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 캡슐을 이용한 요구르트와 은 나노 가전. 이런 것들이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나노기술의 응용분야다. 나노 기술의 초창기 산업화 모델로 꼽히는 이들 못지 않게 나노와 바이오 기술의 만남은 중장기 산업화 흐름에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산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대인들은 자신이 어떤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지 어떤 질병을 갖고 있는 지 손쉽게 판단하고 예방할 수 있는 새로운 기기에 대한 관심을 높여가고 있다. 이런 사회적 변화에 따라 나노와 바이오 기술의 융합 산업인 시스템즈 바이올로지가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생물학과 제약분야는 지난 2000년 인간게놈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가 성공적으로 끝남과 동시에 포스트 게놈 시대에 접어들면서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유전체 염기서열을 모두 해독한 연구자들은 생명체의 기본 단위라고 불리고 있는 세포의 내부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들은 실시간으로 세포 내부의 생명 활동을 관찰하고 분석함으로써 원하는 정보를 얻으려는 시스템즈 바이올로지 연구에 불을 당기기 시작했다.
◇시스템즈 바이올로지란=시스템즈 바이올로지는 주위 환경으로부터의 자극이나 신호에 반응해 유전자나 단백질의 발현을 유도하는 분자단위의 신호나 현상학적으로 관찰되는 디지털 정보를 통합하는 분야다. 이를 통해 생물학적인 개체가 어떻게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기능을 하는지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것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기존의 연구가 세포의 군집을 그 실험 대상으로 했다면 시스템즈 바이올로지는 개개의 세포와 조직을 실험 대상으로 해 주위 환경이나 자극에 반응해 어떠한 기능을 하는 지를 밝히는 것이다. 이런 연구는 질병의 가능성을 예측하고 신약 개발에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게 한다. 시스템즈 바이올로지 분야의 핵심에 바로 나노기술과 바이오기술의 접목이 위치해 있다.
유전자나 세포 등은 유관을 식별할 수 없는 나노 단위의 물질들이다. 자연상태에서 나노 스케일로 구성된 것들을 조작하고 이를 통해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 시스템즈 바이올로지인 것이다. 이 연구의 기본은 결국 개개의 세포 내부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 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세포의 막을 조심스럽게 제거하고 그 내용물을 꺼내 분석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정보는 세포 내 기관이 쏟아져 나옴과 동시에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세포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얻는 것이 과연 가능한 시대가 올 것인가. 많은 연구자들은 나노기술로부터 그 해답을 얻으려 하고 있다.
◇어디까지 왔나=이미 연구자들은 나노 와이어나 카본 나노 튜브 어레이 위에 세포로부터 분비되는 특정 DNA 서열이나 단백질을 검출하는 연구 결과에 성공하는 등 산업화의 가능성을 예고했다. 연구자들은 반도체 공정 기술을 이용해 움직이는 다이빙 대처럼 생긴 캔틸레버를 만들었다. 이를 이용해 두 분자간의 결합의 강도까지도 측정할 수 있는 기술 수준에 와 있다.
특정 분자에 반응하는 항체와 결합된 수십 나노미터(nm) 직경의 옵티칼 파이버를 이용해 세포를 죽이지 않고 그 내부를 관찰하기도 한다. 반도체 소자의 나노 크기 결정체인 양자점(Quantum Dots) 역시 기존의 유기 형광 물질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광학적 특성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렇게 나노 테크놀러지는 이미 많은 바이오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기술로서 자리매김 하고 있는 것이다.
◇시스템즈 바이올로지의 꽃 랩온어칩과 멤스=시스템즈 바이올로지의 산업화에 있어 핵심 기술은 역시 마이크로 플루이딕스(Microfluidics)를 이용한 랩온어칩(Lab-on-a-Chip)이다. 랩온어칩이라 불리는 바이오 칩은 질병의 진단과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물론 신약 개발의 도구로 활용돼 시간과 비용을 단축하게 한다. 소량의 유체를 다룰 때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하는 미세 유체 역학 분야를 일컫는 마이크로 플루이딕스는 미세 시료를 이송할 수 있는 미세 채널, 흐름을 조절하는 미세 펌프나 미세 밸브 등의 개발을 근간으로 한다.
