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부처별로 산재된 각종 규제 행정을 풀어라.”
국무조정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위원장 고건 국무총리)는 기업들의 활동을 가로막는 행정규제와 연일 쉴 새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규개위는 지난해 기존 양 위주에서 질 위주의 규제 개혁 전환을 위해 10대 전략 기획과제를 추진, 최근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각 부처별로 세부 추진 계획 수립에 들어가도록 했다.
‘기업활동 촉진’에 역점을 둔 10대 전략 기획과제는 외국인 투자 촉진 및 공장 설립, 입지 관련 규제 완화,기업 준조세 정비 등 규제개혁의 파급효과가 큰 분야를 전략과제로 선정했다. 규개위는 조만간 전담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 개선 방안의 법제화에 나설 방침이다.
◇외국인 투자 활성화=열악한 국내 투자 환경을 개선해 경쟁 상대국 수준으로 투자 인센티브를 확대하고 신축적으로 운영한다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투자 교섭의 중요 수단인 인센티브의 탄력성이 결여, 협상력 약화의 주 원인으로 꼽혀 왔다. 대립적인 노사 관계와 외자 유치의 전제 조건인 노동 시장의 유연성역시 외국인 투자를 가로 막는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이같은 폐단을 없애기 위해 규개위는 현재 외국인투자촉진법상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는 민자유치법에 의한 외국인의 사회간접자본시설(SOC)투자에 대해 법인세 감면 등을 추진키로 했다.
세제 지원 외에 하이테크 업종 등을 대상으로 외국인 총 투자비의 일정 비율을 현금으로 지원하는 ‘현금 보조금 지원제도(Cash Grant)’를 도입키로 했다.
현행 외국인 산업 입지 제도 또한 대폭 개선된다. 그동안 금지돼 왔던 수도권내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한 공장 신·증설을 허용하고 비수도권 지역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도키로 했다.
이와 함께 외국인 투자 중장기 유치 계획을 수립하고 정부와 산업계·금융계·연구계 대표 등으로 유치단을 구성, 매년 주기적으로 해외에서 투자 유치 활동을 전개키로 했다.
◇공장설립·입지 쉬워진다=회사 설립에 따른 중소기업 창업규제와 공장 설립·입지 규제가 상당부문 완화된다.
규개위는 중기청의 ‘중소기업창업지원법’을 개정, 공장설립 및 공장 사용 승인과 관련한 수십여종의 규제를 축소하고 지역별, 업종별, 제품별 공장 입지 검색이 가능한 토지이용정보시스템을 구축, 운영토록 할 방침이다.
또 수도권 산업 집중 억제를 위해 그동안 지역별로 규제해 온 산자부 및 건교부의 법제를 개선한다. 이를 통해 생활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첨단 업종에 대해서는 수도권내 성장관리권역에서 기존 공장 증설이 가능토록 입지 규제를 완화키로 했다.
이와 함께 수도권 공장 총량제를 개선하기 위해 공장 총량 설정을 3년 단위로 변경하고 산업단지의 확대를 위한 방편으로 단지 설립에 필요한 최소 기준을 기존 15만㎡에서 3만㎡로 완화하기로 하는 법률 개정안을 추진키로 했다.
◇수출입 통관 절차 간소화=국내 무역 환경은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열악한 형편이다. 선진국의 통관 소요 기간이 5일 이내인 반면 우리나라는 9일 이상 소요돼 국제 경쟁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규개위는 이에 따라 통관 및 관세 환급의 절차를 간소화하고 통관 세제 개선 및 행정 전산망과의 연계 보완 등을 통해 통관 소요 시간을 선진국 수준으로 단축해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입항전 수입 신고 물품에 대해 수입신고 수리 여부에 관계 없이 하선 신고가 자동 수리되도록 개선하는 한편 컨테이너 검색기 등 첨단 장비 위주의 검사로 전환키로 했다.
또 부두내 하선 기간 및 공항만내 물품보관 기간을 단축, 화물 적체 요인을 제거하고 항만·항공 환적 화물의 원스톱 서비스 체제를 구축하는 등 환적절차를 간소화해 동북아 물류 기지화의 기반을 조성키로 했다.
이밖에도 관세청과 산자부 등 14개 부처가 관여돼 있는 무역 관련 기관간 온라인 체제를 구축, 관세 행정 시스템의 전자화를 도모키로 했다.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위원회 이종협 심의관은 “산자부를 포함한 각 부처별 규제 심사안건이 서면심사 과정을 거쳐 국회에서 원안대로 의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하게 풀고, 대신 환경 등 국민의 삶의 질과 관련한 규제는 강화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 기업 애로 해결 "신문고 울려라"
조선 태종 2년(1402년) 대궐 밖 문루 위에 북을 달아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직접 해결해 주던 신문고제도에 힌트를 얻은 민의상달 제도가 현대에 도입된다. 기업의 애로사항을 수렴하기 위한 기업신문고가 그것이다. 경제주체인 기업의 애로를 해결함으로써 기업의 기(氣)를 살리고 이를 통해 경제활성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기존에 부처별로 운영해 온 ‘전자민원신고센터(http://www.mocie.go.kr/civil/help/help.asp)’를 오는 16일부터 기업신문고로 확대·개편한다. 또 이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의, 무역협회 등 경제단체 민원실과 유기적 네트워크로 구축하기로 하고 역할과 기능에 대해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기로 했다. 특히 현장조사가 필요한 사안의 경우 협회나 관련 부서 등의 합동조사를 통해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전자민원신고센터를 통한 애로사항 건의의 경우 법령해석 같은 간단한 사항에는 대응할 수 있지만 여러 부처 소관사항이나 제도개선이 필요한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범 부처 차원의 기업민원창구를 개설함으로써 타부처, 산업 전반을 망라한 기업 애로 사항을 수렴해 책임있는 당사자 간의 심의·조정을 통해 기업의 복잡다양한 애로사항을 단시간내에 원스톱으로 해결하기 위함이다.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은 “그동안 정부의 수많은 규제완화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인들은 충분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다”며 “산자부 자체적으로도 각종 지원제도의 신뢰성과 투명성, 공정성을 제고하고 수요자인 기업과 고객을 위한 방향으로 행정체제를 혁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정부는 상반기중에는 규제개혁위워노히, 감사원, 경제단체 등 관련 기관의 합의를 통해 ‘기업활동규제완화에관한특별조치법’을 개정, 기업의 애로사항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산업법정’(가칭)도 설치·운영키로 했다.
