성훈 사장이 음반사와의 각종 소송에 휩싸였을때 한 말이다. 벅스 사업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세계 최초로 MP3플레이어를 출시하고 가장 먼저 MP3 다운로드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초고속통신 인프라를 등에 업고 1000만명 이상의 디지털음악 서비스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우리만의 표준서비스를 만들지 못해 애플의 성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디지털음악 서비스를 안정화시켜 우리만의 기술표준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선수는 내주었으나 종속이라도 막아야한다는 의미다.
DRM 업체인 마크애니의 최종욱 사장은 “시장이 성숙하기 전에는 다양한 표준이 존재하다가 주류만 남게된다. 아이튠즈를 비롯해 몇몇 대형서비스가 각축을 벌이면서 표준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미국에 비해 우리는 이미 한 발자국 뒤쳐진 셈”이라고 말했다.
신용태 디지캡 사장도 “해외기업은 엔지니어 부서의 70%가 컨설턴트로 구성돼 표준화 논의에 활발하게 참여한다. 우리는 요소기술은 뛰어나지만 기술마케팅에 취약해 기술표준을 내 줄 수밖에 없다. 국제표준의 흐름을 파악해 미리 준비해야만 적어도 손해는 안 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진영기자 jych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