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기를 살리자](8)기업 최우선 정책으로 전환

 ‘탁상공론(卓上空論)’

정부 공무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지만 공교롭게도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다. 총선을 앞두고 정부의 야심찬 경제 살리기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동안 나왔던 수 많은 정책 중 몇 개만 성공했어도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한 기업가의 지적처럼 정부의 정책은 용두사미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특정 산업분야에 대한 정부의 지원정책은 대상 산업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관련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책 담당부서나 예산 당국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을 봉합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정책들의 실패는 과거에도 수없이 많았다.

 기술공무원을 우대하지 않는 분위기가 탁상공론식 정책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도 귀담아 들을 만한 부분이다. 기술육성을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고위직들은 모두 행정직 출신이어서 현장중심의 현실감 있는 산업정책을 펼치기 어렵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실제 대구시의 경우 본청에 근무하는 기술직 공무원은 전체 공무원 1842명의 47%인 870명으로 행정직과 수적 차이는 없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하위직 공무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덕밸리가 자리잡은 대전시의 경제과학국장을 행정직이 맡고 있고 3급 공무원 중 행정직과 기술직 모두 앉을 수 있는 복수직 4개는 모두 행정직 차지다.

지난 83년 미국은 ‘대통령 산업경쟁력위원회’를 설립하며 경제 부활을 선포했다. ‘일본에 점령당한다’는 위기상황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99년 3월말에는 일본이 이를 그대로 본떠 총리 직속 ‘산업경쟁력회의’를 출범시키고 민·관 합동의 산업재생작전에 돌입했다.

 그로부터 6년 뒤인 올 해 1월 미국에서는 다시 한 번 대통령의 제조업 정책을 실행하는 ‘대통령 제조업위원회’의 신설 계획이 발표됐다. 이 같은 미국과 일본 정부의 일련의 정책은 모두 자국 경제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데서 출발했다. 무엇보다 정부가 최대한 기업현장에 가까이 가야만 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미국 IT벤처를 대표하는 퀄컴사의 어윈 제이콥스 회장은 “이공계 출신자가 경영자를 맡으면 첨단 IT분야의 관련 전략에 대한 판단을 보다 정확하게 할 수 있다”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얘기한 바 있다.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우리의 경제상황을 타개하는 방법 역시 간단하다. 기업에 가까이 다가가 현장 중심의 행정을 강화하는 것이다. 때문에 정부가 올해 주요 정책 목표 중 하나로 ‘기업 최우선 정책으로의 전환’을 들고 나온 것에 대해 재계는 일제히 환영의사를 밝혔다. 산업자원부는 정기적인 ‘산업경쟁력회의’의 설립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

 대통령이 주재하고 관련부처 장관과 수십여명의 업계, 학계, 연구소 관련 전문가들이 모이는 ‘산업경쟁력회의’는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현장감 있는 의견교환의 장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역의 생산현장을 순회하면서 특정 산업별 비전과 발전전략을 협의하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삼고 있다.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회의 때마다 산업경쟁력과 관련한 특정 정책과제를 한 가지씩 선정해 현안과 개선방안을 토론하는 등 회의가 단순 논의에 그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정부 고위인사의 현장방문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이미 노무현 대통령이 올 해 들어서만 수 차례 산업현장을 방문한데 이어 각 부처 장관들의 일선 현장 챙기기도 이어지고 있다.

기업사기 진작을 위해 포상제도를 활성화시킨다는 계획도 수립했다. 상징적인 의미의 막연한 포상보다는 특정 분야에서 잘 하는 기업에 대해 세분화된 상을 수여함으로써 포상의 효과를 극대화 할 계획이다.

 재계는 정부의 이 같은 노력에 대해 박수를 보내면서도 관건은 역시 계획보다는 실천이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벤처기업 관계자는 “정부의 기업 최우선 정책에 거는 기대가 크다”며 “정부가 스스로 모든 기업의 상황을 정책결정에 반영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접수된 의견에 대해서는 그냥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 정책 성공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고: 윤영선 산자부 산업정책과장

올해도 우리 정부의 최우선 정책과제는 무엇보다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체감경기의 회복에 있으며, 지금 우리경제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이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바람직하고 소망스러운 일자리 창출은 다름 아닌 기업투자를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기업의 투자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는 대내외적인 경제여건이나 시장상황, 기업의 경영전략, 자금력 등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정부의 정책방향이나 경제활력에 대한 의지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라고 하겠다.

지금은 위축된 기업의 사기를 진작하고 투자활성화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정부가 한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 어느때 보다 필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미 밝힌 바 있듯이 금년도 경제운용의 중점을 투자활성화를 통한 일자리창출에 두고 범정부 차원에서 경제를 최우선하는 정책기조를 유지해 나갈 것이다.

산업자원부도 이러한 정책실행에 적극 솔선수범해 나갈 계획이다. 우선,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의 조기 달성과 골고루 잘사는 국가건설을 위해 관건이 되고 있는 산업경쟁력 제고에 국가적인 지혜를 모으는 작업을 추진하고자 한다.