산업법정은 산자부장관 주재하에 업무소관 부처, 지자체, 감사원, 기업인 등 관련 당사자가 함께 모여 기업애로 사항을 일거에 해결토록 했다. 여기서 즉각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제도적 개선방안을 강구해 나갈 계획이다.
산업법정은 기업신문고에 접수된 애로사항중 중요도와 해결 가능성 등을 감안해 매주 2∼3건을 선정해 이뤄질 전망이다.
◆ 기고 - 규제개혁정책 전면적 개편을
양세영 전경련 기업정책팀장 sys@fki.or.kr
규제개혁은 비용을 수반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수단이다. 특히 내수침체와 투자위축으로 인한 경기침체 국면에서 재정지출 확대로는 한계가 있으며 더 이상의 금리인하가 투자와 소비증가, 주가상승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규제개혁은 효과적인 정책수단이 될 수 있다.
규제개혁위원회가 전략과제를 추진하고 신설·강화규제심사 등 규제품질 제고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나 정부부처들의 호응이 미진한 관계로 규제폐지율은 지난 2003년 한 해 2%대에 머물고 있어 경쟁국 수준의 기업 환경 조성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규제개혁실적을 살펴보면 지난해 1월에서 11월까지 규제 등록 수 7791건 중 규제폐지는 38건이고 완화는 69건인 반면 신설규제는 224건, 강화규제는 130건에 이르렀다. 폐지한 규제의 수가 감소했다고 해서 규제개혁의지가 둔화된 것으로 해석하기는 어렵지만 새로운 규제가 만들어지는 등 규제증가가 줄지 않고 있는 것은 규제개혁의 기본취지에 비추어 볼 때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정부는 규제개혁의 추진방향을 양위주의 1단계 규제개혁에서 질위주의 2단계 규제개혁으로 전환하고 경쟁국 벤치마킹 등을 통해 규제개혁의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은 규제개혁이 지엽적이고 절차적인 규제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규제 일괄처리라든지 노사규제, 출자총액 규제 등 핵심규제의 정비는 미흡하다는 의견이다.
산자부가 지난해 전국 266개 기업을 직접 방문, 설문 조사한 결과, 정부의 규제가 경쟁국에 비해 강하다는 응답이 49.8%로 가장 많았고 보통은 41.3%였으며 약한 편이라는 응답은 8.9%에 불과했다. 정부 규제개혁의 문제점으로 건수 줄이기 위주 개혁(36.3%), 부분적 규제완화에 치중(30.4%), 공무원의 자의적 해석(13.3%) 지방자치단체의 후속조치 미흡(12.6%) 등을 지적하고 있어 현행 규제개혁의 질적 부분에도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2003년 한 해 전경련 등 경제 5단체는 지주회사 설립제한 개선, 출자총액규제 폐지, 복잡한 토지법령 정비, 중앙정부와 지자체 규제일원화, 환경관리기관 일원화, 대체근로자 채용허용 등 기업경영과 투자에 애로가 되는 핵심규제개혁을 수차례 건의했으나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 산업안전, 환경, 정보통신기술(IT), 대기업정책 등 규제를 통해 권한이나 예산을 확보할 여지가 있는 분야는 거의 모든 부처가 업무를 관장하려고 하는 부처간 이기주의가 심각하다. 일례로 중소기업정책자금은 11개 부처(1개 청)에서 취급, 종류도 83개에 이르고 있다.
다음으로 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가 민관합동의 비상임위원회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업무폭주로 인한 시간부족과 민간위원의 전문성 결여, 부처간 갈등조정장치 부재 등의 문제를 보이고 있다.
국회내 규제개혁을 담당하는 별도 위원회가 없어 의원들 주도로 규제개혁에 관한 법이 제정되는 경우도 드물며 일부부처들이 규개위의 심사를 피하기 위해 의원 입법식으로 법률안을 재개정하는 사례가 빈번한 점도 문제이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해 자유로운 기업의 투자와 경영활동을 유도하기 위해 정부는 규제개혁 추진 체계의 전면적 개편과 전략적 규제개혁의 추진이 필요하다. 아울러 미국 등 선진국 의회처럼 국회 내에 가칭 ‘규제개혁특별위원회’를 신설하고 규제일괄개선을 위해 규제전반에 대한 규제총량제를 실시해 기존 규제나 유사행정규제, 신설·강화규제에 대한 전면재검토와 심사를 통해 부처별로 해마다 규제총량 목표치를 설정해 이를 준수토록 해야 한다.
나아가 바뀐 환경에 고려하여 기존의 수도권 집중억제, 출자총액제한, 교육관련 규제 등 핵심정책적 규제에 대해서는 민간전문가, 기업인 등을 참여시켜 제도베이스관점에서 전면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규제개혁위원회 2003년도 10대 전략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