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의 신세계가 펼쳐진다”
나노 기술은 1㎚, 즉 10억분의 1m 수준에서 물질과 소자를 다루는 기술이다. 나노미터 수준에서는 물질과 소재들이 일반적인 환경에서와는 다른 특성을 보이게 된다.
나노소재기술은 나노 환경에서 발현되는 이러한 물질의 새로운 현상과 특성을 활용해 우리 생활에 유용한 소재와 부품을 만드는 기술을 말한다. 나노소재는 구조를 나노화해 강도를 높인 강판이나 플라스틱, 혹은 화장품용 분말의 경우처럼 최종재가 될 수도 있고 이차전지의 음양극을 만드는 활물질처럼 다른 부품의 소재로 재사용될 수도 있다.
지난 1976년 일본 도요타가 합성 고분자에 나노 입자를 넣어 분산시킴으로써 고분자 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음을 발견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학계와 산업계의 관심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나노소재 기술은 철강·자동차 공업용 소재는 물론 각종 산업용 용기, 디스플레이, 연료전지 등의 분야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또 전자, 통신, 컴퓨터, 에너지, 환경, 의학, 군사 분야 등 모든 산업분야에 혁신을 가져올 전망이다. 이처럼 응용 분야가 넓은 나노소재기술은 나노 관련 기술 중에서도 가장 시장 규모가 크고 상용화가 활발한 분야로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조사에 따르면 2010년경에는 시장 규모가 연간 3000억달러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LG화학(대표 노기호)이 최근 개발한 나노 기술 적용 고차단성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은 대표적 나노소재다. 이 신소재는 일상 가까이로는 화장품 용기나 자동차 연료 탱크로, 또 산업적으로는 화공약품이나 의약품, 농약 저장 용기 등으로 쓰일 수 있다.
이 소재는 나노 크기의 입자를 분포시켜 미세한 수분·용매·빛 등이라도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차단성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물, 이산화탄소, 산소, 질소, 솔벤트 등 각종 성분의 유출입을 막아 내용물의 변질을 방지하고 자원의 낭비를 막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식품이나 의약품을 담는 용기로 쓰이면 산소의 유입을 막아 변질을 방지한다. 반면 자동차용 연료탱크나 농약 용기에 쓰이면 솔벤트 등의 유해 성분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막아주게 된다. 이 소재 개발을 주도한 LG화학 테크센터의 김명호 부장은 “최근 미국·유럽 등지에서 현재 1일에 1g 정도인 자동차 매연 배출 허가량을 장차 1일 0.05g으로 줄일 것을 요구하는 등 자동차 배기 가스 규제가 갈수록 엄격해 지고 있다”며 “나노소재를 사용한 고차단성 소재가 ‘배기가스 무배출(zero-emission)’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나노 기술을 적용, 금형 코팅 등에 쓰이는 소재의 강도와 경도를 획기적으로 높여줄 수 있는 고강도 소재 분야도 나노소재 중에서도 산업화가 가장 진척된 분야 중 하나이다.
금형에 나노소재를 코팅해 경도를 강화시키거나 알루미늄 및 구리 등의 내부 구조를 나노화, 강도를 높이는 방법 등이 주로 사용된다. 재료를 구성하는 결정립을 나노 크기로 축소하면 강도와 경도가 높아지는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적은 양의 재료로도 같은 수준의 강도를 낼 수 있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된다. 서상희 나노소재기술개발사업단장은 “나노소재를 사용하면 재료 사용을 줄여 비용 부담이 줄어들며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원자재값 상승 문제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노소재 기술은 현재 산업계의 최대 과제 중 하나인 환경 문제 해결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기 중의 발전소 폐가스나 질소산화물, 다이옥신 등의 유해 물질을 정화하는 방법으로 촉매 반응을 사용하는 것이 있다. 이때 촉매로 쓰이는 나노 분말의 크기를 작게 하면 작게 할수록 표면적은 이에 비례해 증가한다. 즉 나노 기술을 이용해 더 작은 분말을 만들어 낼수록 촉매 반응을 더 촉진, 대기 정화 효과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또 나노 기술을 통해 보다 촘촘한 필터를 제작, 아무리 미세한 유해 물질이라도 걸러낼 수 있도록 하는 필터 관련 기술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 나노소재는 디스플레이 및 광학재료로도 사용될 수 있다. 나노 소재를 사용하면 광통신망에서 신호를 증폭해 주는 역할을 하는 핵심 장비인 광증폭기를 보다 저렴하고 작게 만들 수 있게 되며 이에 따라 광통신망을 일반 가정까지 연결할 수 있게 된다. 최근 포항공대 이규철 교수팀이 개발한 나노막대를 사용하면 미세한 화소를 통해 섬세한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머리에 쓰는 헤드마운트형 디스플레이 같은 작은 디스플레이에서도 선명한 이미지를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정부는 소재·부품 등 후방산업의 기술 개발 없이는 우리나라가 강세를 보이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전방산업의 경쟁력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최근 나노 소재 및 장비 연구 지원을 위한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나노기술집적센터’ 건립 계획을 발표하는 등 나노 기술의 적극 지원에 나섰다. 서상희 단장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데다 연구 시작도 그다지 늦지 않았으므로 우리나라도 조만간 세계 수준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라며 “2012년까지 세계 1류 나노소재 기술국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
◆이들이 뛴다
한국전력기술(대표 정경남)은 나노 소재 기술을 환경 분야에 적용, 발전소의 폐가스를 정화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 기술을 통해 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 다이옥신 등의 유해 가스를 현재의 절반 이하 수준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회사는 현재 이 기술의 실장 테스트를 준비 중이다.
