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소비강국에서 명실상부한 기술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될 국제회의가 서울에서 열린다. 오는 29일부터 일주일간 서울 롯데호텔(소공동)에서 열리는 ‘IETF(Internet Engineering TaskForce)’ 회의엔 전세계 인터넷 전문가 1000여명이 대거 방한, IPv6·모바일IP·MPLS·VoIP·서비스품질(QoS) 등 차세대 인터넷 기술표준을 제정한다.
IETF는 세계 최고의 권위와 영향력을 가진 인터넷 표준화 기구다. 이번 회의는 지난 86년 출범이후 미국, 유럽외 지역에선 일본, 호주에 이어 세번째로 열린다. 우리나라가 인터넷기술 강국으로 거듭날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는 75%에 달하는 높은 인터넷 보급률을 자랑하나 기술표준을 이끄는 선도그룹에 속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지금까지 IETF가 제정한 표준(RFC)은 모두 3500여건. 우리나라가 등록한 것은 고작 2건에 불과하다. 지난 93년 KAIST가 제안한 인터넷 메시지 한글코딩 기술과 2002년 ETRI가 제안한 IPv4-IPv6 연동기술의 RFC 채택이 유일한 성과다. 지난 기술강국인 일본도 4∼5건에 그칠 만큼 인터넷 종주국인 미국의 독주체제가 공고한 분야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인프라중 핵심 부분이 외산 장비로 채워진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러나 이번 회의 개최로 IETF에서의 역할을 본격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에는 삼성 등 기업과 국내대학에선 본격적으로 표준화에 뛰어들어 미국, 일본, 영국에 이어 네번째로 많은 참석인원을 기록했다. 기고건수도 점차 늘려가던 중이어서 회의개최의 ‘방아쇠 효과’가 두드러질 전망이다. 아시아에서 열리는 만큼 일본은 물론 중국의 참여도 많은 기대를 모았다.
김대영 충남대 교수는 “이번 회의에서 IPv6와 모바일IP분야 40∼60여건의 기고서를 제출하고 5건 내외를 발표할 것”이라며 “그간 활동이 미비했던 IETF에서 우리나라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 준비차 방한한 알버트 베차 IETF 운영사무국장도 “해당 국가에서의 호응도와 참여도가 회의 장소를 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며 “인터넷강국으로 도약한 한국이 이번 회의를 계기로 IETF에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는 IPv6, DHC(Dynamic Host Configuration), NEMO(Network Mobility) 등의 분야에서 40여건의 기고서를 제출, 약 2∼3편의 RFC를 등록시킬 것으로 예상되며 일본에 이어 두번째로 의장단에 선출될 가능성도 점쳐졌다. 최근 IPv6 분야에 집중하는 일본과의 인터넷 기술 선도 경쟁도 또다른 관건으로 떠올랐다. 아울러 지금까지 인터넷 기술의 주도권을 독점해온 미국이 IPv6 등 차세대 인터넷에 소극적인 대응을 하는 데 대해 우리와 일본이 어떤 전환점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주목거리다.
IPv6, 모바일IP 외에도 DHCP(Dynamic Host Configuration Protocol) 관련 기술, 보안 관련 기술 등 인터넷 기술의 현주소를 읽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임주환 ETRI원장은 “추격형 모델에서 기술혁신형 모델로 전환하기 위해 기술표준 선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번 회의를 통해 인터넷 기술분야의 붐을 조성, 체질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IETF는?=IETF는 △응용(applications) △일반(general) △인터넷(internet) △IP-하부(Sub-IP) △운영 및 관리(operations and management) △라우팅(routing) △보안(Ssecurity) △트랜스포트(transport) △사용자 서비스(user services) 등 9개의 분야로 나뉜다.
분야별로 총 100여개의 워킹그룹이 운영돼 표준문서인 RFC(Request for Comments)를 개발하고 제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RFC들은 인터넷 통신규약과 주소·자원, 응용프로그램의 실질적 표준으로 인정돼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TCP/IP와 도메인네임(DNS), 인터넷주소체계(IPv6·IPv4), 멀티캐스트, 이넘(eNUM) 등의 표준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상위 의사결정기구로는 IAB(Internet Architecture Board)와 IESG(Internet Engineeting Steering Group)가 있으며 ISOC(Internet Society)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는다. 사무국은 미국에 두고 있으며 회의는 한해 세차례 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서울회의는 1986년 IETF가 설립된 이후 59번째이며 아시아지역으로는 2002년 일본에 이어 두번째다. 매회의 때마다 인터넷 분야 전문가 1000∼2000명이 참석한다. <조직도 참조>
◇참석하려면?=오는 14일까지 사전등록을 해야 한다. 등록은 IETF 홈페이지(http://www.ietf.org)에서 온라인으로 하면 된다. 서울회의 운영위측은 국내 관계자들의 참석을 장려하기 위해 우수한 전문가의 경우 펠로우십 기금을 운영해 등록비의 일부를 면제해줄 계획도 갖고 있다. 참가관련 문의와 정보는 IETF 홈페이지나 TTA에 설치된 준비사무국(031-724-0075)에서 볼 수 있다.
