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기를 살리자](7)정부부터 달라진다­-(하)산하기관·단체 경영혁신

 “한국의 역대 수출실적과 연도별 수출 증감 추세를 정리해 달라는 말씀이시지요. 알겠습니다. 연락처 좀 남겨 주세요.”

 수출상담회 준비로 새벽 일찍 회사로 출근한 KOTRA 권모과장은 아무도 없는 사무실 한 쪽에서 울리는 전화를 당겨 받았다. 한 여성이 매우 다급한 목소리로 우리나라의 수출 현황에 대해 문의해 왔다. 당장 해야 할 일은 밀려 있었지만 “지금 당장 자료가 필요하다”는 말에 할 수 없이 하던 일을 잠시 중단하고 보고서(?) 작성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대충 수치만 정리하려다가 매년 수출이 증감하는 원인도 원할 것 같다는 등의 생각에 이것 저것 정리하다 보니 2∼3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권과장은 자료를 요청한 여성에게 전화를 걸어 “저, 자료가 다 정리됐습니다.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런데 이 자료의 용도에 대해서 문의해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어봤다.

문의한 여성으로부터 들은 대답은 너무 뜻밖이었고 권과장의 입에서는 허탈한 쓴 웃음이 나왔다.

“저 사실은 초등학교 다니는 우리 아들 숙제인데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거든요. 너무 고맙습니다.”

다소 황당스러운 에피소드이긴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정부 산하기관들의 대고객서비스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단적인 사례다. 사실 ‘초등학생 숙제 대행서비스(?)’는 과잉서비스 사례지만 KOTRA의 진짜 고객인 기업들 또한 KOTRA 홈페이지 고객란을 통해 정부 산하기관의 친절서비스에 감동했다는 글을 남기고 있다. 많은 중소기업 사장들은 10여년 전 자신이 겪은 산하기관에 대한 평가와 지금의 달라진 모습을 칭찬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이 체감하는 정부 산하기관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더욱이 조직원들에게 무조건 친절과 서비스를 강요하는 단계를 넘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대고객서비스 질을 높여가고 있다. 이같은 모습은 산하기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전국 국가산업단지를 관리하는 한국산업단지공단도 찾아가는 현장서비스로 중소기업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산단공은 올해들어 입주기업 지원기능을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이제 과거의 단순한 산업단지 관리기능에서 탈피해 입주기업들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생각에서다.

산단공의 대표적 서비스로 각광받고 있는 ‘공장설립콜센터(팩토리콜, 1566-3636)’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전국 어디서나 공장설립을 무료대행해 주는 이 서비스는 정부에 대한 기업들의 대표적인 불만인 행정민원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도 연구개발 위주의 조직에서 기업들의 요구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사업중심 조직으로 전환되고 있다. 정부 산하기관이라는 특성상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는 점을 의식해 조직이 받아들일 수 있는 최대 한도 내에서 민간 경영기법을 도입해 ‘협력 속의 경쟁’이라는 풍토를 정착시켜 나가고 있다.

 이 밖에도 전자정부 구축을 목표로 산하기관들이 한 마음으로 진행하고 있는 ‘기존업무의 e비즈니스 개념 도입’도 언제 어디서나 쉽게 필요한 서류를 구할 수 있고, 절차도 간소화되면서 기업과 국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고객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조직의 체계적인 혁신을 동반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정부 산하기관, 공기업 모두 최근 윤리경영 등을 선포하면서 대민 서비스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와 기업의 매개체인 산하기관들이 수요자중심, 친기업 민원형 조직으로 환골탈태하고 모습은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 기업이 바라는 정부

 정부의 산하기관이 발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 지수는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취임 후 100일이 지난 뒤 “와서 일해 보니 공무원들이 굉장히 유능하다. 조직에 대한 충성도나 소명의식은 기업에 있는 사람들이 따라가지 못한다”며 공무원들의 자질을 높이 샀다. 그러나 “업무 경험이 협소하고 부여되는 동기도 승진 하나뿐이기 때문에 폐쇄적이고 개인화돼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됐다.

 이 같은 폐쇄성은 산하기관도 마찬가지다.

 셋톱박스 업계에 근무하면서 자주 정부 산하기관과 대면하는 A씨는 “정부 산하기관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도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정부 산하기관은 정부가 이미 정해놓은 결정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고 산하기관의 경직성을 지적했다.