관계부처 및 업계, 학계, 연구소 등의 각계 전문가가 참여하여 주요 산업정책 방향을 심의·결정하고, 산업경쟁력 향상을 위한 현안과제에 대해 현 주소와 해결책을 논의하는 방안을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지난 1월 미국의 돈 에번스 상무장관이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대통령의 제조업 정책을 실행하는 ‘대통령 제조업위원회’와 미국 산업의 경쟁력을 분석하는 ‘산업분석처’ 신설 계획을 발표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둘째, 기업현장 중심의 행정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특히, 정부 고위인사의 현장방문을 확대해 기업활동을 격려하고 애로를 수렴하는 기회를 자주 마련함으로써 정부의 경제최우선 정책방침을 기업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해 나가겠다.

대통령께서도 이미 지난 1월 20일 반도체 장비업체인 한미반도체를, 2월 6일에는 삼성전자 구미공장을 방문하신 바 있다. 산자부장관도 새해 첫 날 시화공단 방문을 필두로 1월17일에는 장관을 비롯한 국장이상 간부가 일자리 만들기 모범기업인 유한킴벌리 공장을 방문하여 일선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토론회도 가지는 등 활발한 현장행정을 추구하고 있다.

셋째, 투자 등 기업활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애로해결에 모든 역량을 결집할 것이다.

이를 위해 산자부는 지난 17일 홈페이지에 기업애로 사항을 접수하는 ‘기업신문고’를 개설하고 ‘기업애로상담센터’도 설치하였다. 3월부터 산자부장관이 주재하는 ‘기업애로조정심의위원회’를 운영하여 기업애로의 실질적인 원스톱 해결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다. 아울러 지난해 6700여개 수준인 중소제조 창업을 1만 개로 확대하기 위해 중소기업창업지원법을 개정해 인허가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등 창업환경을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기업사기 진작을 위한 포상제도를 활성화해 나갈 것이다.

이미 지난해말 ‘생산성대상 시상’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바 있으며 환경경영을 촉진하기 위해 금년부터 ‘국가환경친화경영대상’도 신설키로 했다. 아울러 건실한 기업경영과 사회공헌 등을 통해 모범이 되는 기업인을 매월 선정·홍보하는 ‘이 달의 기업인’ 제도도 상반기부터 운영할 방침이다.

 지금 우리경제에는 양극화 현상, 신용불량자 문제, 청년실업, 대외적인 경쟁의 심화 등 많은 불안요인이 상존하고 있다. ‘경제최우선 정책’이라는 말이 다분히 선언적인 구호에 그치지 않고 기업과 시장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 스스로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함을 다짐해 본다.yoonseon@mocie.go.kr

■현장중심 정부지원

각종 정부의 정보화 지원사업으로 인해 국내 중소기업의 정보화 사업에 탄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시스템을 구축해 사용해야 하는 실수요자의 시스템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현장의 목소리 반영한 실 수요자 위주의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방의 A사는 오는 5월로 전사적자원관리(ERP) 도입계획을 잡고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주무기관인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지난 2일 시행계획을 공지한 뒤, 20일에 마감하는 바람에 이를 제 때 확인하지 못한 이 업체는 사실상 기회를 놓치게 됐다.

 업체 관계자는 “업체의 특성상 ERP도입을 연초에 결정할 수 없는 경우도 있어 선정작업시 여유 있는 기간배분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컨설팅별로 주관기관이 달라서 컨설팅과 현장구축작업에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컨설팅은 중기청에서 하면서 컨소시엄을 모집해서 하는데 생산정보화(생산라인의 정보화)의 경우는 정보화경영원에서 지원한다. 업체에 따라서는 이 같은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기도 하는데 기업들은 “이들 주관기관을 통일하면 효율적인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정통부가 국내 디지털방송콘텐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지원하는 HD콘텐츠 지원사업도 실제 장비를 운용하고 제작하는 현장제작업체에 대한 지원이 부족해 소정의 기대치에 못미친다는 지적이다. 한국방송제작기술협회 이한범 차장은 “콘텐츠제작을 위해서라면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작·수출하는 제작업체에게 지원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프로덕션 위주로 공급하는 자금으로부터 얻는 성과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지상파 방송국의 디지털방송장비수입에 대해서는 관세감면의 혜택을 주면 외주제작업체에 대해서도 같은 혜택을 주는 것이 국내 디지털방송산업의 발전을 위한 취지에 맞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부지원과 업체 현실 간의 괴리는 각종 테스트 랩 활용 현황을 보면 잘 나타난다. 실제로 실험 환경이 열악한 중소 기업들을 위해 정부 산하기관이 마련해 놓은 대다수 테스트 랩들은 평소에 80∼90%의 이용률을 보이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수치에 훨씬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간을 추가해서 기록하거나, 장비 한대를 이용한 것을 놓고 마치 테스트 랩 한 개를 모두 이용한 것처럼 계산하는 식이다.

입지 여건도 업체 편의가 아니라 산하기관 위주다. 일례로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이 국내 정보보호 업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정보보호산업지원센터는 서울 가락동에 위치해 있어 정보보호 업체들로부터 “교통이 불편해 자주 이용하기에는 부담스럽다.”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특정 부처 산하기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지원은 업체의 입장에서 해야만 ‘지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명심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