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전자신문사 주최로 현 정부의 벤처 정책을 짚어보고 향후 벤처기업의 바람직한 성장 모델을 도출하기 위한 벤처 좌담회가 서울 르네상스 호텔에서 열렸다. ‘벤처기업 육성의 성과와 향후 정책 방향’을 주제로 한 이번 좌담회에는 유창무 중소기업청장 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을 비롯한 산·학·연·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날 좌담회에서는 올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벤처 M&A 및 고용 없는 성장에 따른 인력난 해소, 신성장 동력 산업 육성에 따른 벤처기업의 역할 등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이 펼쳐졌다.
◇참석자
△유창무 중소기업청장
△장흥순 벤처기업협회장
△양덕준 레인콤 대표
△김지수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이언호 박사(삼성경제연구소 정책연구센터장)
△이재구 전자신문 경제과학부장
◇사회(이재구 전자신문 경제과학부장)= 지난 97년 이후 정부의 벤처 육성 정책 추진으로 벤처기업이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 주체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간의 정책이 질보다는 양적 성장에 치우친 면도 없지 않고 일부 모럴해저드를 보인 벤처들로 인해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국민의 정부 이후 지난 5년여간 역점을 두고 추진한 벤처기업 육성 정책의 공과를 평가해 주십시오.
◇이언호(삼성경제연구소 정책연구센터장)= 공적인 측면에서 벤처는 외환위기를 극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벤처는 월드컵 당시의 ‘붉은 악마’에 필적하는 하나의 문화코드로 해석해도 좋을 듯 합니다. 또 창업자 및 기존 기업, 벤처캐피털, 대학, 정부 등이 처음으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산을 축적해 왔습니다.
그러나 단기적인 자금의 공급에 따라 벤처산업이 능력에 비해 과도하게 자금이 부풀려져 벤처가 급격히 붕괴되는 실마리를 제공했습니다.벤처산업이 성공사례를 창출하고 분위기 조성에는 성과가 있었으나 시스템과 문화로 정착되지는 못했습니다. 그 원인 중의 하나가 정책 개입의 부정적인 효과라고 봅니다. 특히 벤처비리가 불거지면서 벤처업계 전체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져 상당 기간 벤처 발전에 걸림돌이 될 전망입니다.
◇장흥순(벤처기업협회장)= 기존에 없었던 벤처 산업을 만드는 과정에서 오버 슈트, 버블 현상이 발생한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휴맥스나 레인콤 같은 세계적인 벤처기업을 만들 수 있다는 힘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단기적인 측면에서 투입된 자본에 비해 아웃풋을 도출하지 못한 측면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30년대 이후 수 십 년간 이뤄져 온 미국의 벤처투자 역사를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벤처 산업은 단기간에 압축성장을 해 왔습니다. 지난 5년간의 공과를 잘 분석해 정부가 벤처기업들이 잘 성장할 수 있는 토양과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사회= 지난 3년간 꺼질대로 꺼져버린 벤처버블의 영향 등으로 벤처에 대한 일반의 관심과 인지도도 낮아지고 있고 벤처기업인들도 상당히 위축돼 있는 상황입니다. 중기청은 최근 1∼2년새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 변화를 강조해 왔습니다. 최근 새로운 전환기를 맞아 이에 맞는 정책이 수립돼야 하지 않을까요?
