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표준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수준에 접근해 있다고 자부합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측정표준의 생활화’를 통해 표준의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일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우리나라 국가 표준의 원류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이세경 원장(58). 그가 올해 내건 경영 목표다. 표준분야가 어렵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표준 없이 과학은 없다’는 마인드를 갖는 것이야말로 과학기술 중심사회로 가는 첫걸음이라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 주겠다는 것.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을 위해 아무리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수나노(1나노=10억분의 1)급 초미세, 초정밀 분야 연구를 수행하더라도 측정의 정확성 등을 판별할 기준점이 없다면 연구성과 자체를 도출할 수 있겠습니까.”
이 원장은 이와 관련, 벼 수매의 예를 들었다. 벼의 수분 측정에 1%의 오차만 있더라도 외국에서 들여오는 쌀 수입 지출 비용 1000억원을 좌우할 수 있는 수치라는 주장이다. 태아의 상태를 체크하는 초음파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X선 세기의 기준이 의사마다 달리 적용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 표준연은 지난 75년 국가표준기관으로 설립된 이후 29년간 5000여억원의 예산이 투입됐으며 교정분야에서만 7조원에 달하는 수입대체 효과를 올렸다.
이와 함께 교정 및 시험서비스, 인증물질의 개발, 측정기술의 보급, 기술 이전 등 산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지원시스템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이 원장은 밝혔다. “최근 융합기술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현재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측정기술을 상호 연계시켜 나노-바이오 또는 바이오-정보통신 등 융합분야 사업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입니다.”
“새로 시작되는 분야일수록 표준화 작업이 절실하다”는 이 원장은 “삶의 질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는 의료, 환경, 보건, 식품, 안전 분야의 측정 표준 개발에도 치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분석 및 측정장치 등의 정확도를 재는 기준물질인 인증표준물질(CRM)의 한·중·일 공동개발 및 보급을 위해 ‘한·중·일 CRM센터’를 제주도에 유치하는데도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북한과의 공동 표준사업과 관련해서 이 원장은 “북한이 원한다면 개성공단에 교정센터를 설립하고 싶다”며 “입주업체들이 품질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계측기기의 교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원장은 “일본에서는 단파방송을 통해 통일된 표준시를 제공하고 있다”며 “우리도 DMZ 근처에 전파방송국을 세워 남북 표준시를 함께 쓸 수 있도록 추진, 과학의 남북통일을 일궈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표준이라는 것 자체가 국내용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어야 하기 때문에 국가간 협조가 상당히 잘되고 있습니다. 최근 출연연들이 해외 진출 또는 분원을 추진하고 있지만 표준연은 아직 이렇다 할 계획은 없습니다.”
대신 각 나라의 측정능력을 비교하는 상호인정프로그램(MRA)에 적극 참여, 우리나라에서 측정한 수치를 외국에서 다시 검증받아야 하는 일이 없어지도록 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라고 이 원장은 밝혔다.
이 원장은 또 최근 사회적인 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이공계 기피현상이나 비정규직 처우를 기관차원에서 나름대로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 경영을 펴나갈 계획도 세워 놓았다.
실제로 전체 인력 가운데 절반 가량인 350여명이 비정규직인 표준연은 지난 해 이들의 사기 진작 차원에서 열심히 일하는 상위인력 15% 정도 46명을 대상으로 매달 지급되는 급여의 최고 5배까지 인센티브로 내놓았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