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박기영 대통령 정보과학기술보좌관

 ‘과학기술혁신’은 한국의 미래를 담보할 핵심 인프라를 만드는 역사적인 과업이다. 참여정부가 ‘과학기술혁신’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난 1년간 차세대 성장동력이 선정되고 이공계 우대정책과 기술부총리제 도입 등이 추진되는 등 혁신을 위한 기본 틀은 갖췄다. 이제는 제2의 과학기술 입국을 향해 돌진하는 일만 남았다. 이 역사적인 과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해당 부처를 지원하고 이견을 조율하는 핵심 브레인의 역할은 고스란히 대통령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의 몫이다. 박기영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직접 만나 그가 생각하는 과학기술혁신의 방향과 구상을 들어봤다.

 ―‘과학기술 입국’이나 ‘기술 혁신’은 과거 정권들도 계속 강조해온 주제다. 참여정부의 과학기술혁신은 무엇이 다른가.

 ▲ 근본적으로 다르다. 과거 정권이 제1의 과학기술 입국으로 양적 성장을 목표로 했다면 참여 정부는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춘 과학기술의 질적 향상을 추구한다. 국민에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 과학만큼 경제적인 것은 없다. 이론과 논리가 실제 구현되는 가장 최적화된 시스템이 바로 과학이다. 따라서 이런 질적 향상의 밑바탕에는 국가과학기술혁신체계 수립을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의 개념도 깔려있다.

 ―과학기술혁신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 구상이나 액션 플랜은

 ▲기술혁신은 구조의 경쟁력에서 나온다. 과학기술자들이 다른 행정 업무에 시달리지 않고 연구 개발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정부가 나무의 몸통이 되고 나무 내부의 수분 공급과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관을 만들어 나뭇잎과 꽃(연구개발 성과)이 활짝 피어날 수 있도록 하겠다. 따라서 대통령이 의장이 되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나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등 이미 새로운 과학기술혁신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은 갖췄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제도나 정책이 아니라 실행에 옮기는 일이다. 그래서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을 통해 국가출연연구기관에 대한 개편안도 작성중이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출연연구기관의 큰 틀은 움직이지 않는 범위에서 연구 개발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계획이다. 이런 경쟁력 있는 구조가 과학기술의 질적 향상을 가져올 것으로 확신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이미 과학기술계의 각종 현안들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국내 과학기술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연구개발의 성과가 그저 연구 개발에만 머물 뿐 수요자나 산업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수요와 공급이 만날 수 있는 채널이 너무 부족하다. 따라서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기술에 대한 수요를 예측한 후 여기에 적합한 원천 기술을 산·학·연·관이 공동 개발하고 이를 다시 산업화로 연결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부처별 기술거래나 평가사업 등을 종합해 기술의 산업화를 촉진할 수 있는 기술확산제도가 필요하다. 연구개발의 결과물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종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체계화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향후 신설될 과학기술부총리가 이 같은 과학기술혁신 및 확산사업을 총괄 지휘하는 사령탑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과학기술부총리제 도입과 맞물려 과기부, 산자부, 정통부 등 IT 유관 부처 간 역할 및 업무 조정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다. 앞으로 부처간 기능 조정, 연구개발 및 정보화 관련 예산권 확보 등 첨예한 문제들을 어떻게 조율해 나갈 계획인가.

 ▲정부 조직이나 기능 개편에 관한 문제는 기본적으로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의 소관이다. 현재 이곳에서 과학기술부총리제를 포함한 각종 정부조직개편안이 마련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만약 과기부가 3개 부처에 대한 전체적인 통합조정 기능을 가진다면 굳이 부처를 통합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실제로 통합보다는 각 부처의 역할을 충돌없이 진행하는 쪽으로 공감대가 모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정보화나 연구개발 예산권 문제는 통합조정 기능을 수행할 과기부가 1차적인 심의권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본다.

 ―최근 정보기술(IT)분야에서는 통신·방송 융합 문제가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대한 정책적 복안은.