◇유창무(중기청장)= 그동안 중소·벤처기업이 어려웠던 한 해였던 건 사실입니다. 2002년 말에 8778개에 달했던 벤처기업이 지난해 말 7772개로 1000개 이상 줄어들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도태되고 지난 기간 동안 연단을 거치는 가운데 세계 경기가 호전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올해 5% 성장을 예측하는 상황에서 현재 남아있는 기업들은 좀 더 좋은 환경이 주어진다면 보다 많이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올해는 많이 나아지리라고 희망합니다. 그간 참여 정부 들어서서 주변에서는 중소·벤처를 육성하기 위한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 얘기가 많았습니다. 이는 정책이 없기보다는 워낙 경제 어렵다 보니 중소·벤처 업계가 그런 문제를 더 심각하게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참여 정부 출범 이후 벤처 정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청년 실업을 해소하기 위한 주요 정책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벤처 정책을 육성해야겠다는 의지 또한 국민의 정부 이상으로 갖고 있습니다. 지난 1년간 많은 벤처기업 만나고 제일 많이 들었던 얘기는 M&A 활성화 여건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여러가지 제도적인 제도 정비에 많은 공을 들여 관련 법 제정을 마무리, 올 1분기 이후부터 M&A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돼 벤처생태계 건전화를 위한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올해 실태 조사를 통해 창업 절차를 대폭 축소하고 비용을 줄이기 위한 창업 절차 단순화에 주력하고 마케팅 강화 및 해외 판로 확대 사업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사회=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M&A가 되면 인력 구조조정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벤처 M&A로 인한 구조조정이 정부의 ‘일자리 창출’정책과 배치되는 것같은 인상을 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유창무= M&A가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그냥 망해버릴 수 밖에 없는 기업 들이 오히려 구조조정을 통해 고급 인력들이 재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고용을 유지한다는 측면에서도 M&A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시장을 조성해주는 것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장흥순= 단기적으로도 고용 창출은 물론 장기적으로 강한 체질을 길러줄 것입니다. M&A를 통한 고용 창출의 사이클화로 경쟁력이 있는 곳에서는 고용이 계속 창출되고 글로벌화를 추진하게 돼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사회= 우리 경제도 서서히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에 접어들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갈수록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과 맞물려 벤처기업보다 대기업을 선호하는 구직 현상이 여전해 벤처 인력난 심화를 가속시키고 있습니다. 이에 따른 대책 방안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언호=‘고용없는 성장’은 ‘성장을 안 하면 고용 창출은 없다’와는 전혀 다른 뉘앙스 차원입니다. 중년실업과 청년 실업은 맞물려 있어, 토털 솔루션으로 이해해야 합니다.강한 기업과 강한 생태계가 있으면 정부는 복지차원에서 탈락자에게 기회를 주는 외곽에서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 돼야 합니다. 오히려 고용 없는 성장을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자금으로 전면적인 지원을 한다면 오히려 공보다는 과실이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장흥순= 2000년 당시 벤처가 새로운 희망과 꿈의 상징이었지만 지난 5년간 지켜보니 기업이 많은 좌절 속에서 영업 이익을 내고 성장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IT 인프라가 세계최고인 상황인 만큼 이를 이용해 도전해 볼 수 있는 테스트 베드는 무궁무진합니다.
벤처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초창기 시장에 의한 퇴출 시스템을 마련, 퇴출을 통한 창출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있도록 사이클링화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 중국 등 타 국가에 넘겨줄 부분은 넘겨 주더라도 우리 안에서 경쟁력 있는 산업을 키우는 것이 고용 없는 성장의 새로운 대안이 되리라고 봅니다.
◇사회= 지방대 졸업생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서울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지방균형발전을 위한 바람직한 대안은 없습니까?
◇김지수(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지방이 모자란다고 하지만 정부가 모든 것을 다 도와줄 수는 없습니다. 다같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국가의 균형발전과 성장을 위해 자기 지역에서 잘할수 있는 역량을 가진 ‘코어(Core) 산업’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해 중점 지원해야 합니다. 머리 숫자만으로 따지는 정책은 안 됩니다.
균형성장은 지역 장점과 특성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설정해 일자리도 창출하면서 기업도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양덕준(레인콤 대표)= 저는 벤처기업으로서 정부로부터 수혜를 받아본 적 없습니다. 오히려 기업들이 ‘벤처’란 단어의 마술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부가 모든 벤처를 총괄적으로 지원하는 내용의 정책을 통해 벤처육성을 한다면 오히려 ‘돈잔치’가 돼 버릴 수 있습니다. 이는 시장에서 빨리 퇴출돼야 할 기업들을 계속 연장시켜나가는 것 밖에 안 됩니다. 사실상 경제 논리에 위배되는 셈이죠. ‘처란 ‘없는 사람’, ‘미래의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대한 지원’ 중심으로 펼쳐져야 합니다.
◇사회= 정부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시대 달성을 위해 ‘10대 신성장 동력산업’을 내걸었습니다. 신성장 산업 육성과 관련한 벤처기업 나름의 바람직한 역할과 무엇인지요?
◇장흥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건전한 협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정부의 신성장 산업 육성책 가운데 핵심에는 대기업이 아닌 작지만 잘하고 있는 중소기업들도 포함돼 있다고 봅니다. 최근에 뜨고 있는 부품 소재 기업들 대다수가 대기업과 연계돼 있어 전략적인 협의가 필요합니다. 납품형 벤처기업들이 클 수 있는 공정한 시장 조성을 위한 시스템이 서둘러 마련돼야 합니다.
◇양덕준= 정부도 벤처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10대 신성장 동력 산업과 연관한 중소·벤처 기업 육성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버티컬 인프라 구축에 나서야 합니다.