 그는 “기업들의 기업하고자 하는 의욕을 충만시키고 이를 제도적,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수요자인 기업의 입장에서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단순히 정부정책의 대변자이거나 이를 그대로 따르는 행태는 과감히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에 근무하는 이들은 또 산하기관이 정부의 정책 수행도 중요하지만 기업발전에 이바지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 SI업체 관계자는 “정부 산하기관의 설립목적은 기업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고 기업 발전을 배후지원하기 위함이다. 기업을 봉사의 대상인 고객이라고 생각해야한다. 각종 제도 마련도 중요하지만 산하기관이 기본적인 봉사 마인드를 가져야만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산하기관에 대한 기업들의 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다수 기업들은 산하기관들이 너무 많다며 각종 업무의 집중화와 지원의 효율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와 함께 산하기관의 역할도 좀더 분명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통신위원회. 통신위원회는 통신시장이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발전할 수 있도록 공정경쟁환경을 조성하고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감시·규제 기구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사업자들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근거법 및 법적 판단의 모호성으로 늑장 대응을 하게 되거나 제재에 필요한 물증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면 오히려 불공정 행위가 그 틈을 타 더 빠르게 확산되기도 한다.

 일례로 최근 번호이동제와 010 통합번호 시행과정에서 벌어진 불법 광고와 편법 단말기 보조금 지급과 관련해 통신위원회의 직권조사가 시작됐다는 소문에 일시적으로 불법영업행위가 수그러드는 것 같았지만 다시 2월들어 새로운 형태로 활개를 치는 것이다.

 통신사업자들은 엄포성 규제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 사전 정화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토로한다. 모호한 규제가 기준이 오히려 범법자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내 대형 가전 업체에 근무하는 B씨는 “참여 정부 출범 이후 각종 협회가 난무해 ‘협회 공화국’에 가까울 정도”라며 “이제는 산하기관 신설보다는 업무의 효율화와 기업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신중히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산하기관이나 단체 가운데는 ‘진흥원’, ‘협회’ 등의 이름을 붙인 곳이 많다. 정부 산하기관 이다 보니 정부처럼 각종 서식과 형식을 필요로 하겠지만 각종 허례허식도 없애야 할 과제다. 기업들은 산하기관에서 ‘공무원보다 더 공무원스럽다’는 인상을 받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다.

◆ 기고 - 박일준 산자부 행정법무담당관­ pdsy0508@mocie.go.kr

 지금 우리경제는 기업의 투자분위기 조성과 기업의 기(氣) 살리기를 통해 일자리 창출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기업의 규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실물경제의 활력을 회복하는데 모든 정책역량을 결집해 나가야 한다는데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올초 모든 산하기관이 참여하는 혁신연찬회를 개최하고 산자부와 산하기관 스스로 ‘변화와 혁신’에 앞장서고 ‘기업 기 살리기’에 진력하겠다는 결의를 한 바 있다.

특히 과감한 경영혁신과 규제혁파를 바탕으로 기업의 기를 살리는 산자부와 산하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금년에는 다음과 같은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우선, 지난해 정부기관 최초로 도입해 우수 업무혁신사례로 대통령 표창을 받은 ‘수요자중심의 정책다면평가제도’를 올해에는 30여개 산하기관까지 확대 적용해 산하기관도 산업자원부 정책에 대한 평가에 참여함과 동시에 스스로도 업무내용을 수요자인 기업으로부터 평가받도록 하고 그 결과를 산하기관에 대한 평가에 반영할 것이다.

둘째, 산하기관에 일부 잔존하고 있는 공급자위주의 제도와 관행을 발굴하여 개선하고 수요자측면에서 산하기관과의 애로사항 및 협력증진이 가능한 분야를 조사해 이를 해결하는데 적극 노력함으로써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도록 하겠다.

셋째, 혁신인프라 구축 및 분위기 제고를 위해 산하기관에도 혁신 전담부서를 설치·운영토록 하며 상반기중에는 ‘산하기관 업무혁신 콘테스트’를 실시하고 산하기관간 업무혁신에 대한 교류의 장도 마련함으로써 산하기관 상호간 혁신우수사례를 공유토록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준공공기관에 대한 유사행정규제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해 일제정비를 추진하는 등 금년에는 산업자원부부터 솔선수범해 제로베이스에서 규제를 검토하여 질적 성과를 제고하는 규제개혁을 강력히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그 동안 산하기관도 공급자 위주의 행정이 바뀌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수요자 중심의 자율적이고 상시적인 혁신프로그램을 수립·추진토록 하고 연말에는 그 실적을 평가하고 평가된 결과를 기관평가에 반영할 것이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2만 달러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기를 살려 기업투자를 활성화하고 경제의 활력을 되찾는 길뿐이다. 산하기관도 변화의 객체가 아닌 주체가 돼 변화와 혁신에 앞장서야 한다. 올해는 과감한 경영혁신, 공급자 위주의 제도와 관행 탈피, 규제혁파와 서비스 제고로 ‘친기업 기관’으로 거듭나는 원년으로 삼아 기업과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산업자원부와 산하기관이 되도록 모든 힘을 기울여 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