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을 정점으로 국내 IT시장의 호황은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IT 바람을 타고 생겨난 중소 IT기업과의 과당 경쟁은 장비 가격의 하락과 수익성 악화를 동반했다. 다산으로서는 해외시장 진출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시 해외시장에 관한 한 경험이 전무했다. 시장에 부딪쳐 보는 게 최선이었다. 따라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했고, 수업료 또한 막대하게 지불했다. 선진국 시장과 후진국 시장의 차이와 특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대표적인 경우가 미국 지사를 설립하고 2년도 채 안돼 철수한 것이었다. 선진국 시장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정말로 세계 최고의 제품이 아닐 바에는 진입하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란 평범한 사실을 몇 십만달러를 쏟아 부은 다음에야 확실히 깨달았다. 무모한 도전이 대가를 치루는 순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더 큰 대가를 치루기 전에 과감한 철수 결정을 내린 것이다. 미련과 함께 이런 사정 저런 사정을 다 고려하면 분명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돈이 안되고 경비가 기약 없이 들어가는 사업이라면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서 그냥 접는게 낫다는 생각이다. 나머지 존속 이유는 모두 주변적인 것이다.
중동과 동남아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후진국 시장에 가면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왕자거나 실권자의 친인척들이다. 그리고 논의되는 내용은 거의 국가적 수준의 대규모 사업들이다. 실제 통신사업자의 부사장 정도는 데리고 나온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장비를 구매할 예산이 없다.
국제적인 자본을 펀딩, 수행하는 프로젝트가 아닌 이상 다산의 장비를 사줄 만한 여력이 없다. 이후로는 비행기 삯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해외출장도 자제하고 철저하게 현지 대리점만을 활용한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중국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아주 거창하게 시작하지만 중국 시장에서 장비를 팔아 돈 벌기가 어디 그렇게 쉬운가. 처음엔 중국시장을 한국시장 이상으로 키우겠다는 야심으로 뛰어들었지만 현재는 철저히 수익성 위주의 사업으로 절제를 하고 있다.
선진국 시장은 돈도 있고 수익성도 좋지만 진입 장벽이 높고 후진국 시장은 진입 장벽은 낮지만 예산이 없다는 것이 해외시장의 현실이다. 그러나 지난 2002년부터 적극적으로 개척한 일본 시장은 지금까지 해외시장에서의 경험과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주었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진입 장벽이 그렇게 높지도 않으면서 돈도 있는 시장이 바로 일본 시장이다. 제품의 품질만 완벽하면 살아 남을 수 있는 곳이다.
다산의 경우 지난해 일본에서 100억원의 수출을 달성했고 올해는 300억원 이상을 거둬들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는 전체 매출의 약 40%를 해외 시장에서 달성한다는 목표다. 돌이켜 보면 무모하기는 했지만 그런 저돌적인 개척 정신이 아니었다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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