◇이언호= 신성장 동력 산업 논의 과정에서 중기청이 완전히 배제가 된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부와 중기청이 협력해야 하는데 과기부 등 부처별로만 논의돼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유창무= 10대 신성장 동력산업은 제품 기술개발 측면에서는 대기업과 부처별 역할이 크지만 부품과 소재를 세부적으로 개발하는 중소기업의 역할도 또한 중요합니다. 부처 측면에서도 수직적인 종속 개념 협력보다는 수평 개념의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기청이 배제됐다는 지적은 맞지 않다고 봅니다. 실질적으로 중기청이나 중소기업은 이미 그 저변에 모두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 최근 일부 기업을 중심으로 코스닥 시장이 조금씩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신규 벤처투자는 여전히 침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벤처투자를 활성화할 방안은 없는지요?
◇유창무= 사실 5월부터 프라이머리 CB0 만기 도래로 업체 자금난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미 상당 기업이 부도가 난 상황입니다. 프라이머리 CBO 상환이 어려워질 경우 자금 지원을 담당했던 기보측에서 타 보증기관을 보증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들게 됩니다. 기보 보증 업무가 축소되지 않도록 자구 정상화 노력과 환수 노력이 병행될 것입니다. 우리 청에서는 재정 출자를 통해 1000억원을 출자, 3000억원의 투자 재원을 조성하고 해외 진출 기업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1억원 규모의 별도 펀드를 조성할 예정입니다. 또 M&A 시장 활성화를 위해 세컨더리 펀드를 추가 결성할 계획입니다.
◇양덕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벤처의 문제점은 ‘비지니스의 틀’을 제대로 못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정부에서도 마케팅·판로 지원 등 균형적인 비지니스 모델을 창출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봅니다. 코스닥 시장은 벤처기업들이 성장에 따른 중간 비전으로 생각할 만큼 상징적입니다. 코스닥 시장을 살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장흥순= 맞습니다. 정부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코스닥 시장입니다. 현재 코스닥 시장에 대한 정책과 모니터링은 재경부와 금감원으로 이원화 돼 있습니다. 코스닥에 대한 유동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통합거래소로 합쳐질 경우 코스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씻을 수 없습니다. 시스템은 달라지는데 코스닥 운영의 틀을 과거처럼 하다 보니 의미가 없어집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코스닥이 거래 시장의 하부 구조로 인식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사회= 많은 벤처기업들이 해외 진출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산 시설을 해외로 이전함에 따라 국내 제조산업 공동화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벤처기업 글로벌화와 국내 산업 공동화 방지라는 두 가지 상반되는 명제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양덕준= 단순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는 되살릴 수 없는 대세입니다. 이를 인정하고 대안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기존의 제조업 활성화라는 틀에 얽매이지 말고 정밀, 고도 제조업을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저는 개인적으로 저는 중국에서 마케팅적으로 많은 도움을 봤습니다. 메이드 인 차이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요.
◇이언호= 우리나라는 정책은 많은데 실질적으로 정부가 인력 양성에는 무관심합니다. 대조적으로 중국 푸둥을 방문했을 때 한 관리가 노조문제를 “내가 조율 해 보겠다”고 해 쇼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중기청에서도 직접 업체간 M&A를 성공시켜 모델 사례를 만들고 ,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업체 이전을 유도해 성공 모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이를 위해 중기청 내부 시스템 자체를 벤처쪽에 맞도록 조직개편하는 것도 시도해 볼 만합니다.
◇사회= 이제 벤처기업 정책은 전환기에 와 있습니다. 벤처기업도 80년대에 태동하기 시작해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성공 모델이 하나둘씩 나타나는 등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 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업계 전반적으로는 수직 계열화 등 중소기업의 구조적인 문제가 여전합니다. 앞으로 벤처기업의 바람직한 성장 모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언호= 벤처 재도약을 위해서는 우선 벤처기업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벤처업계는 경영 혁신과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 창출력과 기업 가치를 제고해 나가야 합니다.또 도덕성과 투명성을 전제로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 마련이 뒤따라야 합니다.
벤처는 역동성이 있기 때문에 규제를 풀고 경쟁 압력을 가하면 자연히 활성화됩니다. 단, 정부가 지원을 하면 할수도록 깨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대신 부도 기업가와 실업자 등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사회 안전망 구축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교수·연구원 등의 창업 활성화를 위해 이들의 기술적 역량과 사업가로서의 역량을 결합할 수 있는 창업 모델 구축을 지원해야 합니다. 기존 하이 테크, 하이 리턴의 방식을 지양하고 미디엄 테크, 미디엄 리턴을 지향하는 수익 모델도 마련돼야 합니다.
◇유창무= 벤처기업인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자기 능력에 대한 과신으로 실패 사례가 많습니다. 마케팅과 판로 확보 등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리=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