<기고-이형호 IETF 서울회의 운영위원(ETRI 표준연구센터장) holee@etri.re.kr>
이번 서울회의의 의의는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다. 첫번째로는 인터넷 관련 세계적인 전문가 1000여명이 동시에 서울에 모인다는 점이다. 이와 유사한 ITU 국제회의나 컴덱스-서울과 같은 국제전시회, IPv6 서밋과 같은 국제행사에 수십명의 국제 전문가들이 서울에 모인 적은 있지만, 지금처럼 전세계적인 인터넷 전문가 1000여명이 서울에 모인 적은 처음이다. IETF 전체의장인 시스코의 해럴드 알베스트런드를 비롯해 IAB(Internet Architecture Board) 의장인 레슬리 다이글, IPv6 설계자인 짐 바운드, 멀티캐스트 설계자인 빌 페너, DHCP(Dynamic Host Configuration Protocol)를 만든 랠프 드룸, 모바일 IP를 개발한 찰리 퍼킨스, SIP(Session Initiation Protocol)를 개발한 마크 핸리 등 100여명이 넘은 워킹그룹 의장들이 대부분 참석한다. 두번째로는 아시아권에서는 2002년 54차 일본 요코하마 회의에 이어 두번째로 이번 행사를 개최한다는 점이다. 일본은 회의를 개최해 IT 산업의 부흥과 인터넷 강국으로서 면모를 보여주는 새 계기를 만든 바 있다. 특히 일본은 IETF 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최근 차세대인터넷 기술의 핵심으로 떠오른 IPv6 기술을 대대적으로 홍보해 차세대 인터넷 기술의 강국으로 인정받았다.
유럽의 경우도 영국,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등 유럽의 몇몇 선진국들만이 회의를 개최했다. 서울 회의가 우리나라의 위상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IMF외환사태 이후 인터넷 분야에 정부와 산업체들의 투자와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소비 심리가 결부돼 초고속인터넷의 성공적인 도입 등 많은 양적, 질적인 성장을 하여 세계적으로도 가장 성공적인 인터넷 도입 국가로 인정받는 상황이나, 국가적인 기술 강국으로서의 입지와 기술 경쟁력은 아직까지 검증받지 못한 실정이다. 따라서 이번 서울회의는 우리나라가 국제기술을 주도하고,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기술 강국이 되는 첫번째 시험무대가 될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인터넷 분야에서의 세계적인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홍보 부족과 국제무대를 나설 기회가 많지 않아 그동안 소극적인 국제 활동에 만족했던 것이 사실이며,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나라가 인터넷 소비강국뿐만 아니라, 기술강국으로 거듭 인정받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임주환 운영위원장. 김대영 충남대 교수>
◇“서울회의 개최로 국내에 인터넷 선도기술 개발 바람이 일어나길 기대합니다.”
임주환 IETF서울회의 운영위원장(ETRI원장)은 “인터넷은 미국중심으로 만들어져온게 사실”이라며 “회의를 개최하면서 우리나라에도 붐을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인터넷 주소자원이 한정된 IPv4의 경우 많은 IP를 미국과 같은 주도국이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IPv6를 앞당겨야 하며 이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합니다.” 그는 이번 회의에서 IPv6는 물론 인터넷의 안정성, 멀티미디어 등의 이슈가 중요하게 다뤄질 것이라며 성공적인 개최로 인터넷기술국으로서의 위상강화를 기대했다. “회의장의 인터넷 환경을 최상급으로 구축해 우리 기술을 선보이고, 우리 문화를 보여주는 소셜 이벤트에도 많은 정성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일본은 이미 한차례 IETF를 개최한데다 IPv6에 많은 기여를 하면서 인터넷 기술표준 분야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번 회의 유치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김대영 충남대 교수(첨단망협회 집행위원장)는 “의장단진출이나 RFC기고수에서만 봐도 우리나라의 IETF 활동은 크게 미흡했다”며 “이번 회의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기술개발 국가로의 성공적 진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인터넷 정신에 따라 자유로운 분위기인 IETF는 표준안의 명칭도 ‘조언요청(Request for Comments)’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국가자격으로 참석하는 ITU 등에 비해 오히려 장벽이 높았던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그는 “하지만 이번 회의에서 우리나라의 인터넷 발전상과 우리 측의 활발한 표준기여를 보여준다면 우리의 위상이 많이 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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