반도체 제작 기술을 기반으로 한 멤스(MEMS·Micro-Electro-Mechanical System) 공정 기술은 유체부의 각 요소들을 미세 시스템으로서 구현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바이오 멤스는 생체 분자를 미세 조작하거나 생체 시스템의 자기 조립 기능을 활용해 원하는 장치를 개발하는 기술이다. 분자 수준의 조작이라는 점에서 나노머신(Nano Machine)과도 유사한 특성을 지닌다. 바이오 멤스 기술을 활용할 경우 전자 소자에 비해 에너지 소모 및 열 발생이 적고 인체에 삽입하는 경우 거부반응을 줄일 수 있고 손상되었을 경우 자기 복구가 가능하다는 장점을 지닌다. 따라서 바이오 멤스가 실용화될 경우 심장 박동 조절기 등 체내 이식형 의료기기 분야에 적용이 확대될 전망이다.
◇전망=인간의 유전자와 단백질 작용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 베이스의 구축과 예방 의학 및 치료에 있어서의 적극적인 활용이 가능하다면 이는 실로 인류에게 있어서 삶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올 것이다. 이미 나노 테크놀러지는 시스템즈 바이올로지라는 이름으로 과학의 각 영역의 장벽들을 허물며 여러 분야가 한데 어우러져 서로의 발전을 꾀하는 학제적(學際的) 연구를 이끌고 있다.
미국의 시스템즈 바이올로지 연구소(Institute for Systems Biology, Seattle)의 레로이 후드(Leroy Hood) 박사가 주장하듯 마이크로 플루이딕스와 나노 테크놀러지의 조합이 생물학 연구자들이 하는 모든 과정을 전환시키고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바꿔 놓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기대해 볼만한 일이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
◆ 시장 전망과 기업활동
LG경제연구원은 올해 나노 바이오 융합제품 상용화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하며 바이오칩 관련시장이 2000년 5억3000만달러에서 2004년 33억 달러 규모로 급팽창할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에서는 나노바이오테크 응용제품들은 대부분 아직 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으나 활발한 기술개발 노력에 힘입어 상용화가 빠르게 진전될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임상 및 진단과 식품, 농업, 환경 모니터링 분야 등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돼 2005년 경에는 바이오센서, 멤스(MEMS) 기술이 발달, 진단용 칩 분야의 신제품들이 대거 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시장조사기관인 프로스트&설리반은 나노바이오테크 관련시장이 2015년 경 18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는 등 관련 시장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
이같은 전망은 그간 연구수준에 머물렀던 바이오기술이 유전공학 등의 연구성과 축적으로 상업화 단계까지 이르렀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특히 반도체 및 정밀기기 등의 IT업체들은 그간 바이오 관련연구를 지원하는 상태에 머물렀지만 바이오테크의 상용화 가능성이 점차 커짐에 따라 연구성과를 자사의 제품과 결합, 상품화 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 시스템즈 바이올로지 시장은 DNA칩 선두업체인 애피메트릭스(Affymetrix), 캘리퍼 바이오 사이언스, 셀로믹스 비롯한 BT기업들과 모토롤라, 애질런트 테크놀로지스 등의 IT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모토롤라는 1998년 설립된 모토롤라 바이오칩 시스템즈를 중심으로 바이오칩 시장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애질런트 테크놀로지스는 자체 연구뿐 아니라 캘리퍼 제품의 판매 제휴를 통해 랩온어칩(Lab-on-a-chip)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보기술 시장의 포화와 함께 바이오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가능성을 엿보고 있는 IBM, 컴팩, 히타치, 후지쯔 등 세계 주요 IT업체들도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시장 돌파구로 시스템즈 바이올로지를 선택, 나노기술과 바이오 기술에 대한 전략적인 투자를 단행해왔다. 이들의 연구는 바이오칩 이외에도 생체이식용 센서 및 반도체, 인공 망막 등 개발에 집중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벤처기업인 디지탈바이오테크놀로지가 마이크로플루이딕스 기술을 이용한 랩온어칩을 개발, 시스템즈 바이올로지 산업을 개척하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하나 하나의 세포를 마이크로 채널에 집어넣은 후 세포 안에 유전자 삽입하는 전기천공기(Electroporator)를 개발했다. 이 장치는 수많은 세포에 전기적 충격을 가해 구멍을 뚫은 후 유전자를 넣던 과거의 실험 장치에 비해 실험의 정확도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고은지 선임연구원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나노바이오테크는 독자기술 확보가 관건이며 전세계적으로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고 있는 만큼 국내기업들도 적극적으로 기술 역량을 확보해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