일진나노텍(대표 신택중)은 포항공대 이건홍 교수 연구팀과 함께 플라스틱과 같은 고분자 기판 위에 탄소나노튜브를 합성할 수 있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탄소나노튜브 합성에 플라스틱 기판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형상변형이 자유로워 접거나 둘둘 말수 있는 디스플레이 개발도 촉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탄소나노튜브는 LCD, LED, FED 등 각종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소재로 그동안 무기물질 위에서만 합성할 수 있었다.
이 회사는 또 KAIST 홍순형 교수의 연구 활동도 지원하고 있다.
시약 및 고순도 약품 제조 업체 대정화금(대표 송기섭)은 나노소재 분야 연구를 통해 이차전지 재료 업체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전기연구원과 협력, 나노소재 기술을 바탕으로 이차전지의 원료가 되는 양극활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LG화학은 나노 기술을 사용해 차단성을 향상시킨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앞세워 나노 소재 분야를 공략한다. 특히 있는 자동차 시장을 겨냥, 휘발류등 용매의 유출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연료탱크 등의 분야를 개척할 계획이다. 또 의약품, 화장품 등의 생활 용기는 물론 산업용 용기까지 다양한 고차단성 고급 용기 시장을 노린다.
LG생활건강도 카본나노볼을 사용, 냉장고의 냄새를 흡수하는 기술을 최근 상용화했다. 화학 분야에서는 이 외에도 제일모직, 삼영사, 호남석유화학 등의 업체들도 나노 소재 분야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
◆국내전문가들
나노소재기술개발사업단은 자체적으로 실시한 워크샵을 통하여 최근에 사업단이 수행하고 있는 연구과제들의 연구결과가 세계 수준에 비해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를 묻는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조사 결과 국내 연구자들은 총 30개의 과제 중 10%에 해당하는 3개 과제를 세계 정상급 이상으로 평가하였다. 최근 초소형 발광소자나 차세대 디스플레이 소자의 제조에 사용되는 세계 최고품질의 나노막대를 개발한 포항공대 신소재공학과 이규철 교수와 다층막 코팅을 통해 강한 경도를 유지하면서 벗겨짐과 휨을 방지하는 금형 기술을 개발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이광렬 박사, 그리고 금속기판에 폴리머를 입힌 후 열처리하면 폴리머 내 나노 크기 금속이 분산된다는 것을 발견한 한양대 김영호 교수의 연구 등이 그것이다.
이 중 이규철 교수는 과학기술부 ‘21세기 프런티어 연구개발사업(나노소재기술개발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직경을 수∼수십㎚까지 조절할 수 있는 나노막대를 개발했으며 이를 응용, 초소형 디스플레이 제조에 사용되는 새로운 발광 나노소자 등 각종 응용기술도 함께 개발,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지’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스(Applied Physics Letters)’지 등 해외유명 학술지에 잇따라 발표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홍순형 재료공학과 교수는 미국 공군연구소로부터 텅스텐 소재 내에 나노 크기의 초미세 산화물입자를 균일하게 분산시키는 금속계 나노복합재료의 제조 공정에 관한 연구를 위탁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LG화학 테크센터 응용기술팀의 김명호 부장은 나노 기술을 적용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하이페리어’ 개발을 주도했다. 그는 기업에서 나노 소재를 연구하며 고객과의 접점에서 공장과 사업부와의 공조를 통한 나노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외에도 서울대 안경현 교수, 서강대 이재욱 교수, KAIST 박오옥 교수 등도 고내열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나노 소재를 연구하고 있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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