 ▲우리도 외국사례와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해 통신·방송 융합현상에 대한 정책방향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통신·방송 융합 문제는 워낙 사회적 영향이 큰 이슈이기 때문에 최선의 정책 방향을 도출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이 문제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활발하거나 생산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선, 정통부·문화부·방송위원회 등 관계기관과 산·학·연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는 자리부터 마련할 생각이다. 이 모임을 통해 통신과 방송의 융합현상과 관련된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고, 서로 다른 영역에 대한 이해의 증진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필요하다면 이런 자리를 상설 기구화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

 ―과학기술혁신, 차세대 성장 동력 등과 같은 큰 이슈들에 가려 전자정부를 비롯한 국가정보화 문제는 정책 우선 순위에서 상당히 멀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지난 국민의 정부에서는 전자정부라는 집을 처음 만드는 시기라 외부에서 보기에 무척 바쁘고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인테리어를 하는 시기다. 참여정부는 전자정부의 효율성을 높이고 내실화하는 작업을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는 국가정보화 추진전략도 지식정보사회 패러다임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따라서 광대역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 IPv6 등 유비쿼터스 환경을 구현할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향후 국가 정보화 추진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정보화의 역기능 문제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보격차, 해킹·바이러스 증가, 개인정보침해 및 음란스팸 등은 IT혁신이 제공할 풍요와 번영을 한순간에 무효화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들이다. 지속적인 정보화 추진과 함께 이러한 정보화 역기능 문제 해결에도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

 ◆ 박기영 보좌관은

 박기영 보좌관은 “여성 및 노동운동은 기본이다”고 말할 정도로 ‘운동권(?)’임을 자처한다. 그는 연세대 생물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순천대 교수로 재직하며 과학계뿐 아니라 여성·문화·지방 등 다양한 분야 비정부기구(NGO)나 시민단체에서 활동해 왔다.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도 이런 사회 활동을 통해서다. 87년 당시, 남녀고용평등법 문제를 들고 청문회 스타로 한창 이름을 날리던 국회의원 노무현을 찾은 것이 노 대통령과의 첫 만남. 그 후 순천 지역에서 지방 운동을 벌이면서 노 대통령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2001년에 출범한 ‘노연(盧硏.노무현과 함께하는 연구자)’에서는 환경문제를 맡았었다. 노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대통령직 인수위원으로 활동하며 과학기술중심사회 구축 등 국정과제의 입안 추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박 보좌관의 경력 중에는 순천 기적의 도서관 건립위원회위원장 활동도 들어있다. 모 방송사의 ‘기적의 도서관’ 프로그램을 통해 순천에 도서관 1호를 유치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린 시절, 파브르 곤충기를 읽고 느낀 감동으로 생물학자가 된 사람도 있다”며 “학생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과학을 좀더 편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기적의 도서관처럼 ‘기적의 과학관’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만큼 박 보좌관은 어쩔 수 없는 생명과학자다. “꽃 그리기를 즐기고 꽃이 너무 좋아 식물 분야를 전공하는 생명과학자가 됐다”는 그의 이름은 세계 최초의 인간배아 줄기세포 배양으로 세계적 찬사를 받은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개발팀 명단에도 들어있다.

 지난 80년대 초,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에 관심있는 젊은 과학기술자들이 만들었던 국내 최초의 과학기술운동단체인 YMCA ‘두리암’의 선언문도 그의 손으로 직접 썼다. 이런 ‘과학 운동 1세대’의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새로운 ‘과학 문화’를 만들어 보는 것이 사회운동가이자 생명과학자인 박 보좌관의 바람이다.

 대통령 정보과학기술보좌관으로서의 포부는 오히려 소박하다. “보좌관은 말 그대로 드러나지 않게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이다. 그저 그림자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해당 부처가 책임감을 가지고 수평적, 자율적으로 정책을 결정·집행하는 것이 참여정부의 기본 시스템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대통령 보좌관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가끔 좋아하는 꽃 그림도 그리고 영화관이나 화랑에도 들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의 표정 속에는 제2의 과학기술 입국을 통해 새로운 ‘생활 과학 문화’를 꽃 피우겠다는 강한 의지가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